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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무엇을 배우는가?

by 정유표
언어 학습의 중요성


지금까지 학습 과정을 중심으로 우리 뇌의 메커니즘을 살펴보았다면, 이번에는 학습을 통해 배우는 지식의 속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주요 학습 과목을 크게 분류해보면 언어를 포함한 생각과 사상, 행동을 연구하는 인문사회학이 있습니다. 그리고 물질 세상에 대한 학문, 즉 천체물리학에서부터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인간의 몸을 포함한) 자연계에 나타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이 있습니다. 인문사회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하여 인간의 사상과 행동을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탐구하는 인문사회과학 분야가 있고, 비언어적인 표현으로 인간의 정서와 감수성을 연구하고 추구하는 예술·체육 관련 학문들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어릴 때에는 사회 구성원에게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기초 지식과, 심도 있는 학문을 공부할 때 필요한 기반 지식을 배우기 위하여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 의 공교육이 의무로 시행됩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학문은 국어(언어) 영역인데, 그 이유는 어떤 학문을 막론하고 지식 습득을 위해서 언어 커뮤니케이션이 기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언어 학습을 간단히 생각하면 한글을 배우고 문장을 이해하며 구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은 가장 핵심적이고 인간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는 과정입니다. 사람은 어떤 수준의 언어를 구사하느냐에 따라 생각의 범위, 지식수준, 도덕 성향, 정서적 성향, 문화적 정체성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각의 범위는 그 사람이 소속된 국가와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회 문화는 국가 제도 수립과 시행에 중요한 요인이 되므로, 이 시기의 언어 학습은 그 사람의 사회 적응력까지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 적응력이란 집단생활에서 적절한 역할 수행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이는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평가하는 가장 큰 기준이며, 그 사람의 행복 수준을 판단하는 핵심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 언어 학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 타인과의 관계 설정 능력, 개인에 대한 긍정 해석 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어렸을 때에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다면 그다음의 기회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 학습은 언어를 많이 구사하며 소통해 보는 것이 첫째 방법이며, 책을 읽고 부모님·선생님과 다양한 대화를 나누는 독서 활동을 통해서도 훈련할 수 있습니다. (언어 학습의 중요성은 이미 “한국의 교육 주체들 – 가정” 편에서 다루었습니다.)


* 언어는 생각의 프레임을 결정한다.

영어에 “나”를 표현하는 단어로 “I, my, me, myself” 의 4가지 형태를 사용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위의 단어들이 쓰인 영문을 한국어로 번역할 때 주격, 소유격, 목적격의 형태로 쓰인 “I, my, me” 는 크게 위화감이 없습니다. 그런데 “myself” 는 그 의미를 한국어에서 정확히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문법적 정의로 재귀대명사라는 명칭을 쓰지만 사실상 한국어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용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개인을 중심으로 독립적인 문화를 발달시킨 서양의 사고방식과, 공동체를 중심으로 집단적인 문화를 발달시킨 동양의 사고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myself”는 자신을 타인과 구분하고 나 자신을 탐구하기 위한 목적에서 생겨난 단어입니다. 반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 시 했던 동양권에서는 필요가 없는 단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단어를 알고 있느냐, 자주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평소 생각과 사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소유의 개념을 알고 난 뒤에는 집안의 물건을 누구의 것으로 지칭하고 자기 것을 더 챙기려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다른 문화 상으로 인해 단어를 다르게 사용하는 예로써 “우리 집”이라는 표현을 영어로 바꿔 쓸 때에 단어 그대로 “Our house”라고 하지 않고 “My house”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어+목적어+동사”로 이어지는 한국어와 “주어+동사+목적어”로 이어지는 영어의 차이도 생각 방식을 크게 좌우합니다.

한국어는 “주어”와 “목적어”가 먼저 연결되면서 자신과 어떤 대상에 대한 관계가 먼저 표현되고 그다음 동사가 문장의 마무리를 짓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밥을 (먹는다.)”라는 표현을 할 때 “먹는다.”라는 표현을 하는 것 보다 “나” 와 “밥” 의 관계 설정을 더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영어는 “주어”와 “동사”가 먼저 연결됩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다는 표현이 우선이며, 그러고 나서 어떤 대상에게 행한 것인지가 나타납니다. 위의 예시를 다시 써보면 “I eat (food.)”처럼 표현됩니다. “I”라는 주체가 “ate”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를 정리해보면 한국어는 관계 중심의 정적인 언어라 할 수 있고, 영어는 주체 중심의 동적인 언어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행동의 성향에 큰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 언어 훈련, 독서 활동과 도덕성의 발달

