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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Oct 09. 2019

'철학이 필요한 순간'...'효용성의 함정' 벗어나라!

한동안 경제 서적을 주로 읽었다. 어느 순간이 생각이 건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인문학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가 내가 자신에게 집중적으로 물어야 할 질문임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철학 서적을 잡았다. 덴마크에 대중 철학자로 널리 알려진 스벤 브링크만 알보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가 쓴 ‘철학이 필요한 순간’. 자신의 강의를 풀어낸 책이다. 부제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이 이 책에 담긴 내용을 잘 축약해주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니체, 키르케고르, 아렌트, 로이스트루프, 머독, 데리다, 카뮈, 몽테뉴 등 철학자 10명의 사상을 소개하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나침반을 제시해준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기준은 ‘쓸모’이다. 인간관계든 교육이든 모든 게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로 판단된다.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가 중요하다. 예컨대 교육은 ‘경쟁 국가의 병정’을 훈련해 유능한 노동력을 키우는 시간으로 간주된다. 역사, 문화 같은 인문적 가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브링크만의 말대로 우리는 ‘효용성의 함정’에 빠져있다. 효용성이란 절대 명제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도구화한다.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할 사람과 인문적 가치조차 도구로 전락한다. 대표적인 게 돈이다. 돈을 거래를 위한 도구일 뿐인데 이젠 돈이 삶을 가위 누르는 목적이 돼버렸다. 브링크만은 말한다. “누가 봐도 부족한 게 없을 만큼 부유한 사람조차 더 많은 재산을 모으기 위해 죽을 만큼 애쓴다는 건, 분명 그들이 돈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긴다는 증거입니다”



효용성과 도구화의 함정에 매몰돼 있는 세상에서 의미 있는 삶을 되찾는 방법은 무엇일까. 브링크만이 제시하는 해법은 무엇인가를 얻기 위한 도구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이나 활동을 하라는 것이다. 철학 같은 인문학과 예술이 좋은 예이다. 효용성의 관점에서는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이 정작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브링크만은 “단순히 행복을 최대한 많이 얻는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 강조한다. ‘백 년을 살아보니’에서 김형석 연세대 교수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라고 한 조언과 맥락이 같은 말이다.



브링크만이 소개하는 철학자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먼저 아리스토텔레스. 그가 생각하는 의미 있고, 잘 사는 삶은 선한 행동을 하는 삶이다. 선한 행동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행복의 핵심요소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적 관조 역시 그 자체가 목적인 활동이라고 꼽았다.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아리스토델레스의 처방이다. 다음 철학자는 칸트. 그는 “어떤 것이 목적 자체가 될 수 있게 하는 조건에는 상대적 가치인 가격이 아니라 내적 가치인 존엄함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이 갖는 존엄함의 내적 가치는 자율성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도덕법칙을 정하고 이를 지킬 수 있다는 뜻이다.



니체의 경우 약속과 죄책감을 강조한다. 니체는 약속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죄책감이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등 잘못을 저질렀음을 알려주는 게 죄책감이다. 결국, 죄책감이 우리의 도덕성을 지탱시켜주는 접착제라는 것이다. 죄책감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감정이지만 도덕성을 회복시켜 주는 ‘양심의 소리’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키르케고르는 자기를 ‘반성적 과정’으로 설명한다. 이 반성적 자아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그 결과 어떤 충동이 생겨도 사람들은 반성하는 과정을 통해 충동을 따를지 말지를 결정한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이처럼 깊이 생각하는 능력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게 아니라 신에 의해 주어졌다고 말한다.



“죽는 법은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는 법을 잊는다” 몽테뉴의 얘기다. 삶의 유한성을 아는 것은 삶을 풍요롭게 한다. 브링크만은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 반성적 관점을 갖게 해 무엇이 정말 의미 있는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 말한다. 몽테뉴는 철학은 우리가 잘 죽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존재한다고 강조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네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죽음이라는 소멸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면 오히려 실존적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다.



당장 쓸모가 있는 것에만 집중하고, 그것을 도구화하고, 쓸모없는 것을 유용하지 않다며 외면해버린 세상.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버린 세계.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행복한가. 답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철학이 필요한 세상’은 효용성과 도구화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쓸모없음’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데 행복의 길, 의미 있는 존엄한 삶의 길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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