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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용 Jan 18. 2021

엔도스코토피아를 꿈꾸며

척추 내시경, 그 치명적 매력... -Miscellaneous-

필자는 십수 년간 오로지 미세침습 척추 치료를 집중하여 연구해 왔다. 많은 임상연구와 논문 집필을 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그동안의 필자의 연구 목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endoscotopia (엔도스코토피아)이다. 이 말은 내시경을 뜻하는 엔도스콥 (endoscope)과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 (utopia)를 합성해서 만든 말로서, 우리말로 굳이 말하자면 “내시경 천국”쯤 되는 말이다. 정식 사전에 있는 용어는 아니지만, 현재 내시경 척추수술의 현주소와 미래를 상징하는 심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실 척추 협착증이나 디스크병은 많은 경우, 비수술 요법으로 치료가 되지만, 많이 진행된 경우나 신경학적 결손이 생기는 경우에는 불가피하게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미세침습 척추 치료를 전공해 온 필자로서는 비수술적 요법으로 해결 안 되는 협착증이나 디스크병 환자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전국 각지에서 이래저래 치료가 안 되는 환자들이 입소문이나 나름 검색을 해서 필자의 진료실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솔직히 척추 수술을 업으로 해서 사는 필자도 여전히 척추 수술은 부담스럽다. 전신 마취를 해야 하고 생각보다 많은 피부 절개가 필요하고 때로는 인공뼈나 나사못을 삽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필자는 정말로 이러한 관혈적 수술이 싫다. 피를 보는 관혈적 수술을 정말로 싫어한다. 수술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정상 조직을 많이 파괴하고 후유증을 남기는 형태의 수술은 수술로서 매력이 없다. 그렇다고 심한 환자에게 단순한 신경 주사나 얇은 관을 삽입해서 치료하는 시술들은 그 효과가 일시적이거나 미미한 경우가 많다. 이에 척추 치료의 아이러니가 있는 것이다. 미세침습이면 효과가 미흡하고 효과를 추구하자니 너무 침습적인 수술이 되니 말이다. 필자는 이 괴리를 없애기 위해서 효과는 수술의 효과를 보면서 형식은 가벼운 시술의 형태를 띠는 새로운 형태의 치료법을 개발하기를 원했고 그 일에 매진해 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치료법이 바로 내시경을 이용한 척추 수술이다. 바로 형식은 비절개, 부분 마취의 형식을 갖고 있으면서, 내용은 수술의 효과를 보는 신개념의 치료법인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치료 방법을 내시경 수술이라고 부르고 있다. 비수술이라는 단어를 택하지 않고 굳이 ‘수술’이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그만큼 효과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와 내시경 수술과의 인연은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팰로우나 주니어 스태프 시절에 교수님의 지도하에 처음 뇌실내 내시경과 조우하였고,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내시경으로 보이는 신경계의 풍경(?)은 실로 아름다운 별세계였다. 2000년에 척추 내시경과 제2의 사랑에 빠진 후 20여 년간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시경을 이용한 신경계의 수술은 이론과 테크닉 모두 아름답기 그지없고 필자는 이 내시경 수술의 '제다이'로서 마치 전투기 조종사처럼 매 순간 승부를 걸며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물론 이길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승부이지만... 이렇게 빠져서 지내온 결과, 부끄럽지만 세계 내시경 척추수술 분야에서 전세대를 통틀어 논문 피인용지수 Top 10에 드는 위치에 오게 되었다. 


요즘의 내시경 수술 기술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장점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최소절개에 의한 경피적 접근 방법으로 근육 파괴 최소화

    -키홀 (작은 관문)을 통과하여 정상조직을 우회하여 병소로 직접 접근

    -정상조직 (피부, 근육, 후궁 뼈, 후관절, 신경낭)을 최대한 보존하며 병적 디스크와 인대를 제거함

    -작게 진입하여 광범위한 시야를 확보함

    -수술 시야를 병소에 가장 가깝게 하여 정확한 시술 가능

    -다양한 기구들을 작업통로를 통해 접근하여 멀티 태스킹 가능

    -협착증과 디스크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함

    -부분마취로 시술 가능


부분 마취, 비절개 수술로 대별되는 내시경 척추수술은 상당히 진행된 척추관 협착증이나 신경구멍 협착증을 근본적으로 치료해 낼 수 있는 단계에 까지 이른 것이다.

 

상상해 보라! 심각한 척추수술을 마치 피부과 시술처럼 해내다니...


고령의 척추 질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이 시대에 척추 수술이 필요한 환자라면 어떻게 할까? 수술이 엄청나고 무섭다는 이유로 소용도 없는 상업적 시술들로 비용을 낭비하면서 병에 굴복해서 살아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척추 치료의 파라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기술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극히 특화된 시술법이다. 그렇지만 많은 전문가들의 노력으로 이러한 꿈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내시경 척추수술의 미래는 밝다. 실력과 충성심으로 무장된 젊은 제다이들이 미래의 최첨단 내시경 기술들을 발전시키고 있다.


모든 척추 수술을 큰 절개 없이 내시경 삽입만으로 할 수 있는 엔도스코토피아 (endoscotopia, 내시경 천국)을 꿈꾸며 오늘도 필자는 기분 좋은 긴장감과 황홀한 두려움을 안고 내시경 수술실로 들어가고 있다. 나는 제다이이다. 이길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전쟁터로 들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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