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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표 Apr 09. 2016

한국 교육의 현재와 미래

경제와 기술, 사회 문화로 통찰해 본 미래 한국 교육의 방향

성장을 위한 교육, 평가를 위한 교육


교육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크게 "성장을 위한 교육"과 "평가를 위한 교육"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전자가 학습자 중심의 관점으로 학생들이 지식을 쌓거나 지혜를 얻어 사회화되는 과정을 의미한다면, 후자는 사회의 관점으로 직무에 적합한 인재 평가 기준에 의거한 지식 및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으로 설명됩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개념은 서로 상보적이면서 이질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교육을 통해 개인이 성장을 하면, 얼마나 그 사람이 성장했는지 확인을 위한 평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호 보완적입니다. 평가 기준이 성장의 목표가 되어 학습 가이드의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반면 성장과 평가 중 어느 한 가지에 편향되어 버리면 상보성은 사라지고 이질적이 되어버립니다. 평가를 등한시 한 채 성장만을 염두에 둔 교육은 비실용적이고 무책임하지요. 어떤 목적으로 배우는지, 그 목표를 달성했는지 자각하지 못한 교육은 학습자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 평가만 중심이 된 교육은 비인간적이고 진짜 알아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하게 합니다. 평가의 과정에선 개인의 정체성이 무시당하기 쉽고, 평가 기준과 내용을 목적에 타당하게 맞추는 일 또한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상 우리나라의 교육은 초등학교 저학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평가를 위한 교육"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국제중·특목고 진학, 대학 입학, 기업 입사, 공무원 합격 등을 목표로, 그에 따른 유형화된 지식과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는 데에 주안을 두고 있지요. 


이는 대단히 현실적 관점의 교육입니다. 시대적으로도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한국 사회는 전쟁 이후 사람들이 일거리를 찾기 위해 정부 및 기업 주도의 시스템에 종속되어야 했으며, 기업 입장에서도 특정 직무의 적합성 판단을 위한 다면평가(=다면 교육)를 할 사회적 여건이 되질 못했습니다. 가정은 생존을 이유로, 기업은 성장과 효율을 이유로 "평가 중심의 교육"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평가 위주의 교육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발생시켰습니다. 단일 평가 기준(시험 점수)의 시스템은 학생들의 치열한 경쟁을 불러일으켰고, 경쟁에 밀린 이는 정서적 불안에 시달리며 극단적 선택을 하였습니다. 성적으로 우열이 결정되는 학교 문화는 학생들에게 생존에 대한 욕구를 자극시켰습니다. 이는 제 몸을 추스르는 데 최적화되도록 만들어, 굳이 나에게 피해가 오지 않는 한 다른 친구의 삶에 관심을 두지 않게 하였지요. 누군가가 학대를 받고 집단 따돌림을 당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더 큰 문제는 배움 내용과 실질적 타당성(교육을 통해 시대에 부합한 인재로 성장하는가?) 간의 괴리입니다. 21세기 고도 정보기술 사회가 도래하면서, 각종 기술은 눈 깜박할 사이에 발전하고 소비자 취향은 다양화되며 기업 간 경쟁은 글로벌로 확장되었습니다. 이제는 성실한 근로자가 아닌 능동적인 학습자가 필요해졌지요. 그러나 한국의 교육 방식은 정형화된 평가 기준에 맞추기 위한 "암기형 지식"에 치중하면서,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며 공부하는 능력을 훈련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시대는 계속 변해가는데 상사의 명령이나 과거의 매뉴얼만 따르는 획일화된 기계적 인재를 양산하게 되었지요.