도덕성은 자기 충동을 억제하고 친 사회적 행동을 하여 타인의 조력을 얻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도덕성이 중요한 이유는 개인의 영속성과 공동체의 결집을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도덕성의 발달을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은 개인과 사회에 피해를 주는 존재가 되고, 비도덕적인 개인이 많은 사회는 상호 불신으로 붕괴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영·유아기부터 학령기 전반에 이루어지는 언어 훈련은 도덕성의 발달에도 밀접한 연관을 갖습니다. 부모와 자녀는 밀접한 관계 속에 상호 대화와 소통을 하며 정서적 경험과 언어를 공유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언어 이상의 행동을 주고받으면서 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아야 할 것, 신체적 즐거움과 고통을 경험합니다. 이런 경험들은 나뿐만 아니라 부모도 같이 느끼는 것으로써 공감 능력이 발달하는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가장 원시적 형태의 도덕성은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공감 능력을 통해 타인의 즐거움과 고통을 이해할 수 있으므로 내가 싫어하는 것을 타인에게 행동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나의 행동을 제어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려는 행동이라 표현할 수 있으며 도덕성의 행동적 정의와 같은 의미입니다.

그중 독서 활동은 언어 훈련과 동시에 도덕성을 발달시키는데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상호 소통을 통해 경험을 공유한다고는 하지만,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경험 공유에서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인데, 일상적인 생활만으로는 다양한 정서적 체험을 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독서 활동은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나 필자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그들의 정서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범위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이 부족한 다양성의 부분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고 책 속 주인공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등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감정을 공유하는 것으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릇을 넓힐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언어를 중심으로 하여 인문사회 분야의 지식을 학습합니다. 국어, 사회, 역사, 도덕과 같은 과목들이 대표적이며 좀 더 언어를 잘 구사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개인 내면에 대한 이해, 사회의 법과 질서, 공동체의 정체성 등을 익히면서 정서적 건실함과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게 됩니다.


한편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자연 세계를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기초 지식을 습득합니다. 자연현상을 바르게 분석할 수 있는 힘과, 재현 가능성의 탐색, 최종적으로 이를 응용하여 미래를 예측하여 인간에게 편리한 도구를 만들 수 있는 지식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용되는 과학적 연구 방법론은 나의 지식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검증하는 도구입니다. 개인이 혼자 연구하던 영역을 집단이 함께 연구가 가능토록 하였으며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다양한 분야 발전에 기여하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중세 이후 자연 과학 분야가 눈부시게 발전하였고, 그 결과 현대 인류의 고도 기술산업 사회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주체 중심의 동적인 언어관을 가진 서양 사람들이 자연 세계 탐구에 더 적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인문사회학과 자연과학은 다시 인문사회과학으로 통합됩니다. 사람과 사회의 행동을 과학적 연구 방법론으로 분석하여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도는 이전에도 계속 이루어져 왔으나 1980년대 이후 생리학, 의학, 통계학, 정보통신 기술의 고도화에 힘입어 정치, 사회, 경제, 경영, 심리 등의 학문들이 사회과학의 범주에서 재탄생되고 있습니다. 그 영향으로 기존 인문사회학과 자연과학도 서로 융합하며 새로운 학문으로 재편되고 있으며, 현대 사회의 기업들이 바로 이 경계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무엇을 배우는 가에 대한 질문도 문·이과 융합적이고 창의적인 인재가 지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지식은 언어 학습으로 시작하여, 각 분야를 두루 접하면서 분야를 넓히게 되며, 다시 그것을 융합하여 통합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분야의 특수성에 따라 누군가는 특정 전공을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들을 종합적으로 연결하여 공공의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 IQ 검사의 오해, 똑똑하다는 것

뉴스 기사를 접하다 보면 한국 사람들은 IQ 검사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명문대 출신 연예인이 나올 때면 “멘사 출신의 천재 연기자”라는 수식을 자주 사용하고, 부모들도 학교에서 행하는 IQ 검사의 결과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우스갯소리로 IQ 검사가 100 이하가 나와서 공부를 포기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걸 보면 얼마나 한국 사회가 IQ 검사를 신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IQ 검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검사 결과값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저 130 이상이라면 똑똑한가 보다 하고, 150 이상이라면 정말 머리가 비상한가 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IQ 검사는 그렇게 단순하게 구성되지 않으며 여러 종류의 검사들 사이에서도 지능 검사의 실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합니다.

