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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린나로 Nov 21. 2023

자존감 쩌는 파란 거인!

빨간 불꽃이 한계점을 넘어 달아오르면 새파래진다.

'블루 자이언트'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사전 정보 없이 큰 기대 없이 어쩌다가 보게 되었다가 가슴이 두근거리게 된 우연의 선물.


이야기

재즈 플레이어가 되겠다고 고등학교 졸업 후, 색소폰 하나 들고 무조건 상경한 다이, 그는 앞뒤 없이 세계 최고의 재즈 연주자가 되기로 한다. 이유와 방법 따위는 모른다. 그냥 꿈을 향해 달릴 뿐이다. 도쿄로 왔지만 갈 곳 없는 그는 급한 대로 친구 슌지의 집으로 찾아가 더부살이를 하며 날마다 색소폰을 연습하고 알바를 하면서 기회를 엿보다, 실력이 대단한 재즈 피아니스트 유키노리를 만나 자기와 팀을 하자고 달려들고 유키노리는 다이의 열정에 끌려 어리둥절 함께 하게 된다.


무조건 자신의 집에 들이닥친 다이로 인해 불편한 슌지, 어느 날 다이가 연습하는 길거리로 찾아가 콜라 깡통을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리듬을 맞추어 주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날부터 드럼을 연습하기 시작하고, 초짜 드러머와 함께 팀을 만들어 JASS를 결성한다.


늦게 시작한 슌지는 둘의 연주를 따라가지 못하고 연주할 때마다 몇 백번씩 틀리고 박자를 놓치지만 그가 따라올 수 있도록 공간을 열어준다. 초짜를 반대하는 유키노리 하지만 재즈에 반해서 함께 하겠다는 마음을 어떻게 저버릴 수 있겠냐는 다이의 말에 그냥 입을 다물고,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그 서투름도 함께 어우러지면서 셋은 점점 더 큰 무대로 나아가게 된다.





상식적으로 음악이든 미술이든 테크닉을 기본으로 한다. 테크닉이라는 것은 시간을 통해 늘어나는 것이지 어느 날 갑자기 좋아지는 법은 없다. 피아니스트 유키노리는 4살부터 피아노를 쳤고 훌륭한 연주력을 지녔다. 다이는 색소폰을 시작한 지 3년, 슌지는 드럼 초보이다. 유키노리는 훌륭한 연주를 하지만 그의 열정은 틀에 갇혀있다. 다이는 3년 동안 쉬지 않고 색소폰만 불었고 시간에 비해 훌륭한 실력을 갖춘 무조건 한다는 열정맨, 속된 말로 자존감 쩌는 인물이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자신을 믿는 것에는 마땅한 근거가 없다. 그냥 하는 것이고 열심히 하는 것이고 된다라고 믿는다. 이것이 다이에게 반하게 되는 지점이다.


 첫 장면의 첫 대사가 "된다" 그리고 "재즈 플레이어가" 그리고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가 된다."이다. 

"된다"라는 동사가 밑도 끝도 없이 제일 처음 나오고 그는 그 장면처럼 무조건 행동하는 사람이다. 하고 싶은 것을 위해서 가리는 것도 없고 자존심도 없다. 마냥 생각 속에서 머물지 않고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는 유형이고 그래서 매번의 연주는 언제나 다시없을 최고의 열정을 싣는다. 그의 연주를 듣는 사람은 저절로 마음이 녹아들고 그의 연주에 동화된다.


"세계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 초등학생 같은 이 말은 의미가 심오하다. 세상의 모든 감정을 연주로 표현해 내는 것이고 그래서 청중과 재즈로 소통하고 싶은 것이다. 함께 느끼고 함께 공명하고 함께 날아오르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해낼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환상처럼 존재하는 성공 스토리이지만 그가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앞에 벽이 있으면 뛰어넘던가, 부수어서 넘던가, 벽을 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연습한다. 연습은 그의 실력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비상식적으로 연습하면서 쌓은 실력으로 하나씩 벽을 치워나간다. 불가능한 도전을 계속 이어가면서 그는 성장하는데 나는 어떤가?


나는 불가능하면 돌아간다. 주로 하는 것은 "여우와 신포도"이다. 셔서 내가 안 먹는 것이지 못 먹는 것이 아니라고 알아서 위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 당위성을 알린다. 나는 자존감보다는 자존심이 쩌는 사람일지도... 근거 없는 자신감이 현실감을 떨어뜨릴 수 있지만 그 현실의 벽을 넘어가는 힘은 그냥 돌진하는 돈기호테이다. 


다이는 돈키호테형 인물이고, 유키노리는 오랜 시간 피아노를 해온 뛰어난 연주 실력과 자신감이 충만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타성에 젖어 있다. 


언제나 새롭게, 매번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타성에 젖어 제자리를 돌고 있으면서 그것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요즘 나의 이야기이다. 적당히 잘하고 적당히 연습하고 적당히 공부하는 습관이 나에게 있었다. 그리고 냉소적인 시선까지 두루 가지고 있다가 다이를 보면서 가슴이 울렁거린다.


모든 것의 존재 자체가 고맙고 감사하고, 살다 보면 모든 순간이 감동이고 울림인데 나만 못 알아듣는다.




자존감과 자신감의 차이

자존감이 쩔면 실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자신의 약한 부분을 인정하고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인다.

자존심이 쩔면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은 약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남 탓을 한다.


그래서 다이는 끊임없이 연습을 해서 한계를 계속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쩌는 자존감이다.


블루 자이언트

유키노리가 작곡한 곡의 제목으로 다이 그 자체이다.  굉장한 뜨거움으로 파랗게 타오르는 거인.


빨강 불꽃이 한계까지 타올라 새파랗게 불타오르는 열정

나도 태워보리


빨강이 파랑이 될 때까지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나는 나의 우울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그곳에 머물며 경험하고 그리고 알아차리고 쓰는 것, 그것을 해보고 싶었다. 되도록이면 빠지지 않고 건너뛰고 피하고 못 본 척하면서 살아온 나의 맨 밑바닥 검은 수렁에 들어가 출렁임대로 흔들리며 지내다 우연히 본 블루 자이언트는 아직 내게 소진되지 못하고 타다만 식어빠진 에너지가 있으니 열을 올려 태워보라고 말해준다. 


중년에 들어서 삶의 전환은 머리에서 가슴으로의 변형일 것이다. 이제는 가능성을 따져서 될 일만 하지 말고 미친 듯이 나아가도 되지 않을까? 


내 인생에 활활 타올랐던 적이 있었을까? 이제라도 타올라야지.

블루 자이언트, 블루라는 말 때문에 처음에는 쿨 재즈를 연상했는데 

전현 다른 색의 파랑이다. 


우울도 바닥을 긁으면서 끝까지 우울해 보리라.

우울의 끝까지 파고 들어가서 파랗게 타오르는 불꽃으로 다시 시작해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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