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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용 Sep 27. 2020

다리가 저리면 허리 협착증? 아니!

파킨슨일 수도... 용의자가 아닌 범인 찾기 - 디스크 대 협착증 -

필자의 경우, 신환 비율이 매우 높다. 그것도 타 병원에서 정밀검사 후 결과를 지참하고 방문하는 신환이 대부분이다. 환자가 가지고 온 MRI 나 CT 검사 등을 보면서 환자와 대화를 나눌 때, 머릿속은 부지런히 셜록홈스의 심정으로 병소를 찾아내기 바쁘다. 이과정이 사실은 치료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협착증의 경우 (아니면 본인이 협착증이라고 믿는 경우),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있다.

75세 남성이 찾아오셨다. 주증상은 양쪽 다리 저림 증상이었다. 걸을 때 더 심해져서 쉬었다가 가야 하고 허리를 구부리는 자세를 취하면 경감되었다. 어느 전문병원에서 허리 MRI를 찍어보니 요추 4번-5번 사이에 척추관 협착증 소견을 보여 꼬리뼈에 경피적 시술을 한번 시행하였다. 증상은 별로 호전되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저림은 심해지고 다리도 약한 느낌이 들고 균형 잡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에 큰 마음먹고 대학병원 척추 교수님을 찾아왔노라 하고 말씀하시고 허리 수술을 원한다고 하신다. 지참한 허리 MRI를 보니 정말 요추 4번-5번 사이에 중기 이상의 협착증이 있었다. 

허리 MRI도 협착증 소견을 보이고 증상도 우리가 흔히 듣는 협착증의 증상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이 환자가 허리 수술을 하면 병이 나을까? 답은 ‘아니다’이다. 

다리가 저리고 약해지는 병은 허리 협착증의 증상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 외의 이유로도 이런 증상들이 생길 수 있으므로 함부로 예단해서는 안된다. 가능한 질병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허리 협착증, 2. 경추 척수증, 3. 흉추 척수증, 4. 말초혈관병증, 5번. 파킨슨병 6번. 근이영양증 (루게릭병). 7번 기타 등등…

이렇게 아주 많은 다른 질환의 가능성이 있는데 검사는 허리 MRI만 하고 몇 년을 헛된 치료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파킨슨병 때문에 못 걷는 건데, 하필 허리 검사를 하니 협착증 소견이 발견되어서 허리 수술을 했다고 상상해 보자. 결과는 모두에게 불행한 sad ending이 될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임상 현장에서 많이 벌어지고 있는 슬픈 일들이다. 우리 외숙모나 삼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치아의 경우 환자나 의사 모두 어느 이빨이 어떻게 아픈지 잘 알 수 있다. 대부분 그 위치나 부위를 특정하기 쉽다. 그렇지만 척추는 여러 마디가 있는 것은 치아와 공통적이지만, 환자 본인이나 의사가 어느 부위가 이상이 있는지 통증 부위만 가지고는 쉽게 원인 질환이나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점에서 척추 치료의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다.

실제 환자들은 복합적인 척추 퇴행이나 손상 등이 여러 군데 공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중 특정한 한두 군데가 현재 고통의 포인트인 것이다. 즉, 용의자는 여럿이되 그중 범인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수술 기술이나 검사의 다양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이 병소를 정확히 판단해 내는 기술이고, 의료진의 수준을 가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표인 것이다. 

어떻게 이 과정을 정확하게 수행할 것인가? 바로 의학적 근거와 경험이다. 단순한 의학 지식만으로 접근하다가는 나중에 병은 고쳤으나 환자는 계속 괴로움에 시달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고, 의학적 근거 없이 경험에 의존하는 치료는 선무당이 사람 잡듯이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고로, 정확한 의학지식과 충분한 경험을 동시에 가동하여 가장 정확하고 믿을 수 있는 진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학은 그래서 과학이자 동시에 예술인가 보다.


이런 의미에서 척추병도 다음과 같이 분류될 수 있다. 

첫 번째, 병소도 확실하고 치료방법도 확실한 경우

두 번째, 병소는 확실하나 치료방법이 애매하거나 어려운 경우

세 번째, 병소는 불확실하나 치료방법은 비교적 확실한 경우

네 번째, 병소도 불확실하고 치료방법도 어려운 경우


첫 번째 경우는 대개 척추 의사들이 빨리 고쳐준다. 또한 치료 결과도 좋고 치료 후 관리도 알기 쉽다. 이런 병을 치료하는 척추 의사는 소위 “명의” 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경우는 대개 광범위한 병이거나 수술적 치료로도 잘 고쳐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는 수술이나 시술 경험이 많은 의사가 치료를 잘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경우는 대개 약물치료, 물리치료 또는 주사요법 등 비수술 치료의 효과를 보는 경우가 많다. 대개의 경우 병의 초창기 때, 개인병원이나 전문병원에서 치료하는 경우가 많다. 

네 번째 경우는 진짜 지식과 기술과 경험과 마음씨를 모두 지닌 실력자가 필요하다. 인맥과 매체의 도움을 받고 평판과 실적을 잘 따져보고 신중하게 찾아보자.


과학자이자 동시에 예술가인 의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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