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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향 Apr 17. 2022

과거는 입이 크다

                    - 이승우의 <캉탕>을 읽고 

 

 

 지난겨울 읽은, 정 사도요한 신부님이 추천하신 이승우의사랑이 한 일」은 참으로 신선했다. 창세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5개 단편을 ‘이게 뭐지?’ 하는 의문을, 끝까지 안고 읽었다. 강의 중에도 신부님 입을 통해 여러 차례 거명된 이름, 이승우. 

 순전히 그 이유로 그의 작품을 더 찾아 읽게 되었고 그 중의 하나가「캉탕」이다. 뒷표지에 적힌 추천의 말 중 ‘「오디세이아」와 「모비딕」이 멈춘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 기도이자 일기’라는 책의 소개가 최근에 읽은 「모든 것은 빛난다」에서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며 읽은 「모비딕」과 연결이 되는 듯하여 더 주저하지 않았다.      


 되도록 멀리그래야 있었던 곳을 제대로 볼 수 있으니까되도록 낯설게그래야 낯익은 것들의 굴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까되도록 깊이그래야 다른 나를 만날 수 있으니까.”(J가 한중수에게)     


 대기업 직원을 상대로 한 강연을 하다가 알 수 없는 머릿속 요란한 사이렌 소리 때문에 머리를 벽에 찧어댈 정도의 극한상황인 한중수. 여러 차례 119에 실려 병원으로 향한 그에게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J는 당장 모든 것을 잊고 떠나라 조언한다. “걷고, 보고, 쓰라.” 

 J가 적어준 주소는 웬만한 지도엔 나오지도 않는다는 세상 끝 ‘캉탕’이었다. 그렇게 더 이상은 버틸 수 없게 된 한중수는 사이렌 소리를 피해 세상 끝으로 숨는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그 고통의 진원, J에게조차 말할 수 없었던 고통의 진원은 아버지였다. 빚더미 속에서도 바둥거리며 막노동으로 마련한 자신의 대학 등록금을 몰래 들고 나가 노름판에서 또 탕진하고 온 아버지에게 그는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칼을 들고 와 그를 향해 덤벼들었고, 결국은 문지방에 걸려 넘어진 아버지의 가슴에 꽂히고 만 칼. 그 사실을 모른 채 자리를 뜬 그. 

 강연 자리마다 찾아와 그를 노려보던 아버지의 붉은 눈과 맹렬하게 울리는 사이렌 소리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막말,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방치했다는 죄책감에서 울려 퍼지는 내면의 소리였다.  

   

 한 발 물러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멀찍이 떨어져야 실체가 온전히 보인다. ‘나’를 바라보기 위한 노력 역시 마찬가지다. 나를 포장하고 있는 사회적 지위, 인간관계 속의 위치를 나의 정체성이라 오해할 때가 있다. 

 시선을 밖으로만 향하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소음과 고통의 진원을 밖에서 찾느라 우리의 삶이 불만과 분노, 좌절로 뒤덮이고 있지 않은지. ‘나’를 향한 성찰의 시선이 먼저다. 되도록 낯설게.        



 바다 한복판에서 물속으로 뛰어들 때 나는 내가 목숨을 유지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나는 그때 죽었어.…” … “나는 죽은 사람이야. 죽은 사람은 움직일 수 없지. 나는 여기서만 산 사람이야. 여기는 죽은 내가 사는 곳이야.”(핍이 한중수에게)     


- 영화 <백경>에서, 핍


 한중수가 J에게 받은 주소지 캉탕에는 한때 최기남이었고 지금은 ‘핍’인 J의 외삼촌이 살고 있었다. 젊을 때 「모비딕」에 미쳐 고래잡이 배를 탄 스물다섯 살의 핍은, 그가 탄 포경선이 엔진 이상으로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이곳 캉탕에 정박하게 되었는데, 간판도 없는 허름한 선술집 주인의 딸 나야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다시 배에 타지 않았다.  

 선술집을 이어 받아 모비딕에 미쳤던 그답게 ‘피쿼드’라는 간판을 달고 손님들에게 모비딕과 피쿼드호 선원들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좋아했다. 세이렌의 노랫소리에 홀린 바다사나이들처럼 나야의 자장가같은 노랫소리에 홀려 피쿼드에서 내려 다른 피쿼드로 갈아탄 셈이다. 

 하지만 모두 40여 년전 이야기다. 지금은 나야도 세상을 떠나고 없고, 핍은 피쿼드를 떠났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집을 나와 생전에 나야에게 했던 것처럼 나야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책을 읽어주며 나야를 여전히 마음에 붙잡아두고 있는 것 외엔 어두운 선실 같은 골방에서 우울한 침묵의 날들을 보내고 있다.  

    나야 생일날, 나야가 묻힌 언덕이 바라보이는 해변에서 한중수에게 들려준 핍의 말을 통해 그의 이름이 왜 ‘핍’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모비딕」의 가장 어린 흑인 소년 ‘핍’, 영혼은 이미 물속에서 죽고 육신만 구조되어 건져졌다고 여기며 산 소년 ‘핍’처럼 이전의 자신은 이미 죽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바다 한복판에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는 핍에게 배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바다에서 내린 그가 나야를 통해 어두운 선실에서 밝은 갑판으로 올라와 살다가 나야의 죽음으로 다시 어두운 선실 깊은 곳으로 숨어, 죽은 사람으로 사는 것 같아 가엾을 뿐.  



