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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용 Feb 02. 2021

협착증? 허리 MRI에 속지 말자

협착증으로 오인되기 쉬운 질환 - Miscellaneous -

다리가 저리고 멀리 걷지 못하며 중간에 쉬었다 걸어야 하는 파행이 협착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이경우 요추 MRI 검사를 하여 확진하게 된다. 근데 이게 다일까? 그렇지 않다. 현실세계에서는 협착증인 척하는 유사질환이 많다. 잘못된 진단 및 치료로 불행을 초래할 수도 있다. 


척추 의사로서 괴로운 경험을 고백하려 한다. 경험이 지금보다 부족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분은 매우 가까운 친척 분이었다. 자녀분들은 나와 형제처럼 지냈고,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자주 왕래하던 사이었다. 어느 날 웃으면서 진료실을 방문하여, 협착증 진단을 받았다고 하셨다. 요추 MRI를 보니 요추 4-5간에 전형적인 중심성 협착증과 전방 전위증 소견을 보였다. 2개월 정도 약 처방을 하였지만 점점 더 저리고 걷기 어렵다고 하셔서 수술을 결정하게 되었다. 

병소를 감압하고 골유합술을 시행하였다. 수술은 잘 되었으나 이상하게도 수술 후 예후가 좋지 않았다. 계속 통증을 호소하시고 수술 전의 저림과 보행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수술 후 MRI를 재촬영하였고 약간의 혈종이 있어 재수술까지 하면서 확실하게 병소를 감압해 주었다. 그래도 효과는 없었고 그렇게 어찌어찌 퇴원하시게 되었다.

환자분은 계속 괴로워했고, 척추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 필자는 신경과 검진을 의뢰했고 결국 파킨슨병으로 진단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다. 사실 그분의 문제는 척추협착증이 아니었고 파킨슨병의 진행이었던 것이다. 물론 파킨슨병이 협착증으로 오인되기 쉬운 질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친척 어르신이었기 때문에 미쳐 객관적인 진찰을 시행하지 않은 것이 패착이었던 것이다. 협착증은 이차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아무튼 진단까지 해 드렸지만 그분과 가족들은 필자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되었고 급기야는 쓸데없이 척추에 손을 댔다고 원망하는 지경이 이르렀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생전에 좋은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비록 협착증도 수술할 정도였다고 하지만, 수술 전에 충분히 척추 이외의 병을 인지하고 교육한 후에 수술한 것이 아니라서 의미가 없다. 소위 전문가라고 자부하던 필자조차도 뇌의 병변을 요추 협착증으로 오인해 불필요한 수술을 하게 된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 전문가조차도 속아 넘어가는 질환들이 있으니, 협착증 증상을 갖고 있는 환자들은 모든 것을 의사에게 맡기지 말고 오인할 수 있는 질환들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다리가 저리고 보행장애가 있는데 MRI 소견마저도 요추 협착증 증상을 보이고 있다면 확진이 된 것인가? 아니다. 면밀하게 다른 질환의 징후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1. 척수증

척추의 신경은 경추와 흉추에는 중추신경이 자리 잡고 있고 요추에 와서 말초신경과 비슷한 말총을 형성한다. 경추 및 흉추에 병변이 생겨서 중추신경이 압박된 경우를 ‘척수증’이라고 하며 요추 협착증과는 병태생리 자체가 다르다. 중추신경의 손상이 생기기 때문에 하체 전체가 약해지고 균형을 못 잡고 보행장애를 호소하게 된다. 환자들은 다리가 저려서 걷기 힘든 것과 다리에 힘이 빠져서 걷기 힘든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도 목이 아픈 적이 없기 때문에 검사할 때 요추 MRI 만 찍는 경우가 많다. 이경우 척수증을 진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 잘못된 부위를 수술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협착증 증상이 있을 때 항상 경추 또는 흉추에 대한 검사도 병행해야 한다. 


2. 파킨슨병

필자의 아픈 기억처럼 경험 많은 척추 의사라면 대개 파킨슨 병을 오인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ㅏ킨슨병은 흔히들 손떨림의 증상을 떠올리지만 사실 동작이 느려지고 무표정해지고, 정상적인 보행이 아닌 종종걸음을 걷게 되는 병이다. 파킨슨병은 오인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협착증과 병발했을 경우 치료의 예후가 좋지 않다. 

우리 부모님이 다리 저리다고 하실 때 동작이 느려지거나 무표정한 지 살펴보자.


3. 하지 혈관 질환

다리가 저릴 때 크게 두 가지 범주의 파행이 있다. 협착증에 의한 척추신경의 압박으로 오는 신경성 파행과 하지의 혈액순환 장애에 의한 혈관성 파행이다. 다리가 저리고 중등도의 협착이 MRI에서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저림의 특징을 잘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똑바로 선 자세로 걸으면 저리고 허리를 구부리고 운동하면 나아지는 경우 협착증에 의한 신경성 파행, 자세와 관계없이 운동하면 하체가 저리고 조여 오면 혈관성 파행을 의심하자.


4. 뇌종양

드물지만 뇌종양도 협착증 또는 척수증과 유사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대뇌 피질에서 중심에 가까운 부위는 하지를 담당하는 데 이 구역에서 종양이 생기면 상체는 비교적 괜찮은데 하체가 약해지고 보행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하체가 약해지고 한 발로 제자리 뛸 수가 없는 경우 경추 및 뇌 촬영이 필요한 이유이다. 


5. 말초신경병증 또는 근육병 (루게릭병)

드물지 않게 척추신경이 아닌 하지의 말초신경이 병들어 다리 저림과 약화가 오는 경우, 또는 루게릭병 등과 같이 근육 자체에 생긴 병도 초기에는 협착증과 비슷한 증상을 나타낸다.

의심되면 근전도 검사 등 전기생리학적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다.


이상과 같이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요추 협착증도 정확한 진단이 어렵고 타 질환과 감별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한 기관에서만 진료받고 섣불리 치료방침을 결정하지 말고, 적어도 세 군데의 믿을 수 있는 의료기관에서, 경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의사에게 진단받고, 치료방침을 결정할 때 신중할 필요가 있다.


한 줄 요약: 다리 저림의 원인은 많다. 허리 MRI에 속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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