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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A Feb 05. 2018

내가 살던 그 캄보디아

1년에 4번 캄보디아에 갔었다.




 그 해는 2015년, 내가 정말 힘든 직장 생활을 하던 해였다.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맛있는 음식, 예쁜 쓰레기, 각종 취미생활로 버티고 있었다. '정말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마음속 외침이 입 밖으로 나올 때쯤, 처음 캄보디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캄보디아는 태국, 베트남, 라오스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나라다. 선교 활동으로 캄보디아에 가는 분들은 보통 수도인 프놈펜으로 많이 지만,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앙코르와트(Angkor Wat)가 있는 씨엠립(Siem Reap)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왕코르와트. 이 이름을 처음 들어보시는 분들도 호수에 비쳐 데칼코마니로 보이는 석조 사원의 모습을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랬다. 데이비드 베컴도, 송중기도 그 앞에서 여행 인증샷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앙코르왓 때문에 캄보디아를 갔던 것은 아니었다. 사무실 책상에서 벗어나 어딘가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고, 마침 친동생이 KOICA 단체를 통해 씨엠립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동생도 볼 겸, 관광도 할 겸 비행기 티켓을 샀다. 그때는 캄보디아 행 비행기 표를 이렇게 자주 끊게 될지 몰랐다. 한국에서 캄보디아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은 비성수기에는 왕복 35만 원, 성수기에는 70만 원대다. (가끔 쿠팡에 비행기 포함, 3박 4일 패키지 가격이 30만 원대에 올라오기도 한다.)





*복장이 좀 촌스러워서 사진 올리기를 많이 망설였는데, 나도 내가 왜 저러고 갔는지 모르겠다. 편안함을 추구하다 나이를 20년 정도 얻은 것 같다.





 앙코르왓 이야기를 먼저 시작했으니 이어서 해보면, 이 곳은 정말 엄청나고 엄청난 곳이다. 나는 2번, 내 동생은 5번 방문했지만, 우리는 아직 이곳을 완벽히 봤다고 말할 수 없다. 앙코르 유적지라는 거대한 에 여러 사원이 흩어져 있다. 투어를 할 때는 교통수단 '뚝뚝'을 반나절에서 하루 통째로 예약한 뒤, 한 곳을 보고 뚝뚝을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방법이 좋다. 사원과 사원 사이의 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 계속 걸어가다가는 지쳐서 사원 구경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유적지 1일 입장료가 꽤 비싼 금액이라 기왕이면 한번 갔을 때 여러 곳을 다 보고 오는 것이 좋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 당시까지만 해도 앙코르왓이 태국 재벌 소유라, 그 많은 관광 수입이 캄보디아 국민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쯤 캄보디아 정부에 반환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실제 진행됐는지 궁금하다.) 사원들은 각각 다른 의미를 가지고, 다양한 모양으로 건축되어 있다. 자연과 어우러져 있기도 하고, 무덤 같기도 하고, 영화 속 배경지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실제로 안젤리나 졸리가 주연한 '툼 레이더' 영화의 배경지이기도 하다. 이 곳 저곳을 둘러보다 보면 뒷마당 같이 잔디가 푸르게 깔린 공간도 있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있는 공간도 있다. 돌로 된 벽돌이 파여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예전에 보석이 박혀 있어서 국민들이 밤에 몰래 훔쳐 갔다는 이야기도 있고, 베트남과의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이 취침용 천막을 고정할 때 이 벽돌에 못을 박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거대한 왕조가 만든 이 유적은 자국 국민들에 의해 파괴되기도 했고, 최근에는 관광객들에 의해 많이 훼손되고 있다. 관광 포인트는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일출과 일몰이고, 진정한 사진 스팟은 관광객들이 모여있는 곳이 아니라 구석에 숨어 있다.








 거대한 앙코르왓과는 정 반대로 내가 캄보디아를 좋아하는 이유는 굉장히 사소하다. 이를테면, 네일 아트가 정말 저렴해서 좋다. 스크럽 + 마사지 + 컬러가 네일과 패디 모두 해서 만원 정도의 가격이다. 글리터도 뿌리고, 파츠도 붙이고 평소에는 하지 못했던 작은 사치를 마음껏 부려도 된다. 2015년 9월, 내가 2번 째로 캄보디아에 갔을 때 드디어 이곳 젤 네일이 들어왔다. 한국만큼의 고퀄리티를 보장할 수는 없지만, 원하는 디자인의 사진을 보여주면 경험 많은 언니들이 비슷하게 해주신다. 항상 공항에서 뚝뚝을 타고 시내로 들어오자마자 네일아트 거리에 들려, 컴퓨터 앞에서 지친 내 손과 발을 위로해주곤 했다.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모든 것이 저렴하다. 우리는 과일을 살 때마다 동네 과일가게에 가곤 했는데, 망고 같은 경우 고르면 그 자리에서 깎아서 일회용기에 담아주신다. 3팩이 2.5달러라는 믿을 수 없는 가격에 말이다. 제철에 먹었던 노란 망고는 태국, 베트남, 어느 나라에서 먹었던 망고보다 훨씬 달달하고 맛있었다. 칵테일은 또 어떤가. 캄보디아에서는 매일 저녁 칵테일을 마셔야 한다. 낮에는 카페로 운영되던 곳들이 밤이 되면 라이브 공연을 하는 펍으로 바뀐다. (나이트 마켓 같은 관광지 말고 한적한 곳에 좋은 펍들이 많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칵테일을 정말 저렴하게 판매한다. 이것저것 마음껏 시켜놓고 편안한 소파에 드러누워있으면 엄청난 행복감이 몰려온다.




