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한 의사는 없다 -Miscellaneous-
외래에서 대하는 환자들의 흔한 태도 중에 하나가 이것이다. "저는 아는 게 없어요. 선생님이 용하다고 들어서 왔습니다. 그리니 알아서 잘 고쳐 주세요."라고 말씀하시고, 치료나 수술이 끝난 후에는 "치료 후에는 깨끗이 나을 거라고 했잖아요..."라고 불평하시는 경우이다. 전형적으로 척추병의 치료를 자동차 AS처럼 생각하는 태도이다. 병의 치료는 AS가 아니다. 자동차를 만든 것은 제조회사이지만 우리 몸을 만든 것은 의사가 아니다. 용한 의사가 무슨 필살기가 있어서 내 병을 알아서 고쳐주는 것도 아니다. 현대의학의 치료는 어디까지나 '근거'에 근거하여 치료하는 것이다. 시술이나 수술은 치료의 과정이고 올바른 치료의 태도는 의사의 가이드 하에 환자가 스스로 치료 방침을 결정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의사에게 해야 한다. 특히 척추 의사에게...
1. 내 병의 진단명
내 병이 디스크병입니까 아니면 협착증입니까 라고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양자의 치료법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에 디스크병이면 마비가 없는 한 어느 정도 보존요법이나 시술 등의 비수술 치료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고, 반대로 협착증인 경우 치료의 융통성이 매우 떨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수술이 필요한 협착증인 경우 어떠한 비수술 요법 내지는 시술도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2. 병기 내지는 정도
다음으로 물어봐야 할 것은 내 병의 진행 정도 내지는 병기이다. 디스크병도 여러 가지 타입과 정도가 있다. 통증만 있는 디스크, 통증은 없는데 마비만 있는 디스크, 통증과 마비가 모두 있는 디스크 등 증상에 따라서도 여러 가지가 있고, 자연치유가 예상되는 디스크, 자연치유가 어려운 디스크는 예후에 관련하여 판이한 디스크도 있다. 마찬가지로 협착증에도 여러 병기가 있다. 대개 1기 또는 2기는 보존요법, 신경차단술 및 시술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3기 또는 4기는 원칙적으로 수술이 필요하다. 의사가 말하는 병기와 권하는 치료가 어느 정도 합당하게 일치하는 지도 확인하자. 물론 의사들은 이렇게 인위적으로 병의 정도나 병기를 나누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렇지만 환자가 궁금해할 경우 객관적인 지표로 삼기 위해 이 정도 분류는 해주는 것이 기본자세라고 본다.
3. 치료 옵션과 그 장단점
그래서 의사는 한두 가지 이상의 치료 옵션을 제시할 것이다. 어떤 치료 방법을 제시하는지 잘 들어보자. 대개는 의사가 가장 중점을 두는 치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을 중심으로 차선책 및 기타 치료 옵션들의 장단점을 물어보자. 간단하게 라도 꼭 들어 두는 것이 좋다.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는 내가 원하는 치료가 아닌, 내 병을 가장 안정하고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치료법을 고려해야 한다.
4. 치료의 기대치 및 위험성
대개 척추수술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경우는 둘 중의 하나이다. 수술이 잘 못 되어서 문제 해결이 안 된 경우이거나, 수술은 잘 되었는데 의사의 기대치와 환자의 기대치가 차이가 있는 경우이다. 근데 대부분 후자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 기대치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사실 수술 전 첫 대면에서부터 차이가 생긴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의사에게 해당 치료법의 나의 병을 근치 하는 개념인지 병과 타협하는 고식적인 의미인지를 묻고 어느 정도의 기대치를 가져야 하는 지를 정확하게 물어보자. 단, 몇 퍼센트 확률입니까?라고 묻지는 말자. 의술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경우도 수치로 그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단지 근치의 개념인지 고식적인 개념인지, 합병증의 가능성이 높은 지 낮은 지, 치료 후에 어떤 변화가 올 지를 물어보자. 사실 물어보지 않아서 그렇지, 수술 후의 변화에 대해 물으면 척추 의사들은 기꺼이 설명해줄 것이다.
5. 의사를 몰아붙이지 말자.
어떤 환자들을 보면 외래 또는 진료실에 들어올 때 이미 자기가 받고 싶은 치료법을 정해놓고 오는 경우가 있다. 이들은 자기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매우 실망하고 심지어는 짜증을 낸다. 이것은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척추 의사는 전문가이다. 전문가가 진단하고 권장하는 치료 옵션이 답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히려 내가 그 시술을 받고 싶다고 그 의사에게 떼 (?)를 쓰면 매우 위험한 상황을 유발할 수 있다. 의사도 사람인 지라 환자가 자꾸 채근하면서 원하면 자기도 모르게 그쪽으로 유도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결정된 치료법의 결과가 좋겠는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의사를 몰아붙이지 말아야 한다.
또 한 가지, 특별취급받을 생각을 말자. 병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 치료법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를 찾아오는 환자들은 주로 지역주민이라기보다는 매체를 접하거나 주변의 권유를 통해서 멀리서 찾아오는 환자들이다. 이들은 마치 멀리서 유명한 의사를 찾아왔다는 자체로 또는 자기의 사회적인 지위를 빌미로 필자에게 특별취급을 받기 원한다. 과연 그것이 본인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No이다.
첫째, 의료에는 VIP 신드롬이라는 말이 있다. 대개 VIP를 치료할 때 더 잘해주려고 예외적으로 하다가 오히려 정해진 치료 과정이 아닌 비정상적인 과정을 택함으로써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VIP 라면 오히려 긴장해야 한다.
둘째, 담당의사 및 의료진에게 선입견과 부담을 주게 된다. 의사도 사람이다. 자기에게 부담감을 주는 존재에게 최선의 진료 및 성실한 자세를 일관되게 보여주기 어렵다. 겉으로만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서 실제로 당신이 빨리 퇴원해 주었으면 하고 바랄지도 모른다.
셋째, 당신은 그 정도로 중환자가 아니다. 객관적으로 그리고 의학적으로 만인은 평등하다고 전제하는 것이 올바른 의료이다. 왜 새치기하려고 하고 특별취급받으려고 하는 가? 당신이 중환자실에 들어갈 정도의 정말 중환자가 아니라면 당신의 차례를 기다려라. 필자도 병원에 가면 평범한 환자이거나 평범한 보호자일 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특별취급 바라지 마라.
한 줄 요약: 척추 치료는 AS가 아니다. 그리고 알아서 내 병을 고쳐주는 '용한 의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