기업
앞서 살펴본 관점에 따라 개인은 생산·소비 등의 경제 활동, 즉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을 받는 것이므로, 교육 영역에서 기업 역할은 육성된 인재들을 고용(혹은 소비)하는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다른 회사보다 뛰어난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경쟁력 있는 양질의 인적 자원을 필요하게 됩니다. 특히 국경을 초월한 경쟁이 벌어지는 현대에서는 기업 간 매우 치열한 인재 확보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머리가 좋고 경험이 풍부한 인재를 채용하기 위해 출신 대학을 살펴보고 지금까지 쌓아온 스펙과 경력을 참조합니다. 명문 대학을 나온 학생이 최우선 순위가 되고, 외국 유학 경험이 있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물론 이런 방법이 일을 잘하는 사람을 선별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믿음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같은 일을 맡길 요량이면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좀 더 마음이 놓이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업의 인재 전략은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을 왜곡시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출발한 기업과 대학의 연결 고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좋은 대학의 졸업장을 받기 위한 경쟁으로 내몰기 때문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시장 불균형이 심화되는 한편, 사회적 대비책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고용탄력성 확대 정책은 사회 전반적인 양질의 일자리 소멸 현상을 초래하였습니다. 먹고살기 위한 경쟁적 생태계는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로 점점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뒤에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기업과 국가의 공생 관계
기업은 영리 활동을 위한 인적 자원의 집합체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금융 자본을 중심으로 기업의 소유권을 정하고 매출 이익을 소유권의 비율에 따라 나누는 조직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제 활동이 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기업 활동을 바탕으로 세금을 징수하여 여러 정책 수행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합니다. 따라서 매출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국가 입장에서 더 중요한 고객이 되며, 정치인들의 정치 활동에도 기업 후원금이 매우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 기업의 위상은 대단하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1990년대 후반부터 자본의 국제화가 이루어지면서 국가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다국적 기업은 자본의 국가 경계가 허물어지며 나타났는데, 여러 국가에 기업의 근거지를 둘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장 적은 세금을 낼 수 있는 유리한 국가를 선택하여 사업체를 분산시켰고, 국가는 오히려 대형 기업을 국내로 유치하기 위해 눈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한편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면 기업의 일차 목표는 이윤의 추구이기 때문에 지나친 욕심이 공공의 선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국가는 이를 통제하여 공공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노력해왔습니다. 독과점 규제 법안을 만들거나, 환경 보전에 대한 세금을 신설하는 법을 통해 기업의 지나친 이윤 추구가 공공 이익과 사회 생태계의 균형을 해치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기업이 국가의 힘을 좌우하는 자본력을 갖게 되고 정치권력의 향방이 기업 후원에 의해 결정되기 시작하면서, 기업과 정치 권력자는 그들만을 위한 이익 공동체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기업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인이 주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정치인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기업의 요구에 따라 정책을 손 봐주는 일들이 나타났습니다. 비단 행정 분야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의 부당함과 제도의 부적절성을 살펴야 할 입법, 사법 분야까지 영향을 받았습니다. 뉴스에 흔히 나오는 정경유착, 떡검, 관피아 같은 단어는 국가 권력이 기업 자본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업들은 이렇게 장악한 국가 권력을 이용하여 공정해야 할 기업 규칙과 경제 환경을 왜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업 내부적으로는 기업 활동에서 얻은 이윤을 특정 계정에게만 과실이 돌아가도록 만들었습니다. 기업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돈을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하지 않고, 사내 유보금과 임원 활동비라는 이름으로 기업 총수 일가들의 영리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를 공금 횡령이나 탈세의 죄목으로 잘못을 물어 처벌을 받았지만, 국가 경제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아주 가벼운 형량만을 받고 풀려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수 백억 원을 착복하고 몇 억 원을 사회 환원이라며 생색내는 행태가 만연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외부적으로는 대기업, 중소기업 간 공정 경쟁과 상생 논리를 훼손하였습니다. 조금이라도 돈이 될 것 같은 사업 아이템이 있으면 자본력으로 밀고 들어가 풀뿌리 기업들을 고사시켰습니다. 중소기업에서 획기적인 기술을 만들면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베껴내기를 하였습니다. 특허권을 침해당한 중소기업이 소송을 걸게 되면 오랜 시간 동안 소송을 질질 끌며 뒤로는 일감을 모두 빼앗기도록 하여 소송을 건 기업을 말라 죽이는 방법으로 시장을 장악하였습니다.
