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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Sep 20. 2022

아버지의 적당함

- 몽당연필과 아버지를 그리며

글쓰기 모임의 여섯 번째 주제는 '연필'이다.

혼자 글쓰기를 했다면 생각하지도 못했을 주제...


출근길에 생각해 보았다. 

내 삶에서 연필과 연결고리에 이어지는 말들을.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아버지'였다.     


(추억 속 장면과 비숫하여 가톨릭 굿뉴스에서 옮겨왔음을 밝힙니다.)


아침 등교 전 아버지는 연필을 깎아주셨다.

언니랑 동생의 필통도 나란히 줄을 서 있다.


테이블 위에 신문지를 깔고

검은색 손잡이가 있는 접이식 칼로

한 자루 한 자루 깎아 필통에 넣어주셨다.     


왼손으로 연필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칼등을

천천히 밀어내면

기다란 물고기 비늘처럼 한 겹씩 깎여 나갔다.

천천히 연필을 돌려가며 

같은 속도, 같은 힘으로 연필을 깎으시는 모습이

어린 우리의 눈에는 마법 같았다. 


그리고는

연필을 신문지에 수직으로 세우고 

까만 연필심을 사각사각 깎아주셨는데

고학년인 언니 것은 내 것보다 조금 뾰족하게,

1학년 동생 것은 조금 뭉툭하게

글씨 쓰기에 적당하게 조절해 주셨던 것같다.     


길이가 짧아진 몽당연필은 

아버지가 쓰시던 볼펜 자루에 끼워주셨는데

그러면 내 새끼손가락만 하던 연필도 

금세 키가 쑥 자랐다.


그 역시 작은 우리 손에 알맞도록

볼펜 자루를 칼로 잘라 적당한 길이로 만들어 주셨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그 모든 적당함은 사랑이었다.   

   

몽당연필도, 

아버지도 그리워지는 

가을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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