*Temple coffee bakery n pool sky lounge / The grey




 절정은 마사지다. 마사지샵은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마사지샵과,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마사지샵으로 나뉜다. 후자는 주로 한국인이 경영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인테리어는 잘 되어있지 않지만, 마사지사 분들의 실력이 뛰어나다. 압을 세게 받는 한국인들에게 익숙하셔서 어떤 부위가 뭉쳐있다고 말하면 최선을 다해 그 부위를 풀어주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마사지는 스톤 아로마 마사지인데, 한국에서 이 마사지를 받으려면 1시간에 기본 20만 원 정도의 가격이 들어가지만, 여기서는 2시간에 2만 원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단 만족한 만큼 팁은 따로 드리는 게 매너다.) 1일 1 마사지는 기본이고, 여러 종류 마사지를 하나씩 경험해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샵을 엄청난 규모로 꾸며놓고 가격을 올리는 태국의 유명 마사지샵보다, 캄보디아 마사지가 훨씬 시원하고 좋다. 마사지가 끝나고 샵에서 제공하는 따뜻한 차 한잔에 망고를 곁들이면 몸이 녹아서 없어질 것만 같다.



왼쪽 사진이 한시간에 7500원인 현지 마사지샵이다. 오일 보다는 압 마사지를 받을 때 좋다.





  캄보디아를 여행할 때 꼭 해야 하는 것을 한 가지 꼽으라면 두말할 것 없이 쿼드 바이크다. 쿼드 바이크는 4륜 바이크를 타고 외곽 지역을 2~8시간 드라이브하는 액티비티다. 여행사나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직접 날짜와 시간을 예약하면 숙소로 가이드 분이 픽업을 오신다. 안전 사항을 교육받고, 간단하게 연습 운전으로 운동장을 몇 바뀌 돈 다음에 안전모와 선글라스, 신발을 보호하기 위한 비닐봉지를 장착하고 출발한다. 중간중간 보리밭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동물들이 모여있는 농가를 지나칠 땐 잠깐 내려서 먹이를 주는 것도 가능하다. 이때 정말 어마 무시하게 예쁜 하늘을 볼 수 있다.



*복장은 어쩔 수 없다.. 햇볕이 강하기 때문에 꼭 긴팔을 입어야 하고 샌들보다 운동화를 신는 것이 좋다.





 사막 혹은 아프리카 같이 해가 쨍쨍하게 내려쬐는 곳을 홀로 드라이브하는 상상을 해보면 된다. 사방이 고요하고, 들을 수 있는 소리라고는 바이크가 내는 소음밖에 없다. 하늘과 땅의 확연하게 대조되는 색감과, 쉽게 볼 수 없는 경치에 감탄하다 보면 어느새 2시간이 지나간다. 적당한 스피드에 머릿속에 있는 걱정이 날아가고, 우연히 노을을 만나면 정말 생애 최고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밤낮 가리지 않는 더위를 식히기 위한 장소가 필요하다면 호텔로 향하면 된다. 5성급 호텔들이 상상 이상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다. 로비에 있는 카페에서 티 한잔을 하고, 호수가 있는 정원을 산책하거나 복도 갤러리의 그림을 구경하면 좋다. 특히 나는 반얀트리 나무가 있는 테라스 카페에서 밥 먹는 걸 좋아했는데, 오래된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멈춘듯한 기분이 들면서 가슴속에서 여유가 샘솟는다. (투숙하지 않으면 어떠하리.)




*Sopitel hotel / Park Hyatt Siem Reap







 이렇게 캄보디아의 매력에 푹 빠진 나는 결국 직장을 퇴사하고 한 달 넘게 캄보디아에서 지냈다.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서 밥을 먹고 시내를 산책하거나, 한국분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유럽 출신 셰프가 출근하자마자 만들어준 애플 크럼블에 라테를 마시면서 책을 읽고, 지금은 멋진 개인 카페를 차린 현택 오빠가 운영하는 핸드 드립 커피 클래스를 들었다. 여러 종류의 원두로 커피를 내려서 맛을 비교해보고, 리큐어를 추가해서 커피 칵테일을 만들었다. 심심할 때면 나이트 마켓에 있는 현지 공방에서 운영하는 도자기 클래스를 들었다. 캄보디아는 아직 수동으로 움직이는 물레를 사용하는데, 자전거 타듯이 발을 빠르게 굴려야 물레가 돌아간다. 그릇을 몇 개 빗고 나면 운동한 것처럼 땀이 났다. 기분 좋은 땀이었다. 일하지 않아도 할 것은 넘쳐났다.