 "과거는 입이 크다. 입이 큰 과거는 현재를 문다. 때로 어떤 사람에게 이 묾은 치명적이다. 입이 크기 때문이 아니라 이빨이 날카롭기 때문이다. … 과거를 땅속에 묻었다고 안심하지 말라. 관 뚜껑을 열고 나오는 과거는 더 사납다. "


  주인이 바뀐 선술집 ‘피쿼드’에서 만난 선교사 ‘타나엘’은 먼 과거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고 회고록-사실은 과거에 있었던 어떤 사건에 대한 해명서였지만-을 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줄로 쓰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글인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우연한 계기로 한중수와 타나엘은 종이에 펜으로 쓰는 글이 아닌 새로운 방식, 서로의 귀에 입으로 글을 쓰게 되었고 그렇게 둘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과거를 끄집어내게 된다. 

 심한 우울증과 대인 기피증이 있던 젊은 타나엘은 뜨겁고 열정적인 종교 집회에 참석했다가 종말론을 역설하는 설교자의 열변에 이끌려 선교사 수업을 받고 선교사로 파견되지만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게 직무 정지와 귀국 명령 통보가 온 것은 그 이유 때문이 아니라 30년 전 한때 연인이었던 한 여인의 시신이 우연히 발굴되면서였다. 그가 그 집회에 갔다가 선교사 수업을 받기 위해 멀리 떠나온 날이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날이었고 하필이면 그녀도 그날 밤 실종되었다가 수십 년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상황은 그가 그녀를 암매장하고 사라진 모양새다. 해명서를 작성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본 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함부로 했던 많은 잘못들이 떠올라 괴로워한다. 

-영화 <하트 오브 더 씨>에서

 타나엘은 캉탕축제의 마지막날 스스로 ‘파다(뽑힌 자)’가 되어 방파제에 설치된 아찔한 높이의 돛대 모양의 탑 위에서 바다로 뛰어내린다. 그것은 캉탕의 오랜 전통으로, 제비뽑기로 그해의 희생자(죄인)를 정해 바다의 신에게 바치는 인신 희생 제사 의식을 재연한 것인데 파다들 중 유일하게 타나엘만 사람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뛰어내리기 전 꼭대기에서 그는 어떤 말을 토해냈을까. 신과 양심 앞에서 정직하고 온전한 글쓰기를 완성했는지 한중수는 궁금했지만 알 길은 없다.  

 결과적으로 볼 때 한중수의 머릿속 사이렌의 근원을 불러낸 것은 타나엘 덕분이다. ‘신의 낯을 피해’ 세상의 끝으로 온 두 죄인이 서로의 귀에 입으로 쓰는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숨겨왔던, 혹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자신의 죄에 직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는 입이 크고 이빨이 날카로우며 현재를 물어 파괴시킨다. 덮어두려고, 도피하려고, 애써 뒤돌아보려 하지 않았던 과거의 죄가 결국엔 우리들의 현재 삶을 제대로 물어 버린다.        

    


 "J는 보고를 재촉하지 않았지만 한중수는 매일 자기가 쓴 글을 보냈다. J는 그의 글에 특별한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J가 자기 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한중수는 의심하지 않았다. …J는 그의 말을 들어주는 다른 영역의 인격으로 존재했다. 그의 글은 일기와도 같고 기도와도 같았다. … 기도는 신을 향해 쓴 일기이다. "   


 책을 읽고 생각들을 정리하며 우선 세 남자의 삶을 풀어낼만한 책의 구절을 찾아 쓰고, 서로 얽혀 있는 한중수, 핍, 타나엘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자 했다. 물론 소설의 주인공은 한중수다. 하지만 이 세 사람과 함께 기억해야 할 인물이 더 있다. 바로 ‘J'다. 

 알 수 없는 머릿속 사이렌 소리에 고통당하고 있는 한중수, 과거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 자수성가한 그의 내면에 눌러두었던 죄의식. 그것을 더 깊이, 제대로 바라보도록 그를 세상 끝으로 보낸 이가 바로 J였다. 

 J는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이니셜로 나타나는 인물이다. 여기에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있는 듯하다. 사실 그 궁금증은 책 뒤에 붙어있는 해설에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신 Jesus’이다. 인간이 자신의 죄를 대면하고 성찰하게 하는 존재, 일기처럼 써내려가는 죄의 고백을 기도로 듣고 응답하며 구원의 길을 열어주는 존재.     

 긴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짐작도 못했던 J의 존재에 대한 반전까지. -물론 이 부분은 정확한 작가의 답이 아니라 추측이지만- 글을 읽는 내내 조금은 ‘어둡고 우울하고 서늘’했는데 마지막 남는 여운은 ‘놀랍고 흐뭇하고 따뜻’하다.    



- 김승옥, <무진기행>, 민음사 표지사진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에게 누군가가 무진의 의미를 물었다고 한다. 그때 그의 대답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무진이 있다.”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소설을 읽고 나면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캉탕’에 대해 궁금해지고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어떻게 갈 수 있을까?”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캉탕이 있다.”라고 대답하면 멋진 정답이 될 것도 같다. 



 세상의 끝, 구원의 땅 캉탕, 당신의 캉탕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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