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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Oct 19. 2016

채영이의 이름


 큰딸아이 채영이의 첫이름은 ‘새봄’이었다. 4월, 새봄에 태어날 뱃속 생명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 언 땅을 녹이고 움을 틔우는 봄쑥처럼 건강하고 향기롭게 태어날 우리 아기, 새봄이! 우리는 다른 어느 해보다 그 4월을, ‘꿈꾸며’ 기다렸다.


 채영이의 두 번째 이름은 ‘비단’이었다. 이 이름 역시 뱃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엄마의 배를 차고 놀 때 붙여진 이름이다.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 ‘공주님’임을 넌지시 알려주기 전에 채영이는 스스로 엄마와 증조할아버지의 꿈속에 나타나 자신의 정체를 알려 주었다.


 같은 시기에 꾼 비슷한 꿈, 비단 짜는 꿈! 나는 한 번도 앉아 본 적 없는 베틀에 앉아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올곧은 비단을 척척 짜내고 있었고, 증조할아버지 역시 꿈속에서 비단을 두 필이나 뚝딱 짜냈노라 말씀하시며  예부터 베 짜는 꿈은 딸아이를 낳을 꿈이라고 일러 주셨다. 아이의 이름에 ‘비단 채(綵)’를 넣어 ‘채영’이라 이름 지어진 것도 이 태몽 때문이었다.


 평생 할 효도를 다한다는 재롱둥이 시절, 채영이는 또 하나의 별칭을 갖게 되었다. ‘똥구멍!’ 지금까지도 불리는 이 별칭을 채영이는 자신을 놀리는 말이라 처음에는 싫어했지만 이 별칭이 지어지게 된 연유를 알고부터는 ‘똥구멍!’하고 부르면 씨익 웃으며 ‘예!’ 하고 대답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첫선물, 첫보배인 채영이는 왕초보 엄마, 아빠인 우리 눈엔 예쁘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잠자는 얼굴만 쳐다보고도 몇 시간을, 아니 온종일을 행복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우리의 눈엔 채영이의 ‘똥구멍’까지도 예뻤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배설하는 그 모습까지도 우린 사랑스러웠으니까. 어쩌면 똥구멍까지도 그렇게 예쁘게 생겼을까.


 어느덧 쑥쑥 자라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채영이. 학교 시험에서 20문제가 나온 시험에서 12개를 틀린 걸 두고 두고 놀린다고 아빠는 ‘야

, 열두 개!’하고 부르기도 하고, 처음으로 학급임원이 된 격려하는 마음에서 ‘부반장!’하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채영이 호칭 중에 내 마음을 가장 흐뭇하게 하는 것은 ‘언니!’이다.


 여덟 살짜리 동생의 든든한, 열한 살의 언니였던 채영이는 늘 바쁘다,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엄마 대신에 동생을 데리고 학원도 같이 다니고 놀이방에 데려다 주기도 하고 머리를 빗겨주기도 했다. 일주일에 2500원 받는 용돈으로 과자도 사주고 200원짜리 뽑기반지도 사줄 줄 알았다. 음료수 뚜껑도 힘차게 열어주고, 수학문제도 척척 매겨주었다.


 “엄마 없을 땐 내가 엄마야.”

 채원이는 이런 언니의 말에 순종했다.

 “들어오면 손부터 씻어야지, 일기는 썼어?”

 엄마보다 잔소리도 한 단수 위였다.


 “언니야!”

하며 채원이가 언니를 부르는 목소리는 언제나 어리광이 가득하여 간절하고 애틋했다.


 채영이는 고 예쁜 똥구멍보다도 마음은 더 예쁘고 착하고 든든한, 채원이의 영원한 ‘언니’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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