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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용 Jan 31. 2021

척추수술에 대한 오해와 진실

척추수술의 올바른 이해와 적절한 시기 - Miscellaneous -

허리 디스크나 목 디스크가 생기면 덜컥 겁을 먹은 환자들이 쏟아내는 첫 번째 질문이 “수술을 하지 않고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이다. 주변에 척추수술을 받은 지인이 한 두 명쯤은 있기 때문에 수술에 대한 나름의 선입견이 있다. 하나는 척추수술을 하면 허리가 많이 약해지고 제구실을 못하므로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측과 반대로, 괜히 고생하지 말고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측으로 나눌 수 있다. 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래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1. 어떤 의사가 봐도 수술을 꼭 해야 하는 경우

    2. 의사에 따라서 수술을 권하기도 하고 권하지 않기도 하는 경우

    3. 대개 수술적 치료보다는 비수술적 치료를 권하는 경우

수술이 필요한 척추 질환자는 사실 전체 환자의 10%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당사자가 수술의 적응증이 되는 경우라면 자신에게는 100%인 것이다. 그러므로 환자 자신이 어느 부류에 속하는지부터 잘 따져봐야 한다. 1번과 3번의 경우에는 별로 고민할 것이 없지만, 문제는 2번의 경우이다. 선택의 기로에 선 경우 최종 결정은 환자 본인이 해야 하기 때문에 척추수술의 본질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척추 수술은 눌리는 신경을 안 눌리게 하는 ‘감압’과 과도하게 불안정한 척추뼈를 보정물 등을 이용하여 균형을 잡는 ‘안정화’를 목적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신경 압박이 심하여 일상생활을 방해하고 신경학적 결손이 의심되는 경우나 척추 불안정증이 일정기간 지속되어 회복 불가능하게 되어버린 경우 등이 수술의 적응증이다. 신경학적 결손이 고정되어 버리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척추 수술하면 안 좋다 라는 속설은 실제로 수술이 잘못되는 경우도 일부 있겠지만, 대부분은 수술에 대한 기대치와 수술 후의 상태에 대한 괴리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척추 수술의 진실은 다음과 같다.

1. 척추뼈와 디스크는 여러 개가 있기 때문에 병도 동시에 ‘다발성’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이상이 있는 모든 부위를 다 수술하는 것은 득보다는 실이 클 수 있기에 인체를 고려해 선택적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다.

2. 우리 척추의 퇴행성 변화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수술 후에도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 다시 해당 부위 또는 주변부위에 병증 및 통증이 생길 수 있다. 

3. 척추 증상은 병소를 특정하기가 어렵다. 치아가 아프면 어느 부위가 아픈지 주관적으로 알 수 있지만 척추는 특성상 어느 척추 분절이 원인인지 알 수가 없는 ‘모호함’이 있다. 때로는 전문가가 이학적 및 방사선학적 검사를 면밀히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소가 애매하거나 병의 정체가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4. 수술 전 병에 의해 신경 또는 주변 조직이 손상되어 있는 경우 수술이 잘 되더라도 ‘회복기간'이 필요하다. 그 기간도 개인차가 존재한다. 따라서 수술 후 효과가 나타나고 정착될 때까지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다.


척추수술은 A/S가 아니다. 자동차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인간은 신이 만들었다. 자동차는 A/S가 되지만 인간은 A/S 할 수 없다. 의사는 신이 아니니까...

결국 척추 수술은 자동차의 부속품을 교체하는 것 같은 A/S가 아닌 치료의 중요한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험이 많고 숙련된 믿을 수 있는 의료진을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이다.


외래에서 환자분들을 진찰하고 대화하다 보면 수술을 해야 하는가 외에 흔히 듣는 질문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언제 수술을 받아야 하는가 이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수술의 시기는 다음과 같다. 

1. 6주 이상 적극적인 보존요법 및 비수술 요법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호전되지 않고 또는 더 진행하는 경우

2. 시기와 관계없이 근력 마비가 진행되거나 대소변의 장애가 심해지는 경우이다. 

이 둘 중에 하나에 해당하면 수술적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의 상황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장 많은 경우가 수년째 치료를 방치하거나, 수술을 권유받았어도 두려움 또는 바쁘다는 핑계로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고 있는 경우이다. 중증 또는 말기의 협착증으로 이미 수술 시기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되묻는 경우가 많다. 꼭 지금 수술해야 하나요 라고… 이럴 때 척추 의사로서 난감한 경우가 많다. 사실은 지금이라도 수술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실제로 환자에게는 경과를 보고 증상 호전이 없으면 그때 수술하세요 라고 원칙적인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많이 본다. 특히 전문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인데, 지금 수술받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마비가 진행되니 빨리 수술하십시오 라고… 

수술을 너무 권해도, 그렇다고 너무 방치해도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현재까지의 치료 경력을 잘 살피고 충분한 비수술 요법을 했음에도 효과를 못 본 경우, 그리고 수술의 결과가 명백히 예상되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수술을 권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가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한 후 결정하는 게 좋겠다. 환자의 심리는 마치 어린아이 같아서 냉철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담당의사는 이에 흔들리지 말고 의학적 근거와 경험에 의거하여 환자를 위한 최선의 방책이 무엇인지 생각해서 적확한 결론을 내야 한다. 지금 보고 안 볼 사이도 아니지 않은가. 단기간의 효과보다는, 장기간의 결과와 삶의 질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척추 의사의 인생도 길고, 환자의 인생도 길기 때문이다. 


한 줄 요약: 척추수술은 A/S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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