시대에 부합되지 못한 인재 양성의 문제는, 사람을 모아 시장을 창출해야 할 기업들에게 가장 곤란한 상황을 안겨주었습니다.(사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한 경우가 더 많지만...) 나름 신입 교육을 통해 업무 훈련을 하지만 그것도 여유 자금이 있는 대기업만 가능한 일입니다. 대기업일지라도 많은 비용을 투자할 수 없습니다.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한 곳이지, 돈을 들여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곳이 아니니까요. 더군다나 20년 넘게 "암기형 지식"에 길들여진 사람을 바꾸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정말 일부 타고난 소수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 벽을 깨고 나오기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교육자들은 이런 문제를 직시하고, 참교육을 내세우며 인성과 창의를 키우는 대안적 교육을 제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진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기업-대학-공교육"으로 이어지는 근본적인 상위 구조가 여전히 "평가를 위한 교육"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대안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제도권 편입을 위해 다시 기성의 공부를 한다든지, 아예 한술 더 떠서 대입을 목표로 한 편법적 특수목적 학교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변화의 임계점


지금의 교육 시스템이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건재한 이유는, 속된 말로 "그래도 먹고 살만 하니까."입니다. 어느 하나만 손보기에는 다른 시스템과 얽혀서 효과가 미미한데다가, 문제 해결을 위해 급진적인 교육 개혁을 추진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가만히 있어도 중간은 가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그렇기에 교육의 변화는 현행 교육 제도권 내에서 일어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교육계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변화가 가장 늦다."라고 말할 정도로, 기존의 교육 시스템은 제도와 사람을 막론하고 너무 정체되어 있습니다. 외부 강연을 업으로 하시는 분들도 공통적으로 "선생님들이 가장 학습 태도(?)가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이골이 나서 그런 것일까요?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배움과 변화에는 인색하다는 사실은 참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새로운 교육을 요구해야 할 소비자들(학부모)은 어떠한가요? 교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비전이 없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공적 서비스로서의 교육에 아이들을 맡기는 것이 가장 현실적 선택입니다. 차라리 더 좋은 사교육 학원을 찾아서 내 아이만을 앞세우는 게 안정적이지요.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자식을 남들이 하지 않는 모험의 길로 내몰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만약 변화가 찾아온다면 아마도 그것은 교육계 내부가 아닌 외적인 요인, 소위 "먹고사는 문제" 때문일 것입니다. 최근 들어 자주 뉴스에 들려오는 경제 불황의 이야기, 특히 한국 산업계 전반에 드리워진 저성장과 신 성장동력 부재의 그림자는 사회 전반의 변화의 목소리를 드높일 것입니다. 지금은 이것이 정치적 이슈로 나타나고 있지만, 정치 분야가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히고 난 뒤에는 법과 경제, 그리고 교육에도 그 여파가 미칠 것입니다. 얼마나 파격적인 변화가 일어날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성장을 위한 교육"에 초점이 맞추어지겠지요.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어쩌면 더 이상 한국 교육의 인재를 보다 못한 기업이 나서 자체의 교육 시스템을 구축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삼성 같은 수준의 대기업이 초등, 중등, 고등 과정을 망라하는 교육 기관을 설립하고 졸업자에 대해 기업 내 채용을 보장한다면, 쌍수 들고 환영할 부모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매해 양질의 인재를 추려내기 위해 사용하는 비용과, 그럼에도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 채용되는 낭비 비용, 그리고 더 이상 기존의 국가 교육에 기댈 수 없는 수준으로 인재 고갈의 위기감이 고조된다면, 차라리 본인들의 필요에 맞는 인재를 맞춤형으로 키우는 것이 더 수지타산이 맞는 장사일 것입니다. (이미 기업들 자체적으로 대학졸업자와 인턴 사이의 교육기관 설립에 대한 논의가 오가고 있지요.)


이미 사회에 퍼져나가고 있는 대학 무용론은 대기업의 교육 시장 진출이 아니더라도 부모들의 모험적 선택에 힘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SM이나 YG 같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연습생 훈련 시스템이 그런 예가 되겠지요. 자체적으로 미래형 인재에 적합한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공교육 제도권과 분리하여 운영하며 국외 취업 및 스타트업 창업을 연계하는 사교육 업체가 등장한다면, 어차피 기대할 것이 없는 공교육보다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미 사교육 업계 또한 기성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새로운 혁신 사업 모델을 분주히 찾고 있습니다. 기존의 제도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점, 정보 기술의 발달로 적은 비용으로 국내·외를 망라한 지식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기업 특유의 민첩성과 맞물려 정체된 교육을 혁신으로 이끌 원동력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


