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스러운 사랑의 맛

조예은, 트로피컬 나이트

by 정나진



조예은의 글은 상실과 습득을 이야기한다. 사람이 사는 동안 반복해 뭔가를 잃어버리고 또 얻는 것처럼, 조예은은 인간과 인간, 또는 비인간의 일생으로 우리가 한 번쯤 가져봤을 법한 모든 감정을 조명한다. 미련과 이기심, 망각과 그리움, 시기와 친숙, 증오와 사랑. 함께 나열될 수 없어 보이지만 숱하게 혼재하는 마음들이 끊임없이 거론되는 탓인지, 『트로피컬 나이트』에는 어떤 것을 열렬히 미워하지만 평생 그 대상을 조망하고야 마는 존재들이 연속해 등장한다. 어떤 이는 이걸 애증이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미련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조예은은 사실 이전의 작품부터 계속해서 말해왔다. 그 또한 사랑이라고.



본 도서는 조예은의 두 번째 단편집으로, 각종 앤솔로지나 문예지에 실렸던 단편을 모아 출간한 책이다. 「할로우 키즈」, 「고기와 석류」, 「릴리의 손」, 「새해엔 쿠스쿠스」, 「가장 작은 신」, 「나쁜 꿈과 함께」, 「유니버설 캣숍의 비밀」,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총 8편의 ‘괴담’이 실렸는데, 안전가옥 등에서 여러 작가와 함께 펴낸 작품집을 자주 읽었다면 익숙한 제목이 보일지도 모른다. 책의 장르는 ‘호러·공포소설’로, 일전부터 『칵테일, 러브, 좀비』 등으로 자신만의 호러·SF 부지를 부지런히 일궈온 조예은의 세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8개 단편 중 몇 가지를 들어 그의 ‘세계’의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책은 「할로우 키즈」로 시작하는데, 조예은의 책을 처음 접하는 이도 거부감 없이 ‘괴담’ 세계로 들어오기 좋은 단편이다. 핼러윈 행사에서 일어난 사건에 관한 대화인데,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취조실 같은 조용한 분위기에서 선생님의 가만한 고백을 듣는 기분이 든다. 괴담, 호러, SF 소설을 어렵게 느끼는 독자들이 많은데 이들을 짧고 굵게 휘어잡아 책 안쪽에 들여놓는, 흡입력 있는 단편이다. 내용이 길지 않은 만큼 10분이라도 시간을 내보길 권한다.


이어지는 「고기와 석류」는 가장 인상적이었고, 가장 ‘호러’ 같았다. 남편이 죽고 홀로 살아가는 ‘옥주’와 ‘석류’에 대한 이야기인데, 내용 자체는 조예은의 호러 소설 대부분이 그렇듯 예상 가능하고 평탄하다. 대부분의 독자가 조예은의 소설을 반전을 원하며 읽지 않듯이, 나 역시 크게 기발한 장치를 바라고 읽지 않았다. 사실 어떤 반전을 원하게 되지도 않는 게, 읽다 보면 그저 ‘옥주’와 ‘석류’의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내 경우는 ‘옥주’의 이야기가 특히 그랬다. 딱 이불 한 칸의 면적을 차치하고 죽어버린 남편, 그를 돌보다 문득 혼자가 되어버린 ‘옥주’. 혼자라는 두려움 또는 욕심에 ‘석류’를 들인 ‘옥주’.


