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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용 Jun 18. 2021

화려한 위험수당

척추전문의는 위험수당을 받는 극한 직업이다 - 제다이로 살기 -

얼마 전 기사에 미국 의사의 연봉 순위가 발표된 적이 있었고, 그중 1위가 척추외과의사였다. 

평균 수십만 달러의 연봉을 기록하고 있고, 지금은 약간 유행이 지났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척추전문의는 신경외과, 정형외과 전공의들이 선호하는 분야로 꼽힌다.

그렇지만 일에 대한 만족도를 따져보면 60% 미만으로 하위권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환자군의 특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것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다. 책에 나오는 고상하게 포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얘를 들어보자. 뇌수술을 전문으로 하는 신경외과의사가 여기 있다. 응급실로 실려온 65세 여자 환자로 뇌동맥류 파열로 혼수상태이다. CT 및 혈과 조영술을 하고 뇌동맥류를 확인 후 보호자에게 설명을 한다. "이병은 급사의 주된 원인 중 하나로서 혈관 꽈리가 파열된 후 1/3은 병원에 오기 전 돌아가시고, 1/3은 병원에서 돌아가시거나 영구적인 후유증을 갖게 되고, 오직 1/3만 큰 후유증 없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목숨을 살리려면 응급수술을 해야 합니다." 곧 응급수술이 진행되고 수술은 다행히 잘 끝났다. 환자는 이후 뇌수종에 대한 션트 수술을 추가로 하고 퇴원하였으며 재활치료를 앞두고 있다. 이환자가 어느 정도 후유증이 남았건, 아니면 불행하게 수술 후 사망하였건 간에, 중요한 건 비교적 확실한 결말이 난다는 것이다. 담당 신경외과 의사는 어려운 과정을 겪었지만 (육체는 힘들었지만), 일단락이 되었다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다.


반대로 척추신경외과 전문의의 예를 들어보자. 만성 척추협착증을 앓고 있던 75세 남자 환자를 수술하게 되었다. 협착된 부분을 현미경하에 감압하고 척추경 나사못으로 고정하는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수술 중 큰 문제는 없었고 나사못 삽입도 잘 되었다. 근데 수술 후에 환자는 수술이 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시리고 허리 움직임이 어렵다고 호소한다. 수술 후 MRI 검사를 해봐도 신경 감압이나 나사못 삽입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환자는 행복하지 않았다.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기는커녕 오히려 수술 전보더 다리가 더 시리고 괴롭다는 것이다. 병원에 걸어 들어왔는데 나갈 때는 오히려 다리를 절면서 나가게 되었다고 불만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환자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서 계속해서 담당의사를 힘들게 했다. 이러한 환자들은 수술을 많이 하는 척추 의사일수록 상대적으로 많이 생기고, 속된 말로 "팬클럽"을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팬클럽은 수년 또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일종의 "추적자" 들이 되는 것이다. 이환자들로 인해 담당 척추 의사는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리게 된다.


두 개의 극단적인 비유를 했지만, 척추 환자의 특성상 생사와는 무관하지만 심각한 통증 또는 신경학적인 후유증이 발생하면 아주 장기적으로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의사, 환자 모두 불행해지는 경우가 있다. 


척추외과의인 나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왔지만, 돌이켜 보면 결과가 안 좋은 환자들 때문에 잠못이루거나 꿈에 나타나서 괴로웠던 날들이 많았다. 일종의 위험수당이었던 것이다. 


최근 한 종편 의학 드라마 시즌 2가 시작되었다. 매우 슬기로운 의사와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현실과는 다른 점이 많지만 그래도 기본 콘셉트는 매우 현실적이다 (그래서 감동을 주는 것 같다).

그들의 낙관적인 철학, 인간 존중, 그리고 유머... 모든 것이 완벽하다. 나 또한 배우는 점이 많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한 가지...

제다이들은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고 여유스러워 보이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결국...

위험수당이 많은 극한 직업인 것이다. 그들의 손끝 하나하나, 순간의 선택 하나하나가 우리 가족의 생명을 좌지우지한다는 것...


다시 척추수술의 세계로 범위를 좁혀보자. 척추수술은 진단도 어렵고 수술의 성공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첫째, 여러 분절로 나누어져 있는 척추는 통증이나 신경증상이 발생 부위를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치아의 문제는 환자들 스스로도 어느 이빨이 안 좋은지 쉽게 알 수 있지만, 척추는 몇 번째 분절의 문제가 나의 증상을 일으키는지 알기 거의 불가능하다.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들만이 그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척추병원 의사들의 말이 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둘째, 척추 신경은 매우 예민하고 약해서 작은 기계적 자극이나 온도 차이 등에도 쉽게 변성이 생기며 쉽게 정상화되기 어려운 특성이 있다. 뇌 신경보다도 척추의 신경이 더 예민한 것이 사실이다. 

셋째, 척추는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퇴행성 과정을 겪기 때문에 수술의 결과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제반 이유들로 인해 척추수술은 어렵다. 자칫 수술에 관련된 합병증이나 신경학적 결손, 통증 등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 제다이들의 어깨를 항상 짓누른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연속적으로 다른 문제가 생기고, 때로는 겹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99명이 수술 후 행복해져도 1명이 불행해 지만 잠을 이루지 모사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척추외과의사의 길은 적어도 장밋빛 레드카펫이 깔린 꽃길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덤불로 가득 찬 가시밭길이나 진흙탕 길이 더 가깝다.

더 끔찍한 것은...

이러한 험한 길은 한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앞길에 단 한 번도 쉼 없이 계속 펼쳐 저 있다는 것이다. 이미 각오한 지는 오래다 (그 편이 마음 편하다).


척추외과의사라는 직업은 큰 위험수당을 받는 극한 직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일을 포기하지 못하고 오늘도 가시밭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냥 천직이자 소명인 것이다. 또한 여러분들에게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걱정은 내가 한다. 리스크 또한 나의 몫이다. 다만,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환자들을 '안심 낙관' 시키기 위해서 오늘도 위험수당을 안고 질병과 싸우는 제다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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