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이다 - Miscellaneous -
필자도 가끔 디스크병 증상에 시달린다. 특히 수술을 장시간 하거나 체중이 늘었을 때 요통과 방사통을 느끼곤 한다. 그럴 때 필자는 가장 먼저 운동량을 줄이고 안정을 취하는 한편, 가능한 한 빨리 진통제를 복용한다. 물론 환자들에게도 일차치료제로서 진통제를 처방한다.
디스크병이나 협착증에 쓰이는 진통제의 종류는 다양하고 다음과 같다.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 (Nonsteroidal anti-inflammatory drug, NSAID)
-스테로이드 (Steroid)
-마약성 진통제 (Opioid)
-항우울제 (Antidepressant)
-항경련제 (Antiepileptics)
임상에서는 병의 종류와 치료 목적에 맞게 단일제제 또는 복합제제를 처방한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환자분들이 진통제라는 선입견에 빠져 약을 잘 먹지 않고 버티거나, 불필요한 시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그분들은 필자에게 “이건 그냥 진통제 아닌가요?”라고 묻는다. 진통제는 단순히 통증만 임시방편으로 줄여주는 약으로 원인 치료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원인 질환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만 통증이 사라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진통제는 진통제인 동시에 치료제이다. 그러므로 통증이 발생하면 병의 진단과 동시에 통증을 줄이는 노력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통증은 병의 결과 증상이기도 하지만, 통증 자체도 일종의 질병이기 때문이다. 디스크병과 협착증에 대한 진통제의 치료기전은 다음과 같다.
진통소염제가 디스크병과 협착증에 대한 치료제로서 꼭 필요한 이유
1. 통증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우리의 일반 감각세포는 일반적으로 자극이 반복되면 역치가 증가하여 무뎌진다. 즉,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통증을 느끼는 통각 세포는 다르다. 자극이 반복되면 역치가 높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통증의 증폭 현상 (wind-up phenomenon) 이 일어나서, 통증이 증가하는 것이다. 즉, 통증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2. 만성 통증은 중추 감작 (Central sensitization)을 유발한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
중추 감작이란, 만성적인 반복 자극이 통각 세포에 들어올 때 통증을 느끼는 역치가 오히려 낮아지고, 대뇌로의 신호가 증폭되어 작은 자극에도 심한 통증을 느끼는 상태가 되는 현상이다. 가장 극단적인 예가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 (CRPS)으로서 스치는 바람에는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근육이 위축되는 무서운 병이 있다. 통증 자체가 병인 것이다. 빠른 시간에 통증을 줄여주는 것이 이러한 중추 감작을 막는 지름길이다.
3. 신경 자체의 염증과 부종을 가라앉힌다.
압박되어있는 척추신경은 대개 빨갛게 충혈되어있고 많이 부어있다. 진통제는 신경에 직접 작용하여 염증과 부종을 가라앉힌다. 이로서 만성 신경병증을 예방하고 좁아진 신경 통로를 보다 원활하게 통과할 수 있게 해 준다. 통증을 줄이지만 신경의 연결도 호전되는 것이다.
4. 디스크병에서의 자연치유의 시간을 벌어준다.
디스크병과 초기 협착증은 자연치유가 가능하다. 물론 진통제가 탈출된 디스크를 줄이는 작용을 한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면역반응을 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연 치유가 일어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며, 그 시간 동안 통증을 줄여 삶의 질을 유지하는 것 역시 진통제의 중요한 작용이다.
물론 약의 부작용도 고려를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복용했을 경우 타 장기의 부작용과 내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특히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 이러한 조절은 전문의에게 맡기자. 우리 환자들은 통증 자체가 질병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필자가 요통이 있을 때 바로 진통제를 찾는 이유이다.
한 줄 요약: 통증은 단순히 증상이 아니다. 통증 자체가 질병이다. 그러니 진통제를 치료제로서 활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