한국 기업의 성장 한계 1 – 시장 포화
한국 기업들이 국가 권력과 한편이 되어 자기들만의 이익에 몰두하는 사이, 세계 경제의 흐름은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대중 사회로 대표되는 표준화된 대량생산 방식의 성장이 1980년대를 기점으로 한계에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기업의 가치는 현재의 매출·순익과 더불어 미래의 성장 가능성으로 판단하는데, 주식 시장의 기업 가격은 앞으로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예측한 기대치가 반영된 가격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매출·순익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되면 기업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고, 성장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면 기업 가치가 낮아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기업이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않으면 현재의 기업 가치가 마이너스 평가를 받게 되므로 치열하게 시장 확장을 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지고 각 시장에서 스타플레이어라 불리는 거대기업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위해 다른 시장에 진출하더라도 기존 기업의 저항에 밀려 사업 성공을 보장받기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투입된 자본과 브랜드 이미지, 기술 특허를 이용한 방어 체계는 대부분의 시장을 선점 기업들의 독과점 체제로 변모시켰습니다. 기업들은 자신들의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제 3세계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려 시도하였고, 중국의 시장 개방으로 잠시나마 숨통이 트였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마땅한 시장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비교적 쉽게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 소상공 분야에 눈을 돌렸습니다. 동네 슈퍼, 마트, 빵집, 외식업 등 수 십 년을 오로지 장사만 해온 서민들의 경제 영역을 미국 유수의 명문 대학을 나온 경영학 박사를 앞세워 장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획력과 자본력, 마케팅을 앞세워서 서민들의 시장을 자신들의 것으로 가져갔고, 동네 가게의 주인들은 대형 마트의 종업원이 되거나 프랜차이즈 식당의 점주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국내 시장을 폐쇄적으로 만들고 하청 업체의 이익을 빼앗아오는 방식으로 이익을 극대화하였습니다. 저질의 제품을 소비자의 눈을 가린 채 비싼 값으로 팔거나, 갑의 위치를 이용하여 하청 업체에 말도 안 되는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하였습니다. 안전하고 양질의 상품인지 알기 위해 필요한 제도나 공정 거래 법규들은 기업의 자본력으로 얻은 권력으로 무마시켰습니다. 최근 불기 시작한 해외 직구 열풍, 외제차, 아이폰, 이케아, 코스트코로 대표되는 해외 상품 선호 현상은 비뚤어진 경제 질서를 벗어나려는 움직임이며, 국내 기업의 매출에 큰 위협이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때 불었던 청년 창업의 열풍도 그 맥을 다하였습니다. 상품 가치가 있어 보이는 사업 아이템이 있으면 대규모의 자본으로 밀고 들어오는 대기업들의 행태, 사업을 하려면 일가친척의 밑천을 쏟아부어야만 하는 투자 시스템, 한 번 낙오된 사업가는 다시 재기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사회 구조들로 인해 영특한 재능이 있는 청년들이 대기업 취직이나 공무원 합격에 목을 매도록 만들었습니다. 과도하고 효용적이지 않은 교육 투자는 창의적 사고와 발상으로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 할 인재를 육성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국 기업의 성장 한계 2 – 글로벌 시장 변화
정보통신의 발달 또한 기존 대량생산 방식에 익숙한 국내 기업들에게 치명타를 안겨주었습니다.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되면서 기존에는 불가능했던 다품종 소량생산의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휴대폰은 정해진 화면과 기능을 가지고 제품이 출시되었고, 각기 다른 사람들의 취향을 맞추어 제품을 생산하기에는 투자 대비 수익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출시되는 스마트폰은 소프트웨어 기술 발달에 힘입어 사용자의 입맛과 편의에 따라 각기 다른 앱을 설치하고 화면을 꾸미는 등의 자유로운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인터넷은 사람들이 쉽게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하였고, 소비자 집단 지성이 빠르게 형성되고 발전하도록 해주었습니다. 소비자의 요구 사항은 점점 다양해지고 고급화되었으며 생산자보다 더 앞선 시야를 가진 소비자가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별 것 아니라고 치부되었을 불만사항들이 모여 주류 의견이 되기도 하였고, 기업의 부적절한 처신은 때로 불매운동으로 벌어져 기업 활동을 위협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이런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였고, 그 결과 애플,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들이 등장하였습니다. 시장이 새롭게 재편되었고, 전통의 제조 기업들도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제조업에서부터 홍보 마케팅업에 이르기까지 정보통신 플랫폼을 이용한 훨씬 효율적이고 편리한 서비스가 등장하고 새로운 비즈니스가 탄생하였습니다. 기업들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창의적이고 문·이과 융합적인 인재들을 중용하기 시작하였고 그 노력은 주효하였습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이처럼 빠르게 변화되는 시대, 기술을 융합하여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하는 시대를 따라가기에는 너무 거대했고, 고지식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산업화 시대를 이끌었던 중공업 중심 생산 기업들은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의 기업들의 특성은 수 많은 인재들이 모여 조직적인 상하 관계를 이루고 리더가 정한 목표와 방법에 따라 불도저 같은 경영으로 대표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조직원의 희생이 발생하기도 하였지만 그러한 희생 아래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어낸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목소리의 수렴과 빠른 의사결정, 급격한 방향 선회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미 기존 방식으로 성공을 구가한 기업 리더들은 자신의 성공 방식을 지나치게 고수하여 스스로 변화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삼 십대를 주축으로 한 실무자들은 회사 밖에서는 자유로운 인터넷 세대로 성장했지만, 회사 안에서는 구시대 조직 세대처럼 행동해야 하는 역할 부조화 상황과 자신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는 처지에 빠졌습니다.
본 글은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를 집필하기 전,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적 제언을 써본 내용의 글입니다. 시기상으로 1년 전 즈음에 작성된 글이므로 감안하시고 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매일 혹은 이틀에 한 편씩 기 작성된 글을 게시할 예정이며, 약 30여 편 분량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의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본 글보다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바로가기 링크)의 글도 구독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