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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용 Sep 16. 2021

생로병사와 함께하기

비극의 실체 - 제다이로 살기 -

얼마 전 실습도는 본과 3학년 학생과 함께 회진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물어보았다. 앞으로의 방향성을 정했냐고... 대답인즉슨, 전에는 내과가 좋았는데, 실습을 돌고 보니 외과가 재미있어서 전공으로 하고 싶다고 한다. 그에게 상투적으로 열심히 해 라고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꼰대 본능이 발휘되어서 인지 사족을 붙이고 말았다. 근데, 남에 몸에 칼을 대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길 텐데 평생 그것들과 같이 살아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뒤에 불편한 진실들이 있는 법이라는 것을 살짝 말해 주었다. 그 학생이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 주었다.


세월이 가도 익숙해지지 않는 게 있다. 타인의 생로병사를 항상 맞닥뜨리고 지켜봐야만 하는 숙명. 그것이 나의 책임감과 결부될 때는 더더욱 괴롭고 견디기 힘들다. 척추 수술 또는 신경 수술의 특성상, 신경 가닥 하나가 다쳐도 환자에게는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척추신경외과의사의 삶은 어떻게 보면 극한 직업인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정제된 논문이나, 책에서 아름답게 표현된 개념이 아닌, 현실은 잔인하고 또 잔인하다. 비록 이글이 일기가 아니지만, 그래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슬기로운 의사들이 나오는 드라마가 요즘 인기이다. 뇌출혈이 생겨서 의식을 잃고, 간 기능이 떨어져서 사경을 헤매는 환자들 앞에서 의사들은 긴박하게 움직이고 고민한다. 보호자들은 오열하고 의사들은 비장한 각오로 설명하고 밤을 새워서 수술한다. 마치 전쟁과 같다.

과연 이게 진실일까? 아니다. 사실 이런 경우들을 보면 대게 수술 전이다. 수술 후라 하더라도 워낙 수술 전 상태가 안 좋아서 부득이한 합병증이 있는 경우이다. 이경우 의사들의 속마음은 타들어 가지 않는다. 이때 그들은 판타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왜? 내가 손댄 상태가 아니니까. 아니면 이미 많이 안 좋은 상태이었으니까! 그들은 마음속으로 안심을 하고 즐겁게 전쟁터로 나간다. 

현실로 들어가 보자. 진실로 괴로운 순간은 따로 있다. 바로 수술 후에 생각지도 못한 합병증이 생긴 경우이다. 내 실수로 아니면 내 책임으로 환자가 잘못된 경우이다. 이때 의사들은 비겁해지고, 그럴듯한 변명거리를 만들어서 포장하고 속으로는 괴로워한다. 이것이 진실인 것이다. 수술 전 환자와 보호자에게 잘 될 것이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수술 후에 예상 못한 합병증이 발생해서 수술 안 하니만 못한 경우가 생긴다면, 그들은 뭐가 문제인지 답을 알고 있지만, 결코 말하지 않는다. 

필자의 경우, 손대지 않은 환자의 문제가 심각하거나, 정당한 이유로 치료 결과가 안 좋은 경우에는 큰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퇴근한다. 반대로 수술 후에 문제가 생긴 경우, 특히 재수술이 필요한 경우 또는 심각한 신경학적 결손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며칠 밤 잠을 못 이루거나, 그 환자의 내용이 꿈에 나온다.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 그렇다면 꿈에 나오는 환자는 누구일까?

우리의 상식을 파괴한다. 척추수술을 했는데, 수술부위와 상관없는 심근 경색이 수술 후에 와서 중환자실로 이송된 환자가 있었다. 온갖 노력을 했음에도 심장기능이 돌아오지 않아 사망할 가능성이 높아 보호자를 앞에 두고 말한 적이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비장한 마음으로 강심제와 인공호흡 길 치료를 하고 마지막으로 심장 마사지를 한다... 그렇지만, 환자는 꿈에 나오지 않는다. 바로 다음날 잊힌다. 내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척추수술 후에 잘 깨어났는데, 수술 전에 잘 움직이던 우측 발목이 움직이지 않는다. 꿈에 나타난다. 

간단한 내시경 시술인 줄 알고 치료한 환자가 신경막이 찢어지고 염증이 생겨서 이후에 여러 번 전신마취 수술을 해야 했고 장기적인 후유증을 남긴 경우, 역시 꿈에 나온다. 그리고 소위 "팬클럽" 이 되어서 수시로 외래 방문을 한다. 괴롭다. 

실제적인 비극은 이런 것이다. 내 잘못으로 환자가 잘못되었다는 의식! 수술한 의사는 말을 안 해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의료 소송과 관계없이...

척추외과의사로서 수술을 하다 보면, 열에 아홉은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인다. 의사로서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그중 한 명의 경우 어떠한 식으로든 문제가 생긴다. 10%이다. 적지 않은 확률인 것이다. 신경학적 결손이 생기거나, 감염증이 생기거나, 또는 다른 기관의 합병증으로 사망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결구, 내가 피하고 싶던 말건 생로병사는 항상 내 곁에 있다는 사실. 그것이 제다이의 숙명인가 보다.

내게는 밝은 미래라는 게 있을까?

주니어 닥터 때부터 나는 안심 낙관이라는 단어를 좋아했다. 고 백남준 작가가 우리들 병원에 기증한 작품의 표상이기도 하다.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이다. 그게 의사인 나에게도 희망의 메시지였다. 이 고비만 넘으면... 이환자만 잘 해결되면 좋은 날이 오겠지 하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그 많은 낮과 밤을 견뎌왔다.

그렇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다. 고 신해철의 말처럼, 가시밭길과 진흙탕길은 그 이후로도 절대로 나아지지 않고 계속 펼쳐져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숙명과도 같은 깨달음이 왔을 뿐이다.


그래도 내일 아침 나는 '권위 있고, 실력 있는' 척추신경외과의로서의 가면을 쓰고 다시 환자들 앞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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