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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학습이란?

by 정유표
학습과 뇌의 작동 메커니즘


학습을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새로운 지식을 기억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과학적으로 자세히 나누어보면 첫째 외부 세계의 자극을 오감으로 인식하는 과정, 둘째 인식된 자극을 뇌의 신경세포에서 어떤 정보인지 해석하는 과정, 셋째 입수된 정보의 의미를 파악하여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과정, 마지막으로 수립된 전략을 외부로 표출하는 과정의 총체입니다. 여기에서 동일한 자극을 자주 접하거나, 신체에 위급한 정보로써 정서적 반응을 동반하는 경우에는 4가지 과정이 빠르게 이루어지도록 뇌의 신경 세포가 조직되는데, 이를 “학습”이라고 일컫습니다.


태아는 첫 출생 시 약 1천억 개의 뇌신경세포를 가지고 태어나며, 기본적인 생체 활동의 제어나 외부 정보를 감지하고 분석하는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러면서 새롭게 접하는 외부 세계의 정보 중 자주 접하는 것이나 생존에 필수적인 것들에 대해 빠르게 반응하기 위해 학습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때 뇌에서는 여러 신경세포가 연합 신경망을 이루게 되며, 어느 한 부분의 신경 세포에 자극이 주어졌을 때 다른 세포가 연쇄적으로 깨어나면서 복합적인 정보를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 도로를 질주하는 소방차를 보았을 때 뇌의 작동 메커니즘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볼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어딘가 불이 나서 소방차가 급하게 달려가는구나.’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뇌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복잡하게 이루어집니다.

먼저 눈을 통해 ‘빨간색 소방차’라는 물체 정보가 뇌의 시각 영역으로 전달됩니다. 다시 정보는 빨간 색깔 정보와 직육면체의 형태 정보로 분리되어 각 부분을 해석하는 영역으로 전달됩니다. 동시에 언어 영역에 정보가 전달되면서 ‘빨간색 소방차’라는 개념을 인식하게 됩니다.

한편, 소방차가 움직이고 있다는 위치 정보와 그곳이 도로라는 정보, 달리는 방향에 대한 정보도 공간 영역으로 전달되면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합니다. 청각을 통해서는 사이렌 소리가 감지되고 뇌의 청각 해석 영역이 기능합니다. 소리 정보는 연쇄적으로 뇌의 전두엽에 전해져서 지금까지 경험해 온 바에 따라 ‘비상 상황’이라는 인식을 하게 됩니다.

위에 나열된 정보들은 거의 찰나에 뇌의 각 영역들을 연쇄적으로 자극하며, 최종적으로 뇌의 전두엽에서 이것들을 종합하여 ‘어딘 가에 불이 났나 보다.’라는 추론을 하게 됩니다. 만약 소방차가 달려가는 방향이 우리 집이나 아는 사람의 집 근처라면, 또 다른 정보들이 같이 엮이면서 걱정과 두려움의 정서도 유발시키게 됩니다.


학생들이 공부를 할 때에도 동일한 방식으로 뇌가 작동합니다. 새로운 단원을 공부하기 위해 교과서나 참고서를 펴는 순간, 책에 있는 문자 정보들이 인식되고 언어 영역을 활성화시켜 단어의 의미를 떠오르게 됩니다. 이것들을 문장으로 연결하여 그 뜻과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뇌의 전두엽에서 담당합니다.


그다음은 새 단원의 처음 접하는 개념들을 머리 속에 넣을 차례입니다. 보통의 학습 과정은 예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좀 더 심화한 내용의 개념 정리가 나오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아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면 위에 기술한 뇌의 작동 과정이 기능하는 동안 예전에 배웠던 학습 지식이 같이 떠오를 것입니다. 여기에 새로운 지식을 덧입혀 생각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기존 지식이 발전되거나 수정되는 것이며, 학습이 잘된 지식은 다시 머리 속 어딘가에 잘 저장되어 시험 문제를 접했을 때 명쾌히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우리가 ‘창의적’이라고 하거나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안다.’ 고 평가하는 학생들은 이 과정이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공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이 과정에서 무엇인가가 어긋나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학생들은 교과서나 참고서에 나온 내용을 노트에 그대로 받아쓰고 외우는 방법으로 공부합니다. 그리고 연습 문제를 많이 풀어가며 틀린 문제를 복기하면서 잘못 파악했던 개념들을 바로 잡으며 마무리를 짓습니다.


