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 연습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보 Apr 04. 2019

여백이 없는 사진과 삶은 아름답지 않다!

배경, 한자로 背景. 뒤 背에 경치 景을 합한 말이다. 뒤쪽의 경치를 말한다. 우리는 통상 앞을 중시한다. 뒤는 앞에 가려져 있는 종속변수 정도로 취급한다. 앞에는 자신이 내세우고 싶은 것이 배치된다. 뒤는 감추고 싶은 것들이 놓이는 위치이다. 앞과 뒤는 늘 이렇게 분리된다. 이분법적 사고이다.


    

사진을 하다 보면 앞과 뒤를 따로 보는 습관이 깨진다. 상당히 아름다운 피사체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뒤에 무엇이 있든 그 피사체만 찍으면 멋진 사진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뒤에 트럭 한 대가 있다면 그 사진이 아름답겠는가. 피사체를 살리는 것은 배경, 즉 뒤의 경치를 잘 선택하는 데 있다. 배경이 좋아야 피사체가 산다. 뒤가 괜찮아야 앞도 괜찮아지는 것이다. 앞과 뒤가 분리돼 있지 않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사진이 더 그럴듯하게 나올 수도 있고, 사진작가가 의도하는 의미 부여도 가능해진다.     



출사를 나가면 첫 번째 하는 일은 물론 마음에 드는 피사체를 찾는 일이다. 사람, 나무, 꽃 등이다. 그다음에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 피사체를 쪼그려 앉아 보면서 배경을 하늘로 잡아보기도 하고, 작은 피사체인 경우는 위에서 프레임을 그려보기도 한다. 피사체 주변을 맴돌면서 어느 위치에서 봤을 때 배경이 더 괜찮게 나오는지를 살핀다. 이 같은 탐색으로 몇 가지 촬영 포인트를 선택해서 같은 피사체에 다른 배경의 사진들을 찍어본다. 마지막으로 이 중 가장 나은 사진을 선택한다.      



배경이 피사체를 살리기 때문이다. 배경이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배경을 잘 선택하지 않으면 피사체조차 퇴색해버린다. 배경은 특히 여백의 맛을 준다. 인물사진이 아닌 한 피사체로 꽉 찬 사진은 맛이 없다. 잘 선택한 배경이 여백으로 뒤에 깔려야 피사체도 빛을 발한다. 앞과 뒤가 따로가 아니다. 한 몸으로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이고. 배경 즉 여백이 사진에 의미를 심어준다.      


막 피어나는 진달래꽃을 찍은 사진이다. 무대에 선 스타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듯 햇빛이 꽃을 비추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위치를 계속 바꾸며 배경을 고르다가 이 위치에서 정지했다. 이 배경이 진달래꽃의 개화를 가장 생생하게 살려주고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삶도 같은 것 같다. 만약 자신의 삶에 돋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피사체인 자신에 괜찮은 면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배경의 덕을 더 많이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족이 배경일 수도 있고 직장 동료, 지인, 회사, 나아가 사회가 자신을 뒷받침해주는 배경이 될 수 있다. ‘독불장군’은 사람의 의식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말이다. 우린 수많은 사람의 도움 위에서 현재의 위치에 도달했고, 앞으로 그럴 것이다. ‘배경’에 감사할 일이다.     



사진에서 배경은 여백의 미를 느끼게 해 준다. 비어있는 여백의 공간을 통해 피사체가 더 살아나고, 사진을 보는 이에게 ‘의미’가 다가간다. ‘꽉 채움’이 아니라 ‘비움’으로 인해 사진 이미지의 언어가 생겨나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채우려고 할수록 삶은 실제로는 쪼그라든다. 비운 공간, 여백을 둘 때 역설적으로 삶은 풍성해진다. 여백이 현실에 자꾸 자리는 내줄 때는 잠깐 멈추어 설 일이다. 여백을 소생시켜 삶의 생기를 되찾기 위해.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이 시를 읽으며 내 안의 '여백의 넓이'를 짚어본다. 넉넉한지 옹색한지...   



여백/ 도종환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나무들을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이다     

나뭇가지들이 살아온 길과 세세한 잔가지

하나하나의 흔들림까지 다 보여주는

넉넉한 허공 때문이다     

빽빽한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나뭇가지들끼리의 균형

가장 자연스럽게 뻗어 잇는 생명의 손가락을

일일이 쓰다듬어주고 있는 빈 하늘 때문이다.     

여백이 없는 풍경은 아름답지 않다.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     

여백을 가장 든든한 배경으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은...     


매거진의 이전글 '줌인'으로 열리는 시선...'너도 예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