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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Oct 03. 2016

내게 세월을 돌려준다 하면

              - 인생의 선물


봄산에 피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정말로 몰랐네

봄산에 지는 꽃이 그리도 그리도 고울 줄이야

나이가 들기 전엔 정말로 생각을 못했네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 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하게 싫다고 말을 할 테야

다시 또 알 수 없는 안개빛 같은 젊음이라면

생각만 해도 힘이 드니까 나이 든 지금이 더 좋아

그것이 인생이란 비밀 그것이 인생이 준 고마운 선물

         - 양희은  <인생의 선물>    

             

공자님은 나이 마흔을 불혹(不惑)이라 하고, 쉰을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는 나이라며 지천명(知天命)이라 하셨지요. 그리고 예순의 나이에는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된다고 이순(耳順)이라 하셨고요.     

굳이 공자님 같은 성인이 아니더라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세월이란 녀석이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고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나 흰머리와 주름만 늘게 한다며 원망하던 ‘세월’ 말이에요. 오늘은 그 세월이 우리에게 준 선물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나는 몰랐어요. 

어린 시절 생일 때마다 엄마가 삶아주시던 귀하고 맛있는 계란을 엄마는 왜 좋아하지 않으셨는지.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당신 입으로 즐기는 음식맛보다 더 맛있고 행복하다는 것을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조금 알 것 같아요.     


나는 몰랐어요. 

자식들 귀찮게 한다고 말씀하시며, 전화드릴 때마다 ‘오지 마라, 올 필요 없다’하시던 일흔다섯의 아버님의 진심을 스물여섯 살의 어린 새댁이던 나는 정말 몰랐어요. ‘오지 마라’는 말씀이 ‘보고 싶다’는 말씀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하지만 막상 고집을 부려 찾아뵈면 한껏 반기며 내밀어 주시는 누룽지 맛 사탕 한 알. 이젠 그 구수한 맛을 알 것 같아요.     

당신은 아셨나요? 


나는 몰랐어요.

어느 시인의 시에서 배웠어요. 참깨를 털 땐 모가지가 떨어지지 않게 살살 두드려야 한다는 것을. 성급하게 힘껏 두드려 모가지가 통째로 떨어지면 일이 더 번거로워진다는 것을 젊은 혈기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사랑을 하는 데도, 재산을 모으는 데도 인내가 필요하며 절차가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인내와 기다림을 모르고 매사를 한번에 해결하려는 것이 얼마나 헛된 욕심인지를 알 것 같습니다.     


나는 몰랐어요. 

흰머리 주름투성이 할머니가 된 오드리 헵번의 사진을 보고 사람들이 왜 아름답다고 하는지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 눈에도 기아(飢餓)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아이를 안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가 <로마의 휴일>에서의 공주보다 더 아름답게 보였답니다. 마음의 잣대를 새롭게 세워 준 것은 인생이 우리에게 준 값진 선물임이 분명하지요?     


나는 몰랐어요.

바로 가는 길보다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더 현명할 때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지름길을 좋아하지요.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길을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알겠더라고요. 빠르게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오히려 천천히 돌아가는 길에서 얻을 수 있는 많은 것을 지름길에서는 놓칠 수도 있다는 것을, 당신을 만나 천천히 살아 보니 알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조금 돌아가는 길로 살아온 것 같아요. 빠르고 쉽게 살진 못했지만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은 아름다웠습니다.     


만약에 누군가가 당신에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 하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다시 이십대로 돌아가 그 자체가 하나의 빛이라는 ‘젊음’의 특권을 누려 보고 싶으신가요? 

저는 인생의 선물을 받은 지금의 시건머리(?)가 아닌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방황과 고뇌로만 가득한 이십 대로의 회귀라면 굳이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기 전에는 생각을 못했던 것들이 참 많아요. 노랫말처럼 피는 꽃도, 지는 꽃도 저리 곱고 예쁜 줄 몰랐어요. 나이가 들기 전엔 봄이면 으레 피는 들꽃에 마음을 둘 정신이 없었으니까요.      


이제는 알아야겠습니다. 아니 알 것 같습니다. 

상처가 아물면 새살이 돋아난다는 것을. 

또 새살이 잘 돋아나도록 상처를 잘 어루만져야 한다는 것을.

오늘 할 말을 내일로 미뤄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비판의 시선은 남보다는 나를 먼저 향해야 한다는 것을.

취(取)하는 것보다 버리는 [捨]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세월에 따라 변해야 할 것도 많지만 

절대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많다는 것을.    

모든 게 다 인생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랍니다. 

감사히 받아야 할 귀중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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