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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Dec 13. 2016

일단 가고 본 유럽 여행

여행지 검색은 공항 와이파이존에서



 비슷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여행 스타일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밤까지의 가장 효율적인 코스를 짜고 이동 수단 및 맛집 검색을 끝낸뒤 그날 일정을 쭉 적어서 출발을 하는가 하면, 나같이 정말 그냥 가는 사람도 있다.



Dresden, Deutschland




 이번 유럽 여행 때 '일단 가고 보는' 내 여행 스타일은 정말 정점을 달렸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그날 가장 가고 싶은 곳 한 곳을 첫번째 장소로 정한 뒤 가방을 싸서 집을 나선다. 지하철 역 혹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동안 첫 번째 장소에 가는 방법을 검색하고, 그곳에 도착해서는 근처에 있는 다른 갈만한 장소를 검색하거나 물어본다. 시간과 여건이 되서 근처에 있는 다른 곳까지 많이 보고 오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말자 라는 생각으로 일단 출발하고 본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여행 스타일이었던 건 아니다. 점심, 저녁 때 갈 맛집, 쇼핑리스트, 사진 명소 등을 검색하고 갔던 여행도 있다. 좀 더 어렸을 때 갔던 여행들이 그랬다. 같이 여행을 갔던 동행자가 그런 여행 스타일 이어서 함께 맞추느라 그랬던거 같기도 하다. 여행이라는 것은 같이 가는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서도 많이 좌우되는 거니까.



 왜 지금 같은 여행 스타일로 바뀌게 되었는지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는데, 우선 이번 유럽 여행은 전혀 내 인생 계획에 없던 것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시작하는 브런치 글에도 적었지만 27살에는 열심히 직장을 다니면서 돈을 벌 계획이었기 때문에, 유럽 여행을 그것도 휴가도 아닌 시즌에 할 줄 전혀 예상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정해 놓은 예산도, 가고 싶은 곳도 딱히 없었다. 그리고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일이 아닌 것에 시간과 노력을 써서 계획하고 지켰는지 체크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아서 가 아니었나 싶다. 3년 동안 쉬지 않고 했던 일 그리고 직장 생활에 너무나 지쳐있었다. '갑'의 일은 잘못되면 큰일나기 때문에 사소한 것 까지 항상 꼼꼼하게 확인하고, 모든 것을 미리 기획하고 컨펌받는 데 지쳐, 나를 위한 휴식은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가장 행복하게 여행했던 암스테르담은 우선 아침에 눈이 떠지는대로 씻고(몇 시에 일어날 지 미리 기획하지 않는다) 집 근처 브런치 가게에서 커피와 빵을 든든히 먹은뒤, 기차역으로 가서 시내로 가는 가장 빠른 기차표를 사고(기차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미리 기차 시간을 찾아보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둘러 볼 곳들을 검색하고, 도착한 뒤에는 그냥 들어간 카페 사장님한테 근처 맛집을 물어서 찾아갔다. 내가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지 무엇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그런 여정이었다.



Amsterdam, Nederland





 이런 여행의 (물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단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좋은 점은 첫째, 일정 변경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어짜피 완벽하게 정하지 않았던 일정이기 때문에, 가려던 곳 말고 다른 곳을 가게 됐을 때 아쉽거나, 손해 본 것 같은 마음이 없다. 모든 곳을 둘러보기에 시간은 비교적 한정되어 있고, 남들이 좋다는 곳이 나에게도 좋을 지는 알 수 없으며, 사진 한 장 으로 기억하는 그 날의 분위기가 있을 뿐이다.




 둘째, 정말 자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유럽 여행에서 내가 갔던 여행 코스는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좀 멍청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 이유는 가고 싶은 곳을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보고 골랐기 때문이다. 유럽 내 이동을 위한 버스, 기차, 비행기 등의 교통 수단은 다들 아는 것처럼 상당히 저렴한 편인데(GoEuro 어플을 꼭 사용하시길), 특히 저가항공사인 라이언에어(Ryan air)의 수요일 특가는 은총이다. 핸드폰으로 매일 사이트에 들어가서 한번씩 특가를 훑어보는데 9월 21일 내가 있던 베를린에서 벨기에 브뤼셀까지 5유로(약 6200원)에 뜬 비행기표를 보고, 나는 일정에 없던 벨기에 여행을 했다. (기내 물품 반입, 서비스 모두 문제 없이 안전 했다)



Antwerpen, Belgium





 일반적으로 유럽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세계지도를 보고 지리적 위치에 따라 국가별 여행 루트를 짜고 움직이는데 비해, 내 여행은 베를린을 기반으로 짧게 몇개국을 여행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여행도 장기가 되면 피곤하고 새로운 곳들의 소중함을 잃어갈 수 있기 때문에(사실 몇 주 분의 짐을 들고 움직이는 게 싫어서), 나는 1-2개 국을 여행하고 베를린으로 돌아와서 몇일 쉬다가 다시 나가는 여행을 반복했다. 어떤 때는 베를린 집에 잠깐 들렸다 가려고 버스를 10시간 탄 적도 있는데, 유럽의 버스들은 모두 와이파이존에 화장실이 설치된 곳이기에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초콜렛은 많이 챙겨야 한다.




First, Switzerland



 그리고 여행 도중엔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엄청난 일들이 일어난다. 이 이야기는 조금 슬픈 이야기지만, 나는 스위스에서 비행기를 놓쳐서 공항에서 하루를 노숙하고 비행기표를 다시 구매하며 돈을 날리기도 했고, Boarding Pass에 국적이 North Korea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공항에 도착해서야 발견하기도 했으며, 내가 타려던 버스 정류장이 이전한 걸 밤 늦은 시간 텅텅 빈 공터에서 알기도 했다.(현지인에게 물어물어 결국 버스는 탈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책상에 앉아서 일을 할 때 내렸던 결정들이 회사의 금전적인 손실 등과 같이 비교적 나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는 것들이었다면, 여행을 하면서 하는 결정들은 내 인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들이다. 정말 신변의 위협이 될 수도 있고 혹은 가치에 관한 것이다. 내가 기분좋게 여행하고, 안전하게 집에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그 이상 중요한 게 있을 수 있나.




 결론적으로 참 좋은 여행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여행 어땠어?" 라고 물어보면 "진짜 좋았어" 라고 대답은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좋았는지 설명은 잘 못하겠다. 유럽에서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생겨서 좋은 건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들을 만나서 좋은 건지, 예쁜 사진들을 많이 건져서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좋았다.



그렇게 또 한 번, 다시 시작할 힘 을 얻었다.






더 많은 유럽 여행 사진은 PHO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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