그렇다면 새로운 교육은 어떤 패러다임을 취하고 있을까요? "평가를 위한 교육"이 아닌 "성장을 위한 교육"에 초점을 맞춘 학교 교실의 풍경은 어떠한 모습일까요? 미래 경제의 흐름과 기술의 수준, 그에 맞는 인재상을 생각해 보았을 때 다음의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미래 사회의 인재상에 대한 부분입니다. 앞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미래는 정보 기술의 급격한 발달로 하루가 다르게 정보와 지식의 공유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양날의 검과 같은 현상을 빚어내는데, 하나는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이 빠르게 축적되고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예전이라면 어떤 발명품을 개발하기 위해 도서관에 직접 찾아가고 관련된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보면서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제반 정보를 얻어야 했습니다. 목적하는 정보를 찾아내기도 어려웠고, 그것이 옳은 정보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또한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지요.


그러나 정보 기술의 꽃인 인터넷은 골방에 앉아서 세계 곳곳에 퍼져있는 최신 기술과 정보를 바로 찾아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관련 전문가를 찾기도 수월해졌고, 어떤 정보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비교 판단도 컴퓨터가 적절히 보조해주고 있습니다. 훨씬 적은 시간을 들여 더 많은 최신 고급 정보를 취합할 수 있게 되자, 각 영역의 기술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으며 그것이 다시 퍼져나가는 속도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반면 너무나도 빠른 변화는 "지식의 유통기한"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음식이 유통기한이 지나면 먹을 수 없는 것처럼, 지식이 쓸모 없어지는 시간이 빨라졌다는 것이지요. 하버드 정량사회과학연구소의 아브스만 교수는 『지식의 반감기』저서를 통해 현대 사회의 지식 유통기한을 제시하였는데요, 물리학은 13년, 경제학과 수학은 9년, 심리학은 7년, 정보통신학 관련 지식은 채 몇 개월도 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대학교 1학년 때 배운 최신 경제학 이론도, 남자 기준으로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을 졸업하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특히 모든 산업 영역이 정보 기술과 긴밀히 연결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기업 환경도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인재는 "능동적 학습자"여야 합니다. 과거의 지식을 남이 알려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그것만을 사용하는 사람은 빠르게 도태되기 십상인 것이지요. 변화하는 세계를 민감하게 인식하고 새 지식을 빠르게 습득하며 상황에 맞게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미래 시대에 중요한 역량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교육의 관점이 "성장을 위한 교육"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장에 동기부여를 받는 학생들은 졸업을 한 이후에도 성장을 목표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학습을 즐겁게 받아들일 것이며, 자기주도적으로 배움의 방법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방법일지 또한 시대가 바뀌는 바에 따라 역시 스스로 적응하겠지요. 지금처럼 정해진 평가 기준에 충족하면 학습을 멈춰버리는, 새로운 학습 방법에 적응하지 못해 구식의 것에만 집착하는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삶의 태도를 보일 것입니다.




교실과 교사의 변화


교실의 수업 장면과 교사의 역할도 굉장한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성장을 촉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요.


물론 기존의 지식을 가르치는 영역이 아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에 있는 교사보다 훨씬 더 지식을 잘 가르치는 사람들에게 역할이 넘어가겠지요. 이미 그 현상은 10년 전부터 진행되었습니다. 제 아무리 교사가 과목 수업을 잘한다 하더라도, 오로지 지식 수업만을 위해 특화된 학원 강사 및 인터넷 강사의 수준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생활지도와 교내 사무업무 등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반면, 인터넷 강사는 자신의 시간을 모두 들여 "재미있게 잘 가르치는" 방법을 연구합니다. 애초에 경쟁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닌 것이지요.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며 체력을 보충하고 강의는 학원에서 듣는다는 이야기를 "교사의 수치"나 "교권의 붕괴"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시대에 부합하는 교사 역할 재정립의 기회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기술의 발전과 사회의 변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면, 그것을 이용하여 "교사다움"의 가치를 드높이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 지식 수업을 가르치지 않는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현장의 교사는 인터넷 강사가 범접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직접 학생과 대면하며 대화와 소통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학생이 지식 강의를 통해 배운 것이 무엇인지, 어떤 점을 깨달았고 그것이 학생의 성장에 있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주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인터넷 강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때론 개인적인 일로 슬럼프에 빠지고, 너무 아는 것이 없어 무엇을 배워야 할지조차 모르는 것이 학생이니까요. 교사는 학생의 최측근에서 학습과 성장을 촉진하거나 점검하는 역할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수업을 들어야 하는지 설계하거나, 공부를 하는 데 있어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 확인하고 조력하는 일 등이 되겠지요.


