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향 Oct 06. 2016

그립다, 그립다, 그립다

- 비오는 날엔  빨간 장미를

<이하 사진 모두-이승은+허현선, 엄마 어렸을 적에>

억은 참 무섭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고향을 떠났으니 기억조차 흐릿한 십 대 초반 그 몇 해의 추억이 고향과 옛친구들을 사무치게 그립게 하니 말이다. 나이가 드나 보다. 세월에 익어 가면 갈수록 과거의 시간들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그리워지는 걸 보니.


 지나간 것이기에,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에 

그 시절이 아쉽다.

현재에는 없고

과거의 기억 속에서만 남아있기에

더 아련하게 그립다.

 기억 속에서만 있기에 더 아련하게 그리운 법


 커다란 백지 한 장을 펴놓고 긁적여 보았다. 다시 열두 살 소녀가 되어 고향집 뒷마당으로 돌아가 뜰마루에 누웠다. 마중물 한 바가지에 벌컥벌컥 물줄기를 쏟아내던 펌프, 그 위에 대롱거리며 달려있던 표주박, 텃밭에 모양 없게 달려있던 못난이 가지와 오이, 처마 아래 주렁주렁 달려있던 무시래기, 초롱불 같은 꽃송이 뿌려놓던 뒷마당 감나무, 바람 부는 날 휘날리던 빨래들과 빨래 장대, 처마 위 소쿠리엔 무말랭이와 빨간 고추, 배불뚝이 쌀독 속에 하얀 분이 묻은 쌀바가지, 반이 움푹 닳은 감자껍질 긁는 숟가락, 한겨울엔 행주까지 꽁꽁 얼어붙던 부뚜막, 그을음투성이 석유난로, 아궁이 앞 풍로와 부지깽이.

그들이 그립다.  


 브로치가 얌전하게 꽂혀있던 엄마의 고름 없는 한복저고리, 동무들의 허리에 질끈 묶여있던 보자기 책가방, 학교 가는 길가의 키 큰 미루나무와 밀밭, 껍질 벗겨 먹던 찔레순, 당번이 보자기에 받아 들고 오던 커다란 급식 빵, 육성회비, 선생님의 가정방문, 이마 위 부스럼, 잔디씨 모으기, 채변봉투와 해충약, 머릿니와 서캐.

 그 시절이 그립다.


 자동차 소리와 텔레비전 소리에 사라진 그리운 소리들도 많다. 보자기책가방 속 도시락 달그락거리는 소리, 함석지붕 비 듣는 소리, 빨랫돌 위에 놓인 빨래 두들기는 엄마의 방망이소리, 아궁이 불꽃들 파닥거리는 소리, 가마솥 밥물 넘치는 소리, 때 맞춰 울리는 괘종시계 소리, 보일러 물 끓는 소리, 마당의 암탉 우는 소리, 소독약 뿜는 따발총소리, 장날 아이스케키 아저씨의 반가운 목소리, 온동네에 울려 퍼지던 교회 종소리, 완행버스 안내양과 전화교환 언니 목소리.

그 소리가 그립다.


우리가 잊은 것, 잃은 것은 낭만…

 

 옛날을 돌아보고 오늘을 둘러본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국 우리가 잊은 것, 혹은 잃은 것은 ‘낭만’인 듯싶다.


 몇 해 전에 어느 대기업의 직원 채용 광고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채용 조건은 ‘3일 동안 밤을 꼬박 새울 수 있는가? 노래방에서 서른 곡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있는가? 아버지의 시계를 고치다가 고장내본 기억이 있는가? 비오는 수요일에 빨간 장미를 사본 적이 있는가? 못생긴 파트너와 3시간 이상 즐겁게 지낼 수 있는가? 3개 국어를 못해도 3개국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가?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 주고 집에까지 걸어서 가본 적이 있는가?’하는 것이었다. 이 기업에서는 학벌이 좋거나 외모가 훌륭하거나 외국어 능력이 뛰어난 젊은이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원한 것은 도전과 패기, 호기심과 열정 그리고 또 하나, 낭만을 즐길 줄 아는 마음이었다.

 

 마음이 더 늙기 전에 낭만을 즐기며

 

 화려한 네일아트보다 소박하지만 정겨운 봉숭아 꽃물들인 손톱을 기억하는가. 울타리에 핀 봉숭아꽃잎을 따서 납작한 돌멩이 위에 올려놓고 곱게 빻는다. 진홍빛 물이 뚝뚝 흐르는 꽃잎을 손톱 위에 얌전하게 올리고 무명실로 꽁꽁 동여맨다. 그러곤 조바심에 온밤 잠을 설친다. 빨갛게 물든 손톱을 보고 있으면 열두 살 소녀는 어느 새 숙녀가 되어있다. 빨간 빼니(립스틱) 바른 언니처럼 나도 아가씨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기다림도 설렘도 붉은 열정도 잊고 산다. 세월이 야금야금 흘러가면서 손톱이 자라나고 베어 문 듯 그믐달 모양으로 빠져나가는 꽃물을 보며 흘러가는 시간을 느껴볼 여유도 잊고 산다. 첫눈 올 때까지 손끝에 꽃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믿음도 잊고 산다. 결과를 바라지 않는 과정의 즐거움을 모르고 산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잊고 사는 듯하다.

 마음이 더 늙어가기 전에, 낭만을 즐기는 사치(?)를 누려보고 싶다. 비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사고 싶다. 아니 그런 낭만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나고 싶다. 대나무살로 만든 비닐우산을 쓰고 비오는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 멀리서 들려오는 비오는 소리, 아니 마른 흙냄새 솔솔 풍기는 비오는 냄새를 맡아 보고 싶다. 장대 우뚝 솟은 빨랫줄에 하얀 빨래 툭툭 털어 슬픔도 우울도 함께 말려 버리고 싶다. 정전(停電)된 초가을밤, 촛불 하나 밝히고 손가락으로 강아지, 주전자 그림자 만들며 깔깔 낄낄 온밤을 웃어 재끼고 싶다.



* 사진은, <엄마 어렸을 적엔-이승은, 허현선>에서 옮겨씀.

매거진의 이전글 사막에서 연어낚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