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촉발한 한계비용 제로사회로의 진입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 법대 교수 캐럴 로즈는 1986년 『공유지의 희극』이라는 논문에서, 하딘이 주장했던 "공유지의 비극"과 달리 비경합성 원리가 적용되는 시장에서 나타나는 공유경제의 긍정적 측면을 조명합니다. 로즈는 마을 축제가 벌어지는 상황을 예로 들어, 더 많은 사람이 축제에 참여할수록 기쁨의 가치가 높아지는 속성의 공유경제가 있음을 설명하였지요. 그리고 십여 년이 흐른 뒤, 월드와이드 웹 인터넷이 탄생함으로써 로즈가 소개했던 비경합성의 속성을 가진 공유시스템 현실세계에 등장하였습니다.
인터넷은 로즈가 예시로 든 마을 축제와 같이, 더 많은 컴퓨터(디바이스)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을 때 더욱 큰 정보가치를 지니는 공유 경제망입니다. 각 컴퓨터들은 정보를 생산해내고 또 다른 컴퓨터가 생산한 정보를 소비하며 체계적인 정보망을 구축하지요. 수많은 기기가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을 때 더욱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고, 이를 이용하여 각종 현상의 분석 및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이용한 마케팅 및 판매활동은 시공간 한계를 넘어선 거대한 시장이 되는데, 이용자가 많을수록 시장 규모와 가치는 더 높아지게 됩니다.
이미 우리는 그 경험을 오랫동안 해왔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상거래와 금융거래, 정보교환은 시공간의 한계로 불가능했었던 소비자의 권익 및 의견 주장, 단체 행동을 가능케하였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수록 이익을 극대화하여 보다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기업 또한 여러 채널로 분산되어 있던 소비시장을 인터넷으로 집중하여 관리함으로써, 비용을 줄이면서도 판매 실적은 높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인터넷은 어떤 특성이 있길래, 다른 전통적인 산업 구조와 다르게 "공유지의 희극"이 작동되는 모델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초기 투입되는 거대 인프라 설치비용 대비 후속 시설의 추가 및 관리비용이 적고, 수많은 사람들이 인프라 비용을 분산 부담하여 일인당 사용료 대비 인터넷 참여 수익이 훨씬 높았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도로 및 철도, 전기, 수도시설이 건설되고 사용되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투입됩니다. 그래서 보통 국가가 주도하여 시설을 만들거나, 자본력이 풍부한 기업이 거액을 투자하여 제작하지요. 그리고 한 번 제작된 시설은 적은 비용으로 유지보수를 하며 사용성을 보장하면서, 사용료 수익은 시설을 폐쇄하기 전까지 계속 거둘 수 있습니다. 최초 건설비를 회수한 시점 이후에는 유지비용 대비 큰 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시설을 사용하는 사람은 대개 몇 십만, 몇 백만 명 단위이기 때문에 비용을 사용자 수로 나누면 일인당 부담하는 비용은 극히 미미하게 됩니다. 국가 세금을 얼마 내는 것을 통해 전 국토의 도로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인프라의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갔습니다. 물건을 생산하고 유통하며 판매하는 기업들, 생필품을 사고 생활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얻으려는 개인들은 적은 비용으로 도로, 철도, 전기, 수도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보다 싼 가격으로 빠르게 자원이 유통되면서, 전체적인 상품의 생산 비용을 감소시키며 경제 효율성(생산성)을 높여갔지요. 그만큼 기업은 수익을 거두었고, 소비자는 싼 가격으로 재화를 소비할 수 있었습니다. 인프라 건설을 위해 각자가 부담한 비용은 미미했지만 얻은 수익은 훨씬 컸던 것이지요.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인터넷은 그 자체가 초유의 비경합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공유경제 시스템이면서도, 이에 그치지 않고 다른 분야의 산업 시장을 "공유지의 희극"이 작동되는 공유경제 모델로 전환되도록 하는 촉진자 역할도 하였습니다. 기업들이 상품의 생산과 유통, 판매 비용을 절감하면서 각 상품의 한계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한계비용이란 하나의 재화 단위를 추가 생산할 때 드는 비용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떡볶이 1인분을 만들어 팔기 위해서는, 가게도 구하고 각종 주방기구도 마련하고 내부 인테리어도 해야 하며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까지 구매해야 합니다. 3천 원 남짓한 매출을 얻기 위해 수천만 원이나 되는 돈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후 다시 떡볶이 1인분 추가 생산을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음식 재료만 더 구하면 됩니다. 이때 들어가는 추가 음식 재료비와 그 외 시설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한계비용"이라 지칭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인터넷은 한계비용은 거의 제로에 가깝습니다. 이미 깔려있는 인프라 망에 컴퓨터에 랜선을 꽂기만 하면 바로 1 단위의 추가 생산이 이루어집니다. 전체 망이 동작하기 위해 필요한 전기료와 시설 관리비만 있으면 무제한에 가까운 추가 생산이 가능한 구조인 것이지요. 따라서 어떤 상품 시장이 "공유지의 희극"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한계비용이 제로에 가까워야 한다는 사실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상품 추가 생산 비용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참여해도 경쟁이 붙지 않는 비경합성의 원리가 작동되는 것이지요.