이때에도 교육의 방점은 "성장"에 맞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기성화 된 평가를 통해 지식의 알고 모름을 평가하는 것은 앞서 말한 "지식의 유통기한"에 의해 무용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장"은 객관화된 지표로 나타낼 수 없습니다. 어떤 학생이 예전보다 더 성장했는지, 혹은 다른 학생에 비해 더 뛰어나다던지 하는 것을 정성적으로는 인식할 수 있어도 객관적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억지로 그것을 수치화하는 것 자체가 오류이며 더 많은 문제(평가의 신뢰성과 타당성)를 가져올 것입니다.


'어, 그러면 대학은 어떻게 들어가나요?'라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하겠네요. 프랑스나 핀란드와 같은 예가 적절한 답이 될 것 같습니다. 대학 수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을 갖고 있는지를 절대평가의 시험으로 인증받고, 컷트라인 이상의 점수를 받은 학생들은 모두 "PASS" 의 자격으로 논·구술의 방식으로 최종 평가를 받도록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평가자의 타당성과 신뢰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에, 수험자의 정보는 이름을 포함하여 최대한 블라인드 시켜 평가받도록 하고, 각 대학의 합격/불합격자의 답안지는 어느 누구나 볼 수 있게 인터넷에 공개하여 정당한 합격자 판별 여부를 감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보 기술의 발달은 대학의 역할과 존재 타당성에도 도전이 될 것입니다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대학 절대주의에 빠져있기에 첨언하였습니다.)


아울러 여러 학생들을 모아 팀을 이루어 협력을 이끌어내는 프로젝트 관리도 매우 중요한 영역이 될 것입니다. 『한국 기업의 혁신이 어려운 이유』(바로가기 링크) 글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시장의 언어(소비의 문법)가 자본 매출이 아닌 인적 플랫폼의 보유 여부로 변화하였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할 때만이 성과를 거두는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감성, 조직의 문화, 팀 구성원의 단결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인성과 협력이 절실한 시대인 것이지요. 궁극적으로 모든 기술의 방향은 사람과 사람 간 커뮤니케이션을 향할 것입니다. 기술의 발달은 이것을 더 편하게 해주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까요.


오프라인 학교 현장에서는 직접 학생들이 살을 맞대며 경쟁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다룰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인성을 키우고 협력하는 방법을 훈련하며 성장할 것이며, 교사는 그 과정의 관리자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수 천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전파하는 인터넷 강사에게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변화한 교육에서 키워질 인재는 "인성", "성장", "창의" 등의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사람들을 잘 이해하고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적응하는 사람은, 기존의 문법에 고착되지 않고 상황에 적절한 해결책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모든 사회 영역을 대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평가를 위한 교육"도 중요한 축이며, 공무원처럼 이미 정해진 일을 안정적으로 해야 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기존의 평가 방식이 더 적합합니다. 다만 지금 시대는 지나치게 평가 위주의 교육으로 적절한 대응을 못하는 만큼, 성장을 위한 교육에 주목을 해야 하는 것이며, 가장 변화가 시급한 영역부터 서서히 바뀌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



※ 다음의 링크 제가 본 글을 쓰기 전에 추진해보고자 하였던 프로젝트 제안서 자료입니다. (사실상 이 글이 프로젝트 제안서에 대한 설명글이라 할 수 있겠네요.) 많은 분들이 공유하여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올립니다.