이 방법의 문제점은 예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내용을 숙고하여 이해하지 않고, 새롭게 접한 내용인 것처럼 그저 외우며 머리 속에 저장한다는 것입니다. 뇌의 작동 과정 중 ‘예전에 배웠던 학습 지식’을 활용하지 않고 지식 조각들을 정리하지 않은 채로 여기저기 담아두기만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도서관에 책을 정리할 때 도서 분류표에 따라 찾아 꺼내기 쉽게 넣는 것이 아니라, 막무가내로 손에 잡히는 대로 쌓아놓는 것과 같습니다. 막상 책을 찾으려고 하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도 없고, 전혀 관련 없는 책을 꺼내게 되는 것입니다. (한편 일반적으로 중학교 초반까지는 인지 수준이 덜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암기식 공부가 필요합니다. 이는 뒷부분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정해진 답만을 도출하는 방식의 학습에서는, “A=B”라는 내용을 학습했을 때 오로지 “A=B” 만 기억하고 있으면 100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A=B”, “B=C”, “A=C”라는 세 가지 개념을 배울 때, 각각이 새로운 지식인 것처럼 외우면서 공부합니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A=B”, “B=C”라는 정보만 주어져도 “A=C”라는 답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굳이 외우지 않더라도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다면 스스로 생각하여 답을 낼 수 있는 지식이라는 뜻입니다.


중학교까지는 이런 공부 방법을 연습하는 시기입니다. 암기를 위주로 공부하지만 개념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개념을 생각해내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에는 학습해야 할 양이 워낙 방대한 까닭에 학교에서 “A=B”, “B=C”, “A=C”를 모두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험 문제에는 “A=C” 가 참인지를 물어보며 학생의 학습 수준을 평가합니다.


대개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시기에 성적이 수직 하락하는 학생들이 이 패턴에 적응하지 못하는 케이스입니다. 공부하는 방법을 변화시켜야 할 시기에 적절한 가이드를 받지 못하여 초등학교 때 했던 외우기 식 학습법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중학교 때는 밤늦게까지 라도 공부해서 시험 분량을 머리 속에 넣을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 때에는 하루 24시간을 공부하더라도 외울 수 없는 양이 주어지게 되어,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성적은 떨어지기만 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 과학 : 여름철의 기후를 공부하는 메커니즘

과학 교과 중 여름철의 기후 대해서 공부한다고 했을 때, 먼저 물질의 비열과 공기의 대류현상에 대한 지식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간략히 적어보면 바다는 육지에 비해 비열이 높은 물로 채워져 있으므로, 육지의 공기는 빠르게 데워져서 상승하게 되고, 바다의 공기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하므로 하강하게 됩니다. 그러면 공기가 내려오는 압력으로 바다 쪽은 고기압이 형성되고, 육지는 저기압이 형성됩니다. 그다음은 육지 공기가 올라간 공간을 메우기 위해 바다의 공기가 불어오게 되고, 그로 인해 바다 쪽의 바람이 불어오는 기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지식은 매우 다양합니다. ‘공기는 고기압에서 저기압으로 흐른다.’, ‘여름은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한국은 태평양이 남쪽에 위치하므로 여름철엔 따뜻하고 습한 바람이 불어온다..’, ‘태풍이 여름철에 불어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등의 것들입니다.

고등학교부터 실시하는 모의 수능 시험에서는 과정에서 도출되는 지식을 다른 교과와 연계하여 문제를 제시합니다. 기후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을 접목하여 진위를 물어본다 던지, 한국의 지형이 아닌 남반구의 여름철(1~2월)의 기후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저 외우는 방법으로만 공부했던 학생들은 기후와 연관된 역사적 사건을 외워야 하고, 남반구의 여름철 기후를 또 외우느라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공부 방법은 자기주도적 삶, 자기 주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지식을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과 그 맥을 같이합니다. 교과서와 참고서에 나온 지식을 인간 복사기가 된 것처럼 필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머리 속 구조에 적합하게 변형하고자 하는 그 순간이 바로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에서 뇌는 한 번 더 정보를 처리하기 때문에 반복 노출에 의한 학습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장점도 지니고 있습니다.



본 글은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를 집필하기 전,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적 제언을 써본 내용의 글입니다. 시기상으로 1년 전 즈음에 작성된 글이므로 감안하시고 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매일 혹은 이틀에 한 편씩 기 작성된 글을 게시할 예정이며, 약 30여 편 분량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의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본 글보다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바로가기 링크)의 글도 구독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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