IQ 검사를 처음 개발한 목적은 세계 대전 당시 징집 병사들의 지식수준을 쉽게 평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전쟁 통에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아군을 쏘아 살상하는 사례가 많아지자, 적어도 피아를 분별할 수 있는 수준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평가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 후 다양한 분야에서 IQ 검사의 유용성을 파악하여 도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는데 IQ 검사가 내어주는 결과값이 다양한 분야에서 원하는 인재의 구분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초창기 검사는 대개 언어를 중심으로 한 질의응답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단순히 학력이 높고 배운 것이 많으면 높은 IQ가 나오고, 배운 것이 미천하면 낮은 IQ가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IQ 검사를 가지고서 흑인과 백인의 지능지수를 비교했더니 백인이 더 높게 나왔다는 결과를 통해 인종차별이 정당함을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종차별이 있던 시절, 흑인들의 교육 환경이 열악하고 교육 수준이 낮았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고 악의적으로 검사를 잘못 쓴 사례인 것입니다.

그 후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검사들을 개발하였지만, 기본적인 언어 형태의 검사를 완전 배제할 수는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시행하는 IQ 검사도 학생들의 현재 성적과 비례하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다고 이것이 ‘머리가 좋기 때문에 공부를 잘한다.’라고 단정 짓기는 어려웠습니다. 이해력이 높고 언어 구사력이 뛰어난 학생이 오히려 그렇지 못한 학생보다 IQ 검사 결과가 낮게 나온다 던지, 다소 둔하지만 열심히 공부를 하여 성적이 높은 학생이 IQ 검사 결과가 높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최근 일각에선 IQ 검사의 목적을 두고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여 EQ(감성지수), SQ(사회지수), MI(다중지능지수)와 같은 검사를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IQ=똑똑함”이라고 생각하는 관념이 매우 구태의연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머리가 좋고 똑똑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고 성공할 수 있음을 예측하는 다양한 지표의 중요성이 대두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이야기하는 “똑똑함” 도 단순히 IQ 검사 결과값 하나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층위로 볼 수 있음이 새로운 연구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이 분야를 특정한 연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여러 최신 연구 도서를 보며 생각한 똑똑함의 범주를 잠깐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1. 정보 처리가 빠른 것의 똑똑함 : 신경계의 전달 속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특정 신경 세포가 자극을 받았을 때 얼마나 빨리 다른 신경 세포에 정보를 정확히 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어떤 정보를 받았을 때 그에 대한 판단을 빠르게 내리는 능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자극받은 정보와 관련된 정보를 다양하게 떠올리는 것의 똑똑함 : 특정 신경 세포의 자극이 다른 신경 세포로 확산되는 범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여러 관점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경험과 직관에 따라) 다양한 정보 중 문제에 적합한 부분을 추출해내는 똑똑함 : 경험에 의해 학습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다양하게 떠오른 아이디어의 바다에서 주어진 자극에 가장 적합한 정보만을 추려내 선택하는 능력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4. 자극받은 정보와 다른 정보를 빠르게 전환하는 똑똑함 : 얼마나 집중력을 잘 유지할 수 있으며, 반대로 한 곳에 집중하다가 다른 곳으로 빠르게 집중 전환할 수 있는지의 부분입니다. 우리 뇌의 편도체에서 관장하는 작업 기억 영역의 능력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주제의 사건을 짧은 시간 내에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변호사, 변리사들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5. 나의 사고 과정을 타인에게 논리적으로 잘 풀어내는 똑똑함 : 위에 나열된 지적 능력이 언어로 전환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내가 생각한 것과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은 별개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단어를 알고 있는지, 문장 구사력은 어떠한지 등과 관련이 깊으며, 이 또한 훈련으로 향상이 가능합니다. 더 나아간다면 타인의 관점과 수준에 맞추어 적절한 문장을 구사하는 능력까지도 포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 글은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를 집필하기 전, 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사회적 제언을 써본 내용의 글입니다. 시기상으로 1년 전 즈음에 작성된 글이므로 감안하시고 보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매일 혹은 이틀에 한 편씩 기 작성된 글을 게시할 예정이며, 약 30여 편 분량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의 글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본 글보다 더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지속가능한 삶을 향해서』(바로가기 링크)의 글도 구독해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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