한국 사회와 교육의 미래를 위한 미래형 교육센터, 운영 프로젝트 제안서






2022년 10월 신간


불안과 슬픔이 휘몰아치는 혼란스러운 시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에서 이 험난한 세월을 헤쳐갈 지혜를 찾아보세요.




구매 정보, 네이버 도서 링크 : https://bit.ly/3SCIkc9  



목   차

시대의 혼란 속에서

1. 문제 제기

2. ‘왜’라는 질문의 힘

3. 우리의 익숙함에 ‘왜’를 묻자

4. 현실의 혼돈 속으로

5. 한 차원 높은 시선에서

6. 다시, 자연으로          



우주: 자연의 진화 법칙     

7. 왜 우주를 사유하는가

8. 상식 밖의 우주

   -  우주의 중심은 어디일까

   -  21세기 지구의 1초와 138억 년 전 우주 중심의 1초는 같은 1초일까

   -  우주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9. 빅뱅에서 생명까지

10. 의식에 관한 새로운 관점

11. 무의식과 비의식

12. 영성

13. 홀로 존재하고 함께 창발하는 자연의 진화

14. 역사의 필연, 개인의 우연

   -  선형 세계관 대 복잡계 세계관

   -  미래를 가늠할 수는 있지만 누가 언제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자연의 세계

15. 진화와 도태의 사이에서

   -  사회진화론과 상호부조론

   -  필연적 도태와 인류의 진화

   -  누가 진화를 결정하는가: 적합도 지형

   -  유연성과 다양성

   -  불용지용(不用之用)과 총체(wholeness)의 자연

16. 원형(原型)에서 분화로, 다시 통합의 제자리로

   -  죽음에 대하여

17. 무(無)에서 유(有), 다시 무(無)     

     


사회: 냉혹한 생존의 장(場)     

18. 나약한 인간, 집단생활의 시작

19. 문명의 태동, 국가와 종교

   -  사람 위의 법

   -  표준 화폐의 등장

   -  스스로 복종시키는 최고의 기술, 종교

20. 이성 과학 합리의 시대

   -  세상 모든 것의 혁명

   -  금화에서 지폐로, 가치의 진화

   -  종교를 대체한 공교육

   -  영토 전쟁에서 식민지 쟁탈전으로

   -  초강대국 미국의 비상

21. 세계화, 미디어, 다원주의

   -  대공황과 세계 대전 이후

   -  여론과 미디어

   -  마케팅과 물신주의

   -  문화 전쟁과 코퍼라토크라시

   -  인터넷과 중우 정치의 시대

22. Spiral Dynamics, 나선형 역학 이론

   -  1단계: 미분화된 사회

   -  2단계: 원시 권력 사회

   -  3단계: 절대 질서 사회

   -  4단계: 목적 지향 사회

   -  5단계: 다원론적 사회

   -  6단계: 통합 의식 사회

23. 붕괴의 징후들

   -  세계화의 그림자

   -  21세기 신 냉전의 개막

   -  지속 불가능한 이자 기반 금융 시스템

   -  도시화의 모순

   -  혁신의 한계, 정치 및 행정 시스템의 경직

   -  결(結)

24. 진화와 도태의 갈림길에서

   -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가는 유유한 흐름

   -  선(線)에서 원(圓)으로         

 


인간: 존재의 이유     

25. 깨어나는 사람들

   -  깨어남을 이끌어 줄 재료들

26. 인간의 존재 목적

   -  우주를 바라보는 자

   -  사회와 역사, 개인의 과업

   -  개인의 성장

27. 자유와 얽힘 사이에서

   -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을까

   -  자유를 향한 본능

   -  얽힘의 모순

   -  자유와 얽힘의 균형

   -  우주적 사명으로서의 자유

28. 성장의 두 날개

   -  주체성과 총체성

   -  지성과 감성

   -  무지(無知)는 악행의 근원이다

29. 의식과 영성의 날아오름

30. 우리 앞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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