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없는 청년, 노쇠해가는 사회
청년 빈곤
우리나라의 20대는 정말 가난합니다. 물질적인 돈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마저도 너무 빈곤하고 가볍습니다. 어딘가 모르게 마음 한쪽이 비어있고, 메말라있는 느낌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쟁은 치열하고, 사회는 각박해서 희망이 보이질 않으니 제정신이 바르고 꼿꼿한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요. 청년 빈곤의 문제는 여느 다른 빈부 문제보다 더 큰 악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장차 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 시대를 이끌어갈 세대들이 빈곤과 패배의 정체성에 빠져있다면, 심적, 물적으로 이 사회는 퇴보의 길로 접어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신 성분에 따른 빈부격차와 교육의 부재, 돈 있는 집안에서만 가능한 좋은 대학과 직업에 대한 도전들은, 애초에 출발선상이 다른 삶에 대해 자조하게 만듭니다. 제 아무리 노력해보아도 도저히 바꿀 수 없는 결과, 이미 정해져 있는 답 앞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포기하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립니다. 일본의 장기불황 속에 나타난 "사토리 세대"가 이제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5포, 6포 세대를 넘어 N포 세대라는 단어까지 등장하고 있으니까요.(참고기사 : 안타까운 달관세대 출현, 월급 200만원 미만 몇%?(바로가기 링크))
이 뿐만이 아닙니다. 대학을 가서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자금을 대출합니다. 더 이상 아르바이트로 학자금을 댈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아르바이트를 한만큼 공부는 소홀히 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또 뒤쳐집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지요. 인턴생활만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30대에 가까워져 있습니다. 은행의 학자금 대출 상환 독촉 문자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오고요. 앞과 뒤가 꽉 막힌 삶에서 무슨 노력과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도 기성세대들은 청년 세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들은 배를 굶어가며 그저 밥을 주고 잠잘 곳만 줘도 감사하며 열심히 일을 배웠다고 합니다. 청년들에게 의지가 없고 배가 불러서 저런다라고 나무랍니다. 노력을 더 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입니다. 그네들이 그렇게 형편없는 대우를 받아가면서도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그렇게 어려운 삶을 살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고, 그렇게 일을 하고 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술을 배우고 나면 어디 가서 점포 하나 차려 일가를 이룰 수 있었을 정도로 사회가 발전하지 않았었습니다. 도처에 기회가 널려있었던 시대였던 것이지요.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에서는 잘 나가는 젊은 친구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대기업에 들어가서 명품 가방을 사고 멋진 자동차를 몰며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꽃 같은 청춘을 불사르지요. 그런데 나는 발을 다 뻗기에도 불편한, 볕도 채 다 들지 않는 조그만 창문이 달린 고시원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거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근근이 모으며 삽니다. 미래를 꿈꾸며 희망하는 것은 사치입니다. 편의점 알바는 그냥 평생 편의점 알바일 뿐이죠.
옛날처럼 무슨 기술을 배우고 나간다 해도 어디 자기 사업하나 차릴 곳이 없습니다. 설사 가게 하나 낸다 해도 말아먹기 십상이지요. 가뜩이나 50대 자영업자들이 쏟아져나와 출혈 경쟁을 하고 있는 마당에 뭘 해도 되지 않을 것만 같은 일 투성이입니다.
이쯤 되면 그저 바르게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살아주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미국처럼 총기 소지가 합법화되어있다거나 했으면 아마 폭동은 나도 몇 번은 더 일어났을 텐데 말이지요. 혹자는 젊은이들이 왜 가만히 있느냐고도 합니다. 자기들은 몸을 바쳐 민주화 투쟁을 해서 자유를 얻어냈다면서, "요즘 젊은것들은..." 하며 답답해하지요.
그런데 청년들을 이렇게 만들어놓은 것은 그 기성세대라는 것을 알까요? 치열한 경쟁 속에 획일적 답 맞추기 주입식 교육만을 시키고, 스스로 선택권을 행사할 기회부터 빼앗긴 그들에게는 창의와 변화가 없습니다. 이런 사회에 순응하는 법만 배웠지, 이 사회가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생각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대학 학생운동의 흐름이 무너진 것도 그즈음인 것 같습니다. 좋은 회사에 가기 위해 토익 점수를 따고 인턴 경력을 쌓기 시작한 시점부터 사고하고 행동하는 대학생은 사라졌습니다.
앞으로 몇 년 후면 이제 더 이상 변화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패배와 무기력에 그들의 삶이 완전히 고착화되어버리는 시점이 오면, 그 어떤 사건도 20대 젊은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사회는 그렇게 성장 동력을 잃고 침잠되어 가겠지요. 단순히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생각들이 모여 사회 전반의 문화가 되고 시류를 이끌어나갈 것입니다. 그 전에 우리는 어떻게든 무엇이든 해야만 할 것입니다.
