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수술은 A/S가 아니다. -Miscellaneous-
예방적인 척추수술은 없다.
이 한마디는 필자가 20여 년의 척추수술 전문의를 거치면서 내린 결론 중의 하나다.
척추협착증이나 척추전방전위증 같은 만성 척추 질환은 대개 증상 기간이 수개월에서 수년으로 길고, 많이 괴로운 시기가 있다가도 저절로 증상이 완화되어 잘 지내는 경우가 반복된다. 이러면서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을 겪는다.
중년의 한 척추협착증 환자가 있다. 간헐적인 파행으로 오래 걷지 못하게 되어 병원에 가서 MRI 검사를 하고 전문의를 만나 협착증이 진행되어 적극적인 치료를 권유받았다. 그래서 약도 처방받고 신경차단술 등 통증 클리닉 치료도 받고, 용하다는 의사나 한의사를 찾아서 비싼 비용을 지불하면서 시술하거나 추나요법 등을 받기도 한다. 물론 열심히 운동도 한다. 그렇지만, 증상은 약간 나아졌을 뿐 기본적인 괴로움은 남아있다. 그리고는 어찌어찌 필자에 대해 알게 되고 MRI를 지참하고 상담을 하러 오게 된다.
아주 전형적인 만성 척추질환 환자들의 예이다. MRI를 보면 수술적 치료의 적응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에 타 병원에서 수술도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필자는 이경우 수술을 권유할까?
결론은 No이다.
수술을 결정하게 되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현재 증상이 신경학적 결손을 유발하거나 일상생활을 경쟁력 있게 영위할 수 없고,
둘째, 증상과 검사 결과의 인과관계가 확실하고,
셋째, 수술을 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합병증의 위험보다 월등하게 높을 때이다.
이세가지가 모두 합당해야만 수술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6개월 전에는 죽을 듯이 아팠지만 당시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술을 못하고, 지금 수술이 가능한 시기가 되었는데 이상하게 증상이 조금 나아진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수술을 해야 할까? (실제로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기 때문에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단언컨대, 척추의 세계에서 예방적 수술은 없다. 아무리 MRI상 신경 압박이 많이 진행되어 있어도, 협착 정도가 말기여도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괴로움이 아니면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일까? 그것은 척추수술에 연관된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아무리 쉬워 보이는 척추수술을 아무리 경험 많은 전문가가 수술을 해도 어느 정도의 합병증 위험이 상존한다. 예를 들어 교과서에 특정 수술의 감염 확률이 1%라고 하자. 그럼, 실제로 아무리 무균적인 환경에서 충분한 항생제를 쓰고 정확한 수술을 했다 하더라도 이 1%는 거의 정확히 지켜진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일종의 현재 기술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 1% 가 일단 생기면 당사자에는 100% 인 것이다.
수술은 이길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도박이다. 그래도 도박은 도박이다. 아주 절실하지 않은 한 어쨌든 도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이 암수술과 다른 점이다. 암에 걸리면 무조건 살아야 한다. 수술이 가능하면 가능한 한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한다. 도박이고 뭐고 없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수술해야 한다. 척추는 다르다. 대개는 죽고 사는 문제는 아니다. 이 경우 합병증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수술은 A/S 가 아니다. 자동차는 제품을 만든 회사가 제품에 하자가 있거나 이상이 발견되었을 때 하자를 보수하거나 고장 난 부품을 교체하면 된다. 그렇지만 인체는 완전히 다르다. 병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며 의사가 만든 것도 더더욱 아니다. 자동차처럼 매뉴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품을 갈아 끼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인체는 손상을 받는 것이라 마음대로 열어볼 수도 없다. 척추는 더욱 그렇다. 하나의 증상에 의심할 수 있는 원인도 다양하고 그 부위도 여러 군데이다. 원인 질병과 부위가 확실해도 수술에 의한 부작용 가능성은 항상 존재하며 결코 가볍지 않다. 최고의 병원에서 최고의 권의자가 최고의 컨디션으로 수술을 한다고 해서 합병증이 없지 않다. 흔히들 수술 전에 의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을 것이다. 별로 어려운 수술이 아닙니다. 대개 수술하면 좋아질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의 위험성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라고 말이다. 아무리 낮은 확률의 합병증이라도 나에게 일어날 수 있으며 나에게 일어났을 경우 그것은 100% 인 것이다.
진짜 문제인 것은, 합병증이 생겼을 때의 자세이다. 그냥 무조건 억울한 것이다. 마냥 사기당한 것 같다. 아니, 유명하다는 의사를 찾아서 몇 달을 대기한 다음 (아니면 약간의 백을 써서) 만나 본 의사 선생님은 웃으면서 분명히 좋아질 것이라고 했는데, 이런 문제가 생기다니…
수술을 A/S 개념으로 생각하면 이런 억울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후속치료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의사는 진심으로 환자를 대하고 꼼꼼히 점검하고 열심히 치료했는데 욕만 먹고, 환자는 환자대로 믿었던 의사에게 배신감만 느끼게 되고 의료사고를 의심하게 되고…
별로 없는 이야기 같은가? 내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가? 아니다. 비일비재한 일들이다. 우리 주변에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러니 수술에는 신중, 정말 신중해야 한다.
척추치료를 성공적으로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의료진을 선택해야 하고, 치료의 기대효과와 문제점을 충분히 설명 들어야 하며, 수술에는 언제나 반대급부가 따른다는 것을 인식하고 신중하게 치료에 임할 것을 권한다.
지금 괴로운가? 그렇지 않으면 수술하지 마시라. 아무리 응급상황이라도 척추치료는 그렇다.
한 줄 요약: 척추의 세계에서 예방적 수술은 없다. 수술은 A/S 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