소설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렸을 때는 이 붉은 과일을 무척 좋아했는데, 맛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보석 같은 알들을 오래도록 관찰하다가 입 안에 밀어 넣고 톡, 씹는 게 좋았다(36p)”. ‘옥주’는 어렸을 때 이후로 먹지 못했던 ‘석류’를 죽을 걱정을 할 때가 돼서야 다시 갖는다. 남편이 죽은 후에. ‘옥주’ 에게 남편이 “끝내 인정하지 않”으며 고집하던 집과 정육식당 간판은 ‘옥주’의 몸에서 나는 지긋지긋한 고기 비린내 같은 존재였고, 남편이 누워있던 자리는 생각만 해도 “강제로 떡을 밀어 넣은 것처럼 답답”해 그가 죽은 후에도 쳐다보지 않는 곳이 되었다. ‘옥주’에게 ‘고기’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또 ‘석류’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조예은의 세계와 그 속 인물에 대해서 생각해봤으면 한다. 조예은은 친절한 작가이기 때문에, 본 단편의 제목에서부터 ‘고기’와 ‘석류’를 대비시킨다. ‘옥주’가 돌보다 지치고 싫어진 것, 그럼에도 또 한번 돌보는 것. 끝끝내 ‘고기’란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가. ‘옥주’가 ‘석류’에게 가지는 대가성의 감정도 사랑이라고 논할 수 있을까.



조예은이 말하는 넓은 범위의 사랑을 믿어보고 싶어지는 이유는 등장인물의 솔직함 때문이다. 아무에게도 밝히지 않는 감정과 치부를 독자에게는 가감 없이 드러내주기 때문에, 더불어 인물이 그 감정 또는 치부, 즉 자신의 결점에 매몰되어있지만은 않기 때문에 일종의 수다를 듣는 듯한 귀여운 기분이 든다. 혼자 쓰는 일기에도 거짓말을 쓰는 게 사람이고, 내게 이렇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아도 될 텐데 이들은 내게 대가 없이 솔직하고 진솔하다. 그러니 믿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들의 감정이 틀리지 않았다고. 「새해엔 쿠스쿠스」의 ‘유리’가 “가치를 증명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게 당연하고, “수확하기도 전에 썩어버린 농작물처럼, 아주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나 역시 느꼈었다고. “그들이 불행해지길 바라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너무 끔찍해서 죽고 싶”어지는 마음 역시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나도 모르게 말을 걸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만들어진 환경에서 사람을 시기하는 게 죄가 아니듯, ‘유리’ 역시 나쁜 사람이 아니다. 조예은의 글 속 등장인물들은 독자 앞에서 재고 따지지 않기에 함께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비슷한 일을 겪고 자라니까.


「가장 작은 신」역시 진솔함이 돋보이는데, 가장 ‘조예은다운’ 소설이라 소개하고 싶다. 먼지로 뒤덮인 세상과 약간의 히키코모리, 갑자기 매일 찾아오는 동창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이렇다 할 인물은 동성 친구 ‘수안’과 ‘미주’뿐인데 이 세계는 불안하지 않다. 수없는 말과 수없는 사건들이 “다른 재앙이 되어 돌아오”겠지만, 스스럼없이 “널 등쳐먹어서 미안해. 그리고 넌 사랑스러우니까 분명 잘 살 거야.”라고 말하는 이들은 잘살게 되어있다.



조예은의 사랑은 이런 식이다. 이 중 어떤 삶도 살아보지 못한 독자에게 확신을 준다. 가끔 추하고 비열할지언정 이들의 감정 역시 사랑이라고 부를만하다. 다양한 삶과 그 안에서 파생된 삶, 그리고 어떤 경로로든 애틋하게 느끼는 마음, 그건 죄가 아니라 돌고 돌아온 귀한 것이라는 말을 작가는 몇 개의 이야기를 걸쳐 반복해 왔다.


사랑을 말한다고 해서 호러·공포 장르로서의 면모가 부족하냐고 묻는다면 그것만은 결코 아니라고 단언한다. 300여 페이지의 이 단편집에는 날카롭고 따뜻한, 다채로운 작품이 가득하다. 호러와 사랑이 공존하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망설임 없이 『트로피컬 나이트』를 권하고 싶다. 조예은은 늘 같은 이야기를 믿음직스럽게 해 왔고, 그만큼 차곡차곡 쌓인, 눈부신 세계가 손만 뻗으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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