저출산, 노령화
청년 빈곤과 삶에 대한 무기력이 현실적으로 드러나는 문제는 저출산입니다. 미래에 희망이 없다 보니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아예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앞서 8부의 글(바로가기 링크)에서는 여성의 사회 경력단절을 주제로 저출산 문제를 언급했지만, 도저히 감당 불가능한 자녀 양육과 교육비는 아이를 낳고 키울 엄두를 못 내게 합니다. 자신도 이렇게 살기 팍팍하고 힘든데, 자녀들에게 암울한 현실을 대물림해주기 싫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출산은 노령화 문제와 하나의 패키지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아 사회 중추 생산인구가 줄어드니 상대적으로 노령층 인구가 늘어나는 것이지요. 실버산업 등 새로운 시장 창출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생산 노동력이 줄어들기 때문에 사회가 부담해야 할 부양비용이 늘어나게 됩니다. 아예 나몰라라 하고 노인 부양과 복지에 신경을 쓰지 않아버린다면 모르겠지만, 가족들은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고 나라에서는 기초생활비 등 최소한의 비용이 사용될 것입니다. 그 돈은 고스란히 노동 인구에게서 납부받은 세금으로 충당될 것이고요.
곧 사회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로 이어집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에 쓰여야 할 세금이 노년 세대의 복지로 사용되어야 하니까요. 그만큼 투자가 줄어들고 성장 동력이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구가 적어지면 국내 시장 규모도 줄어드니 여러 사업 분야도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물건을 잘 만들어도 사줄 사람이 없으니 기업의 규모도 작아지는 것이지요.
이런 저출산과 노령화의 문제는 지금 당장 눈에 띄진 않지만 임계점을 넘어가는 순간, 사회 성장 동력이 무너지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됩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미 손쓸 방법이 없는 종류의 병처럼 말입니다. 얼마 전 박종훈 KBS 경제부 기자가 쓴 책에 관련 내용이 잘 정리된 것 같아 관련 기사를 소개합니다. (참고기사 : 한국은행 출신 경제전문기자가 제안하는 생존전략(바로가기 링크))
내용을 요약하자면, "더 이상 우리나라 경제성장 동력(세계적으로도)은 남아있지 않으며 유일한 방법은 생산가능 인구를 늘리는 것이다. 그 바탕은 공정한 분배의 룰을 세우는 것이고 청년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해답이다.(지금처럼 은행 빚을 권장하며 대학을 가거나 주택 구매를 부추기지 말고...)"는 것입니다.
이것은 청년에 대한 복지가 아니라 미래 사회에 대한 투자입니다. 인구가 늘어나야 소비자가 늘어나고 시장 규모도 커지며, 생산 인구 또한 늘어나서 사회 복지비용에 대한 부담률도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것을 "포퓰리즘"이라면서 반대합니다. 역시 개인소유 사상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적 논리이지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는데 단지 청년이라는 이유로 생활비를 지원해준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여깁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으니까요.
게다가 사회의 룰을 바꿀 힘을 가진 자들은 이런 문제를 바꿀 의지도 없고 이유도 없어 보입니다. 국민들이 더 싼 값에 일을 많이 해주면 좋고, 부족한 노동력은 외국에서 수입하면 되거든요. 물건이 안 팔리면 외국에다 팔면 되고, 수가 안 맞는다 싶으면 회사를 접고 그 돈으로 해외에 나가 호의호식하면 됩니다. 몇 대는 떵떵거리며 살 돈을 모아놓았기 때문이지요. 그 와중에 고통받고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은 내 알바 아닙니다. 어차피 남의 이야기, 경쟁에 실패한 무능력한 패배자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얼마 전 저출산, 노령화 대책으로 국회에서 제안한 학제개편안은 그들이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참고기사 : 새누리당, 정부에 초·중등과정 1년 단축 제안(바로가기 링크)) 좀 더 일찍 학교에 들어가고 사회 진출을 빨리하면, 그만큼 사회에 진출하여 노동을 시작하는 시기가 빨라지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사람 수가 적으니 일하는 시간을 더 늘리자는 것인데, 돼지나 닭을 키울 때 그렇게들 합니다. 좀 더 빨리 살찌워서 일찍 출하시키는 것만큼 시간도 절약되고 매출을 올릴 수 있지요.
학제가 개편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겪을 혼란과 변화는 그다지 안중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근본적으로 왜 저출산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는 것인지, 아예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바꿔줄 마음은 없으니 저런 식으로만 대응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기대할 곳은 우리 스스로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남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려는 사회가 아니니까요. 기득권층에게 국민들을 위한 정책과 제도를 기대하는 것은 이제 그만두어야 할 듯합니다. 오히려 그만큼 높은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다른 사람을 이기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을지 생각하면, 국민의 안위를 를 생각하며 일을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자체가 큰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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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