인터넷이 등장함으로써 낮아진 생산 비용과 규모의 경제를 갖춘 거대 사업자들의 등장은 세계 산업 구조의 지각 변동을 가져왔습니다. 앞서 "기업 자체의 순환" 주제(바로가기 링크)에서 설명한 것처럼, 정보통신 영역을 장악한 구글이나 애플 같은 기업이 자신들의 플랫폼을 앞세워 타 사업분야의 상품 가격을 무료에 가깝게 낮춰버렸지요. 예전에는 길을 찾기 위해 지도책을 사고, 편지를 보내기 위해 우표를 구매하고, 연락을 하기 위해 통신비를 지출했다면, 이젠 저렴한 인터넷 비용과 디지털기기를 통해 무료로 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대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광고 등 기업에서 거두어들이는 수익 채널을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를 무료화 함으로써 시장 패권을 장악하였지요. (이런 방식의 사업 형태를 플랫폼 사업이라고도 합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은 이러한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측하여 "한계비용 제로사회"라고 명명한 뒤 동명의 저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자본주의 속성을 가진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영속적이고 이익을 꾀하기 때문에 항상 상품의 한계비용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그 결과 최종적으로는 거의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상품을 제공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상적으로만 생각하였던 한계비용 제로사회가 인터넷을 필두로 시작되고 타 분야의 시장마저 잠식하면서, 리프킨은 자본주의 시장이 거대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주장합니다. 자본을 매개로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경제 체제에서, 소비에 필요한 비용이 급감하고 이에 여러 시장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상품을 팔던 기업들의 생존이 위협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실제로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오프라인 신문이나 잡지 등의 이슈성 출판 시장은 궤멸되다시피 하였고, GPS를 이용한 각종 편의기기나 소형 미디어 도구들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두 통합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기업이 도산하고 일자리는 줄어들며, 개인의 구매력은 낮아지는 불황 사이클을 만들어내게 된 것이지요.
