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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Oct 10. 2019

'200세 시대가 온다'..'어떻게 살 것인가'도 중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는 영화가 있다. 2007년 상영작이다. 잔혹한 살인이 이어지는 상황. 은퇴를 앞둔 보안관 벨은 사건 수사에 나서지만, 어느 것 하나 해결해내지 못한 채 무력함만을 느낀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저질러지는 살인. 벨은 변해가는 사회와 인간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거꾸로 다른 사람들도 노인 보안관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이지 않는다. 영화 제목 그대로 노인들은 그저 사회의 한구석으로 밀려나고 있는 존재일 뿐이다. 늙어감에 대해 씁쓸한 뒷맛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나이 들어감이 곧 차가운 현실에 다가서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다른 현실에선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는 듯이 수명을 늘리기 위한 연구가 ‘집요하게’ 진행되고 있다. IT와 의학이 결합한 디지털 의료 혁명이 실리콘 밸리의 IT 대기업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같은 인간 수명 연장을 위한 연구와 성과, 그리고 전망을 다룬 책 ‘200세 시대가 온다’가 나왔다. 독일의 시사지 ‘슈피겔’의 실리콘밸리 편집장인 토마스 슐츠가 썼다. ‘100세 시대’란이 말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200세가 언급되는 건 허황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보란 듯이 한 장을 ‘200세 시대가 온다’에 할애하고 있다. 지금 같은 추세면 평균 수명은 120세를 훌쩍 넘길 것이라면서 수명이 더 나아가 200세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인지 목표치인지 모를 실리콘밸리의 의욕을 전한다.     


인간의 수명이 이처럼 길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는 암 등 죽음을 가져오는 치명적 질병이 유전자 분석으로 사전에 인지돼 예방되거나 발병 시에도 유전자 치료로 정복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 때문이다. 또 노화로 고장 난 장기는 인공 장기로 언제든 교체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에서 그리는 미래의 세계는 ‘암을 치료하고, 인공 기관을 배양하고, 뇌를 기계와 연결해 ’슈퍼인간‘을 만들어내고, 유전자를 조작하고, 버튼 하나를 눌러 병을 치료하는 세계’이다.     



집중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분야는 유전자 분석과 유전자 치료이다. 유전자는 DNA 염기 서열에 들어있다. 인간은 2만 1,000개에서 2만 3,000개 사이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모든 유전 정보를 합쳐 놓은 게 게놈이다. 게놈은 약 30억 개의 염기쌍으로 암호화돼 있다. 현재 게놈 전체를 분석하는 데는 반나절밖에 걸리지 않고 비용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미국의 유전자 분석 기업 23앤미는 199달러만 내면 유전자 정보를 분석해서 보내준다. 플라스틱 관에 침을 뱉어 보내기만 하면 된다. 파킨슨병이나 알츠하이머병 발병 유전자가 있는지 근육 상태는 어떤지 등 84개 정보를 알려준다.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는 암 발병률이 높다는 분석 결과를 받아들고 예방 차원에서 양쪽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 다음은 유전자 치료. 인간의 신체에 대체 유전자를 넣거나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유전자 가위로 잘라내는 방식이다. 미국의 생명공학 스타트업 스파크테라퓨틱스가 2013년에 내놓은 유전자 치료제는 실명한 사람들이 장애를 벗어날 정도로 시력을 회복하게 해주는 성과를 냈다. 유전자 치료는 이런 식으로 ‘개인맞춤 의료 시대’를 확장해 줄 것이라는 전망이다.   


  

수명을 연장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과제는 암의 정복이다. 매년 전 세계에서 1,0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가는 암은 발병원인이 매우 다양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분야이다. 더구나 일부 암치료제가 나오긴 했지만, 치료비가 일반인들에겐 입이 쩍 벌어지는 수준인 게 문제다. 2017년에 승인된 세포 기반 암치료제인 킴리아는 환자 1인당 치료비가 무려 50만 달러에 달한다. 웬만한 집 한 채 값이니 계층 간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는 비용이다.     

위험한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어머니의 자궁, 즉 배아단계에서 유전자를 조작한 ‘유전자 변형 인간’을 탄생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탁월한 능력을 갖춘 슈퍼인간을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내겠다는 당돌한 생각이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패했으면 한다.     


 

‘200세 시대가 온다’는 환자들에게 3D프린터로 제작한 대체 장기를 공급하는 바이오프린팅(Bioprinting)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현재 인공 피부는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수준에 와있다. 슐츠는 폐, 심장, 신장 등 장기를 합성해 만들어내는 것은 완숙 단계에 이르렀다고 진단한다. 늦어도 2020년대 중반이면 바이오프린터로 찍은 신체 부위를 인간의 신체에 이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다 뇌를 컴퓨터와 연결하는 시도가 성공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지금과 같은 속도로 기술이 발달할 경우,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다음 존재로 대체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연구가 한창 진행 중인 인공지능은 의료 서비스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2053년이면 완전히 자동화된 로봇 의사가 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발 하라리는 ‘초예측’에서 “임상의가 하는 일의 90%가 진단인데 2,30 년 후면 거의 모든 의사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는데 맥락이 같은 얘기이다. 의사 같은 전문직도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파괴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200세 시대가 온다’는 인간 수명의 연장에 대해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 책에서 언급된 대로 디지털 의료기술의 발달은 시간이 갈수록 인간이 사망하는 나이를 더 늦춰갈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얘기하는 대로 ‘200세’ 운운하는 것은 SF 영화 수준의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인간의 건강은 몸과 마음의 조화에 의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유전자 치료, 암 치료 등에 의해 수명이 길어지긴 하겠지만 현대사회가 주는 높은 스트레스 등 압박감이 여전하다면 심리적 요인에 의한 질병은 불가피할 것이다. 이 책에는 이런 심리적 측면, 즉 마음에 고려가 빠져 있다. 또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수명 연장은 심각한 새로운 문제들을 우리 사회에 던져줄 것으로 보인다. 먼저 인간이 생명체에 개입하는 윤리의 문제이다. 뛰어난 인간만을 탄생시키는 시대는 인류에게 축복일까 재앙일까? 유전자 조작을 하다가 ‘돌연변이’라는 큰 사고가 나면 무슨 일이 생길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미래이다. 수명 연장은 사회정의의 문제, 즉 건강과 수명의 양극화 이슈를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의학 혁명이 소수 부자의 전유물이 돼 백만장자들만 수명을 수십 년씩 연장하는 것을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사회의 통합력은 유지될 것인가? 고려대 김승섭 교수는 건강의 양극화 현상과 관련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라는 책에서 우리에게 큰 화두를 던진다.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이밖에 의료 정보의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 등도 디지털 의료기술이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장수가 됐든 ‘초장수’가 됐든 죽음을 늦춰보려는 과학의 시도가 본격화됐다. 그런데 치료기술이나 치료약의 발달에만 기대면 장수는 보장되는 것일까. 토마스 슐츠는 수명 연장을 위한 노력을 소개하면서도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의 권고를 한다. “어쩌면 장수의 비결은 기존의 혹은 유명한 치료법과 도구가 아니라, 더욱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담배를 피우지 말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라. 우리는 너무 잘 알려진 탓인지 최고의 비법을 우습게 여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오래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더 중요하다는 철학적 질문일 것이다. 단지 ‘동물적 수명’을 늘리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이 늘어난 만큼 얼마나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이에 따른 건강한 실행이 있어야 ‘더 오래 사는 삶’의 열매가 맺힐 것이다. 그래야 ‘노인을 위한 나라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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