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때로 가해자가 된다 - 제다이로 살기 -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외래
필자는 미세침습 척추시술 전문가이다. 20여 년간 이 주제를 전공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니, 전국 여기저기에서 외래를 찾아온다. 모두들 먼 데서 마치 메시아를 찾아온 신도들처럼 필자를 대한다. 눈앞의 의사가 자기들의 문제를 마술같이 해결해 주고 더 행복해질 것으로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하루 종일 외래를 보면 실제 의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보다 어쩌면 인생 상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의 고통, 복잡하고 꼬여있는 건강상의 문제, 기대치… 이 모든 것들을 필자에게 부담으로 다가온다.
수술 결과가 좋아 연신 즐거운 표정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환자들을 보면 기분이 좋을 법도 하건만, 한두 명의 환자는 치료 후에도 통증을 호소하거나, 수술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 서로 민망한 경우도 있다. 슬기로운 의사** 같은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휴머니즘이나 유머, 감동이 밀려오는 순간보다는 통증과 불편감 그리고 희망과 실망이 얼버무려져 있는 현실이 있을 뿐이다.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합병증의 예
50대 남자 환자의 예이다. 요추 3-4간 추간판 탈출증으로 보존요법 중으로 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일상생활이 곤란할 정도의 상태에서 필자의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전신 마취하에 절개 수술하는 것은 두렵고 망설이던 차에 부분마취 비절개로 완치가 가능한 시술이 있으니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검사 결과를 보니 내시경 시술로도 충분히 치료될 수 있는 상태로 판단하였다.
수일 후 내시경 시술을 시행하였고, 증상은 즉각적으로 호전되어 퇴원하였다. 6개월 이상 고통받던 통증에서 순간적으로 해방되었으므로 환자분은 너무 좋아했고 고마워했다. 그리고 조기에 평상 일로 복귀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근데 불행은 시술 후 2주가 지나서였다. 어느 날 갑자기 요통과 다리 당김 증상이 다시 발생하였고 필자를 다시 찾아왔다. 기본적인 검사에서 특이 소견이 보이지 않아 약 처방을 보강하고 2주 정도 경과를 보자고 했다. 그 이후로 정해진 날 환자는 오지 않았고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점심시간에 응급실에서 연락이 왔다. 그분이었다. 시간이 안 맞아서 다른 병원에서 검사를 하고 추간판 염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MRI 검사 결과를 보니 추간판염이 맞았다. 수술한 부위에 감염증이 생겨서 점점 퍼지는 상황이었다. 그날 오후에 응급수술로 미세현미경 후방 감압술 및 골유합술을 시행하였다. 그리고는 한 달간 입원 치료를 받은 후 무사히 퇴원하였다.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수술의 세계
모든 시술 또는 수술에는 제반 합병증의 확률이 존재한다. 특히, 수술부위 감염증은 일종의 불가항력적인 부작용인 경우가 많다. 비록 비절개 시술이라도 드물지만 감염증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필자의 논문에 따르면 척추내시경 시술 후에 감염증 가능성은 0.1-0.2 퍼센트이다 (연구에 따라 다르긴 하다). 1000명 중에 한두 명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술 전에 충분히 합병증의 가능성 및 재수술 가능성에 대해 직접 설명하였지만, 막상 생기면 당사자에게는 100 퍼센트인 것이다.
응급 재수술을 앞둔 환자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일차 시술 후에 너무 좋아하고 고마워하던 그 눈빛이 원망과 두려움으로 바뀌어 있던 것이다. 그리고 쏟아지는 원망의 말들…
환자에게 필자는 처음에 천사였다가 합병증이 생겼을 때에는 마치 악마의 얼굴로 느껴졌을 수 있다.
물론 필자도 억울했다. 아주 깔끔하게 잘 된 시술이었지만, 감염증은 불가항력적인 것이고 한번 발생하면 훨씬 더 큰 수술이 필요한 것이다. 수술하는 동안 팰로우 선생에게 짜증도 냈고, 기구 소독이 잘못되었지 않았나 하고 괜히 주임 간호사 선생에게도 원망의 말을 건넸다.
제다이의 카르마
외과 수술 전문의에게는 이러한 일들이 마치 숙명과 같다. 천사와 악마,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세계이다. 아무튼 졸지에 가해자가 되었다. 이럴 때는 정말 환자가 꿈에 나오고, 일을 그만두고 싶기도 한다. 이런 트라우마들이 시나브로 속으로 쌓여가기도 한다.
대부분의 수술은 성공적이다. 수술은 성공확률이 아주 높은 도박이니까. 그렇지만 드물지만 불가항력적인 합병증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이 이러한 합병증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놀랍지만 대개 책에 나오는 확률을 그대로 지킨다. 소름 끼치는 일이다.
사람들이 이 사정을 알아줄지 모르지만, 어차피 수술하는 외과 전문의는 고독하다. 천사와 악마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제다이로서, 앞으로는 이러한 합병증 확률 제로가 되는 완벽을 추구하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