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향나무는 눈(雪) 속이 아니라 누워서 자란다

작은 물고기-큰 연못, 큰 물고기-작은 연못 효과

by 포레스트 하이

눈향나무, 눈주목, 눈잣나무, 눈측백! 공통점이 바로 '눈'에 들어오지요. 모두 나무 이름 앞에 첫 글자로 ‘눈’을 달고 있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눈 설(雪)’을 상상하고는, “아, 눈 속에서 자라는 나무구나" 정도로 여겼습니다. 나중 ‘누워있는’, ‘누운’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초형(草形) 혹은 수형(樹形), 푸나무의 뿌리·줄기·가지·잎으로 나타내는 전체적인 모습을 말합니다. 이들 접두어는 애기(작은, 애기똥풀), 각시(조그만, 각시붓꽃), 좀(작은, 좀작살나무), 왕(큰, 왕고들빼기), 말(큰, 말나리), 선(서 있는, 선괭이밥) 등 다양합니다.

눈향나무나, 눈주목, 눈잣나무는 왜 누워서 자랄까요? 이들은 평지에서는 곧추 자라지만, 산꼭대기에 자랄 때는 누워버리고 맙니다. 설악산, 소백산, 태백산 등 한반도 중북부의 높은 산 정상 부근이 이들의 터전입니다. 원래의 유전자는 똑바로 서서 자라도록 설계되었지만, 새나 동물에 의해 높은 산꼭대기로 강제 이주당하면서 ‘뼈대 없이’ 누워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고산지대의 세찬 바람과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수십 세대를 거치면서 적응하였고, 마침내 ‘눈’이란 이름을 달게 된 것이지요.

눈잣나무.jfif 설악산 눈주목 by 나무위키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식물을 크게 키우려면 화분이 커야 합니다. 테이블 야자를 키운 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2m 정도 자랐지만, 다른 하나는 30㎝ 크기에 불과했습니다. 왜 그러냐고 동네 화원에 물어봤더니, 화분을 큰 것으로 바꾸라고 하더군요. 분갈이를 결심하고 분리했습니다. 큰 화분 쪽 테이블 야자 뿌리는 둘둘 말려 마치 화분을 뚫을 듯한 기세였고, 작은 쪽의 뿌리는 아주 허술하였습니다. 큰 화분으로 분갈이해 주었더니, 지금은 10㎝ 더 컸고, 새잎도 군데군데 자랍니다.


식물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온 힘을 쏟습니다. 숙명이지요. 화분의 크기를 키우면서 “역시 크려면 큰 물에서 놀라”는 말을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의 그릇이 크다 또는 작다 할 때와 같은 맥락이지요. <아웃 라이어>, <티핑 포인트> 등의 저서를 통해 인간 행동심리의 밑바닥 통찰을 보여줬던 말콤 글래드웰, 그는 <다윗과 골리앗>에서 연못의 크기를 비유하여 우리가 '그릇'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작은 물고기-큰 연못 효과(little-fish-big-pond effect)’입니다. 그가 제시한 사례를 볼까요.


한 여학생이 브라운 대학교와 메릴랜드 대학교를 갈등하다가, 아이비리그의 브라운 대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뛰어난 학생과 교수가 즐비한 브라운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장밋빛 미래를 낙관할 수 있다고 기뻐했지요. 하지만 대학 입학과 함께 그녀의 불행은 시작됩니다. 수재들로 둘러싸여 우수한 성적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생 시절에는 잘 나가는 이른바 큰 물고기라고 생각했지만, 큰 연못(브라운 대학)으로 간 후 너무 많은 잘난 큰 물고기들과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었습니다. 결국, 작은 물고기로 전락한 셈이지요. 그녀가 메릴랜드 대학(작은 연못)을 선택했더라면 어땠을까요? 하기 나름이겠지만, 아마 큰 물고기가 되어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고, 좋은 일자리를 얻었을지 모릅니다. 실제 하버드 대학의 90%가 열등감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작은 연못에서는 나름 잘 나갔지만, 막상 큰 연못으로 옮겨졌을 때 상대적 박탈감을 받는 것이지요.


반대로 ‘큰 물고기-작은 연못(Big-fish-little-pond effect)’도 있습니다. 큰 물고기가 작은 연못에서 대장 노릇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경제 사정으로 조금 평판이 낮은 학교에 들어갔는데, 오히려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고, 자신감도 얻어 승승장구하는 케이스를 말합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 라이어>에서 언급했던 '마태복음 효과'를 연상하게 됩니다. 여전히 일류대학 아니면 안 된다는 관념이 천착된 우리 사회풍토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현상은 직장을 선택할 때에도 적용됩니다. 저도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을 입사해 고만고만하게 살 것인가, 유망 중소기업을 선택하여 조금 쉬울지도 모를 출셋길(?)을 밟을 것이냐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능력만 있으면 대부분 대기업을 선택합니다. 대기업에서 임원 배지 달기가 군에서 별 달기만큼이나 힘들다는 점을 어느새 무시하여 버립니다. 큰 물에서 놀아야 크게 된다고 자기 최면을 걸고, 애써 자위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될 수 없다는 맹점을 간과하면서 말입니다.


무사히 직장에 들어와도 같은 상황은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출세하려면 비서팀, 인사팀, 기획팀을 반드시 거치라고 합니다. 경험적으로도 그런 측면이 분명 있습니다. 이런 조직에 몸담게 되면 보는 관점이 달라집니다. 모든 일을 늘 사장의 눈으로, 전 직원의 이해 관점에서, 다른 회사의 전략과 연계하여 깊숙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 사고와 훈련이 쌓이고 쌓이면, 부장이 되고, 임원이 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지요. 한때 – 지금도 그럴 것 같기는 하지만 – 공무원 세계에서 ‘청·비·총’이란 용어가 유행했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청·비·총(靑秘總)’은 청와대-(장관)비서실-(인사)총무과를 약칭하는 조어입니다. 사후 관리, 즉 챙겨주는 관행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시야의 폭이 크게 넓어진다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서 이동에 관한 인사를 상담할 때면 총괄, 기획, 적성이 맞다면 비서실 근무를 추천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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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와, 같은 회사에 다녀도, 담당하는 일에 따라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격차는 악어의 입처럼 벌어집니다. 떡잎 때부터 큰 나무를 보고 자라면, 나도 저렇게 키가 크고 멋진 나무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단단해지지 않겠습니까? 이런 까닭으로 일류대학만 가면 보상받을 수 있다는 기대로 재수·삼수가 자연스럽고, 중소기업을 꺼리는 현상은 어쩔 수 없이 되어 버리는 거지요. 물론 대기업-중소기업 선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연봉, 직업의 안정성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큰 인물이 되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대기만성(大器晩成)의 뜻이 꼭 옳지는 않습니다. 큰 가마가 큰 그릇을 구워낼 수 있는 법입니다. 작은 화분에 만족하고 있던 테이블 야자를 큰 화분에 옮겨 심었더니, 키와 몸집이 더 크게 자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굳이 차나 커피를 마실 때 예쁜 잔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맛과 향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투박한 국그릇에 담아 마시면 차도 커피도 숭늉이 되고 맙니다. 남귤북지(南橘北枳)란 말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남쪽의 달콤한 귤도 회수를 넘어가면 쓰디쓴 탱자가 됩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누울 수도 있고, 그릇의 크기가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그릇의 모양과 크기를 바꿀지 고민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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