기존의 불황과 다른 점은 겉으로 나타나는 경제 지표는 건전해 보인다는 것입니다. 산업계가 소수의 기업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경제 가치는 유지되었지만, 자본의 순환은 정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보혁명 및 인공지능 도입에 의한 효율화, 인터넷 시장 확대로 인한 유통 구조의 단순화, 기계 산업 발전에 의한 자동화가 어우러져 기업 간, 개인 간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서서히 시장 동력은 저하되는 늪에 빠져버리게 된 것이지요.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제러미 리프킨은 앞으로 일어날 전력 분야, 물류 분야의 한계비용 제로화는 지금의 정치, 경제, 행정 제도로는 사회를 유지시킬 수 없을 정도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하였습니다. 식량을 제외한 거의 모든 생필품을 아주 값싼 가격에 구매(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고, 이때에는 "협력적 공유사회"가 새로운 경제를 주도하는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본 글은 연재 형식으로 2015년 10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작성되었습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을 더 다듬고 짜임새있게 구성하여, 2017년 5월『이기심의 종말』로 출간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흥미가 동하신 분들은 아래 소개를 참조하시여 책을 구매해 보시면 더욱 알차고 최신화된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신자유주의적 시장자본시스템에 의해 파편화-양극화된 사회,
한계비용 제로사회와 4차 산업혁명이 가져다줄 희망과 위기,
힘없는 개인은 혼돈의 미래를 헤쳐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첨단 기술 사회 속 우리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역사, 미래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현상을 조망하고 원인을 분석하여, 순환의 가치관과 이타적 본성의 공동체의 탄생을 주문하는 『이기심의 종말』(부제: 당신은 어떤 내일을 꿈꾸십니까)이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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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목차 정보 >
1장. 우리 앞의 현실
1. 자본주의와 개인소유 사상
자본주의 / 블라인드 스팟 / 개인소유 사상
2. 개인소유 사상의 사회문화
생존과 투쟁, 공동체의 역사 / 한국의 공동체 해체 / 혼자가 될 때까지 / 경영과 노동 / 기업 조직 문화 / 교육 / 자녀 양육 / 국가 정치/ 경제 제도 / 학문과 문화 / 성 역할 갈등 / 이성 교제 / 행복
3.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개인편
경제 능력의 상실 / 직업의 귀천 / 실직과 사회 안전망 / 결혼, 출산, 경력단절 / 산업 구조의 변화 / 주거 불안정 / 자녀교육 / 질병, 사고, 장애 / 다시 일어설 기회가 없는 사회
4. 지속가능한 삶의 위기 - 사회편
빈부 격차, 소득 격차 / 청년 빈곤 / 저출산, 노령화 / 산업 성장의 정체 / 미래 인재의 부재 - 교육과 기업문화 / 필연적 불황과 전쟁
2장. 선택의 시간
5. 순환, 지속가능한 삶의 가능성
개인의 위기, 사회의 위기 / 순환의 부재 / 기업 내 개인의 순환 / 기업 스스로의 순환 / 기업 밖에서의 개인의 순환 / 자본의 순환 / 직업 분배의 모순 / 직업의 가치, 개인의 가치, 사회적 효용 / 순환이 있는 사회
6. 공유경제와 한계비용 제로사회
공유경제의 역사 / 공유지의 희극, 인터넷 / 인터넷 + 자본주의 = 한계비용 제로사회 / 에너지 인터넷, 운송 인터넷 / 공유경제의 현재와 미래
7. 제4차 산업혁명과 위기의 미래
제4차 산업혁명 / 이제 기업과 노동자는 어떻게 돈을 벌지? / 현대판 러다이트 운동 / 창의적 직업으로의 전환, 가능할까?
3장. 미래를 여는 열쇠
8. 공유경제 시대의 사상들
협력적 공유주의자의 시대 / 망중립성, 오픈소스 운동가들 / 공유가 소유를 앞서 나가는 시대 / 공유가 가진 힘의 원천 / 공유경제 시대의 동반자들
9. 지속가능한 삶을 향한 의식적 연대
대안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연대 협력의 필요성 / 기술의 진보, 연대의 가능성 / 중앙 집중화된 권력에서 분산된 권력으로 / 연대 협력의 장애물들
10. 개인소유 사상의 그림자
미래를 결정하는 것 / 자기포장, 위선, 성장 절대주의 / 배려와 공감이 없는 자기중심 사고 / 불신 / 물질만능주의와 소유욕
11. 개인에서 공동체로
내려놓기 / 보다 영속적인 가치 / 관심, 인정, 배려 / 공동체 의식의 확장
4장. 우리가 꿈꾸는 세상
14.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소유자, 생산자, 소비자가 하나 된 공유기업 / 생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망 / 최소 지원(복지)의 기준 : 주거, 교육, 질병 / 개인의 성장과 사회적 기여에 특화된 직업 / 변화된 교육이 바꾸어갈 세상 / 제약적 가족 관계에서의 해방 / 여성에 대한 관념의 변화 / 여성, 남성이 아니라 개인으로 대접받는 사회 / 지속가능한 삶이 있는 사회
15. 우리를 넘어 세계를 향해
페이비언 사회주의, 칼 폴라니, 제3의 길 /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차이 / 언어의 힘, 한민족의 정신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