 문명 하고는 거리가 멀어졌다. 영화관이 없었고, 에어컨이 빵빵한 지하철도 없었다. 대신 일몰을 보러 산을 올라갔고, 동남아에서 가장 크다는 호수를 보러 왕복 4시간을 이동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동물들과도 친해졌다. 머리가 아프면 천연 밤을 발랐고, 가로등이 없으니 손전등을 들고 다녔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름이면 문득문득 캄보디아가 생각났다. 먼지는 자욱한데 하늘은 맑은 집 앞 거리. 신호도 없는 도로에 뚝뚝, 오토바이, 자전거, 차가 각자의 길을 가는 신기한 풍경. 똔레삽에 있는 배를 몰던 어린아이들. 밥반찬으로 자주 사 먹던 길거리 꼬치. 관광객과 현지인으로 북적이는 나이트 마켓. 정글 느낌이 물씬 나는 모든 식당들의 야외 좌석들. 물보다 자주 마셨던 앙코르 비어. 귀국하던 날 공항까지 데려다 주신 뚝뚝 아저씨까지.(동생은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착한 뚝뚝 아저씨를 만나면 번호를 저장해 두고, 멀리 이동해야 할 때 미리 전화로 예약을 했다. 그래서 핸드폰에 뚝뚝 1, 뚝뚝 2 이런 연락처가 있었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지만, 왠지 모르게 여유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곳. 내가 살던 캄보디아는 그런 곳이었다.








 동생과 나는 마치 캄보디아 홍보대처럼 모든 지인들에게 캄보디아, 특히 씨엠립 여행을 추천한다. 생각보다 인터넷에 세부적인 정보가 부족한 것 같아 몇 가지 정보를 정리해봤다.






 꼭 사야 하는 물건로는 캄보디아 브랜드 SMATERIA의 파우치를 추천한다. 이 파우치는 버려진 모기장을 재활용해서 만들어졌다. (개인적으로 동남아판 프라이탁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멋진 점 한 가지는 이 제품을 넣어주는 쇼핑백도 다 쓴 우유팩을 재활용해서 만든 리싸이클 제품이다. 나이트 마켓 안에 매장이 있다. 파우치는 안이 적당히 비치기 때문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알 수 있어서 좋다. 처음 사고 너무 좋아서 크기별, 색깔별로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하고 나도 쓰고 있다. 헤지지 않는 재질이라, 몇 년째 손상된 부분 없이 새 거처럼 사용하고 있다. 평생 사용하지 않을까 싶다. 구글 지도 URL>



그리고 그 파우치에 각종 효능이 담긴 천연 밤이나 스크럽제를 사 가도 좋다. 공항이나 쇼핑몰에서 사는 것보다 나이트 마켓이 훨씬 저렴하다. (가죽 파우치도 싸다. 그때 내가 쓰던 Surface에 딱 맞는 크기의 가죽 파우치를 찾아서 이니셜을 박아서 들고 다녔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첫째는 안전, 둘째는 벌레다. 너무 늦은 시간에 걸어서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하다. 가까운 거리라도 뚝뚝을 타고 귀가하는 것이 좋다. 혹시 현지인과 말다툼이 붙으면 그냥 져주는 것이 좋다. 몇십만 원에 청부 살인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집안에서도 진쩍이라고 불리는 작은 도마뱀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독이 있거나 하지는 않다. 다만 좀 놀랄 뿐이다. 





 꼭 즐겨야 하는 것은 디저트. 캄보디아는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가 있다. 그래서 곳곳에 그 시절의 잔여물이 남아있다. 실제로 국민들의 주식이 바게트 빵이기도 하다. 디저트는 모두 프랑스식으로 만들어지는데, 케이크 한 조각의 가격이 캄보디아 물가에 맞춰 1달러가 채 되지 않는다. 베이커리, 호텔 카페를 찾아 디저트 파티를 여는 것을 잊어버리면 후회할지도 모른다.









+ 씨엠립 인생 맛집 두 곳.



1. Viet Cafe


 현지인들이 가는 쌀국수 집인데, 한국인 입맛에 딱이다. 베트남, 태국, 한국 등에서 쌀국수를 먹어봤지만 이 곳 같은 국물을 내는 곳이 없다. 가격은 2달러인데, 곱빼기는 0.5달러만 추가하면 된다. 정말 너무 맛있어서 먹을 때마다 울면서 먹었다.



2. Belmiro's Pizza and Subs


나이트 마켓 안에 있는 이탈리안 음식점인데, 입구에 여러 국가의 국기가 걸려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2가지 종류의 피자를 반반 주문해서 먹을 수 있는데, 하나는 꼭 김치가 들어간 피자를 먹어야 한다. 이름이 Seoul 피자였던 걸로 기억한다. 치즈와 김치의 조화는 예상되는 맛을 뛰어넘는다. 나는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는 못하는 입맛이라 평소 김치를 먹지 않는 데도 이 피자가 지금껏 먹어 본 피자 중에 가장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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