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대학은 본질적으로 심도 있는 학문의 탐구와 훈련을 통해 각 분야에 대한 전문 지식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곳입니다. 경쟁 우위에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하여 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기도 하며, 장기적으로 큰 이익이 될 수 있는 기초 산업분야 연구를 위한 국가 지원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사회가 안정적으로 결속되기 위해 필요한 사회 문화적 요소들, 즉 인문과 예술 분야까지도 국가 지원을 통해 운영됩니다. 대학이 운영되는 기초 자금은 이러한 협력 투자 및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양질의 인재를 선발하고 육성하여 기업과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대학이 매우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힐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국가 투자나 기업 평가에 따라 대학의 존폐가 영향을 받게 되므로 국가의 교육 정책이 어떠한지, 기업들이 대학 졸업생들에게 요구하는 능력이 무엇인지에 따라 대학의 운영 방안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본 논리에 철저히 따르려는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대학 평가와 학과 평가를 취업률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 지원금을 할당하였고, 학교는 학생 정원을 감소하고 학과를 조정하면서 기업 입맛에 맞는 취업에 유리한 일부 학과를 중심으로 구조 조정을 단행하였습니다.
학생 모집 단계에서는 국가가 추진하는 입시 제도 가이드에 따라 선발을 하면서도, 경쟁력 있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편법적으로 역량 있는 학생들을 선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였습니다. 입시 제도는 더욱 복잡해졌고, 치밀하게 분석하지 않고서는 입시의 유·불리를 파악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앞서 잠깐 논의한 것처럼 경제력과 정보력이 있는 학생들은 더 유리해졌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불리해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입니다.
학사 운영의 질적 측면에서는 취업에 도움이 않는 인문·예술 분야는 고사시켰습니다. 학생들도 졸업해서 취직하기 어려운 과에는 지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사회를 안정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학생이 줄어들었고, 글로벌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융합적 인재를 키우는 데 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알려주는 지식을 컴퓨터처럼 그대로 머리 속에 집어넣는 암기형 인재, 리더의 지시에 따라 의심 없이 행동하는 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대학 운영의 투명성
대학 운영의 투명성도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기업 자체가 대학의 주체가 되는 경우가 특히 그러합니다. (종교 단체나 개인 자본가가 주체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자본력을 가진 집단이 대학을 운영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업은 일차 목표가 이윤 추구이기 때문에 대학 운영에 있어 교육적 의미가 훼손될 소지가 높은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는 관련 제도를 적절하게 정비하여 기업의 이윤 추구 속성을 조절해야 하지만, 이미 국가마저도 기업 자본력에 의해 좌우되는 상황에서 그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습니다.
기업이 재단을 설립하여 대학을 운영할 때 사용되는 자본금은 그것이 기업의 이윤에서 비롯된 것인지 학생의 등록금에서 충당된 것인지 알기가 힘듭니다. 기업의 재단 기부금이 학교 운영에 쓰여야 할 의무조차 모호하며, 어떻게 학교 운영 자금이 쓰이는지에 대한 감사도 형식상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설사 적발된다 하더라도 단순 회계 실수라고 하여 솜방망이 처벌을 주는 방식으로 국가가 나서서 대학의 회계 부정을 묵인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 예로 최근 모 대학에서 회계 부정이 적발되어 퇴출당한 재단 이사가 다시 학교의 경영 권한을 얻어 자신의 회계 부정을 고발한 교수를 직위해제 조치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는 대법원에서 ‘종전 이사’라는 새로운 이사 개념을 만들어서 비리를 저지른 사람도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판결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2000년대 중반 사립학교법 개정 발안이 있었으나 여러 관련 단체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혀 사장되었습니다. (정확하게는 제일 주요한 법안은 모두 삭제된 상태로 수정되어 통과되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대학교들은 매년 살인적인 비율로 등록금을 인상하고 있으며, 그 돈이 정말 학교 운영에 옳게 쓰였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오히려 대학 운영의 투명성을 주장하는 교직원들을 자본의 힘으로 축출함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바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버렸습니다.
학생들은 무한 경쟁 시스템의 늪에 빠져 자기 앞가림만 하기에도 벅찬지라, 대학 운영의 투명성 같은 이야기는 사치스러운 주제가 되었습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학점을 따고, 토익 점수를 올리고, 해외 언어 연수를 가고, 공모전에 참여하며, 인턴십을 다니느라 바쁜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간 익숙해진 비판 없는 받아들임의 습관은 지금 현 상황을 관조하는 시도조차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런 이야기를 하면 귀찮은 주제라 치부하거나, 세상을 삐뚤게 보지 말라고 훈계하거나, 자신의 공부 환경을 방해한다고 불평하는 것이 현재 대학생들의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본 글은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를 집필하기 전,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적 제언을 써본 내용의 글입니다. 시기상으로 1년 전 즈음에 작성된 글이므로 감안하시고 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매일 혹은 이틀에 한 편씩 기 작성된 글을 게시할 예정이며, 약 30여 편 분량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의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본 글보다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바로가기 링크)의 글도 구독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