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A Dec 20. 2016

당장 내일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삶

Now or Never



통영에 왔다.




 두 달 동안 유럽에서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난 캐리어와 각종 선물이 든 배낭, 작은 소지품을 넣은 에코백까지 메고 인천공항에서 거제도에 가는 버스표를 샀다.


버스는 약 2시간에 한 대씩 있었고, 매번 공항에서 집에 갈 때 들던 15000원 정도의 버스 요금보다 훨씬 비싼, KTX 요금을 웃도는 가격을 지불했다. 그리고 꼬박 6시간 반을 달려 거제도에 도착했다.


 아 내가 드디어 한국 이라니, 그것도 평생 가본 적 없는 거제도라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서울 토박이고 어제까지는 베를린에 있었는데 오늘은 한반도 끝자락에 있다.



통영, 바다





 거제에 짐을 풀고, 버스를 타고 통영에 왔다. 내가 거제에 오려고 했던 건지 통영에 오려고 했던 건지 알 수 없다. 그냥 바다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버스를 타고 통영 중앙 시장에 도착하니, 햇살에 비쳐 반짝거리는 바다가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이 들어간 각종 음식이 있었고, 오밀조밀 예쁜 그림이 있는 동피랑 벽화 마을이 있었다.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흙내음 글램핑존이 있었고, 길을 물어보면 너무나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맞아 이런 곳이 서울을 벗어난 곳이었다.


잔잔한 분위기에 바쁘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 평생 이곳에서 살아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매일 깔끔한 직장인 차림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풀세팅을 하고 사람들에 실려서 출근했던 일상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맞다. 솔직히 서울에 갈 자신이 없었다. 자유롭게 지내던 여행을 끝내고 다시 서울의 그 빡빡한 삶으로 돌아가는 게 끔찍했다. 그래서 난 또 도망을 왔다.





통영, 동피랑




 마치 여행을 아직 끝내지 않은 것처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곳에 가겠다는 계획도 잡지 않고 통영 그리고 거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휴가철도 아닌 평일에, 해외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 다시 국내 여행을 하고 있으니 참 팔자도 좋다. 심지어 두 달 전 베를린으로 도피를 가기 전주에는 제주도로 3박 4일 여름휴가를 다녀온 차였다. 올해 말띠의 삼재가 시작되며 역마살이 낀 건 아닐까 싶다.


 


제주도, 바다





 직장인에게 여행이란, 그동안 퇴사하지 않고 버틴 자신에게 스스로 수고했다고 이야기해주며 다음에 이어질 그 고되고 고된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아이템이 아닌가. 여행을 취미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근 3년 동안 여행을 많이 다녔던 것도 아닌데, 올해 하반기에 한 여행 사진만으로 벌써 16GB USB를 꽉 채웠다.




거제, 바람의 언덕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가 당장 내일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니 신기하다. 항상 사무실 책상에 붙어서 일하고, 퇴근하고 다시 출근하고. 매일이 별 다를 것 없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루틴한 하루였는데 말이다.


 귀국한 걸 알게 된 모든 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라고 물어보았다. 아마 내가 쉬는 동안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귀국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실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 세우자는 생각으로 인천공항을 밟았다. 나는 백수고, 집에도 귀국 사실을 알리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혼자 다.


 어쨌든 내 한 몸 내가 추스를 수 있는 나이니, 무엇을 하든 먹고는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비록 그것이 남들이 생각하는 '잘 사는 삶'이라는 것에 부합하 않을 지라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아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으니 나쁠 건 없게 되었다.



 언젠가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봐야지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를테면 제주도부산에 집과 직장을 구해 몇 개월을 산다 던가 말이다. 평일에도 퇴근하면 서핑을 하러 가고, 주말에는 샌드위치랑 와인을 사서 바다로 피크닉을 가는 삶.

결혼하기 전에 꼭 한번 그렇게 해봐야지 라는 다짐을 했었는데, 막상 뜬금없는 시기에 해보니 그렇게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은 아니었군 이라는 소감이다.


27년 동안 해보니 '언젠가 해야지'라는 건 잘 실천되지 않더라. 지금이 아니면 평생 안될 수도 있더라.



Now or Never


누군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단 가고 본 유럽 여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