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들을 지우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인위적으로 타인의 공간에 떨어뜨려져야 일상의 관성이 조금이나마 고개를 숙인다. 그 빈틈 사이에서 마음과 눈이 열려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게 다시 시선의 교정해준다.
지난해 10월에 처음으로 말레이시아 여행을 했다. 외환위기를 멋지게 극복해낸 리더, 마하티르 총리 외엔 말레이시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무지의 상태. 낯선 곳에 가려면 어설픈 지식보다 이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쭙잖은 선입견이 시선을 가릴 수 있으니까. 마음에 생채기가 있는 상태이어서인지 쿠알라룸푸르같이 건조한 콘크리트 빌딩들이 늘어선 대도시는 이국적이긴 했어도 내면을 깊게 매만져주지는 못했다. 나라 전체가 느리게 흘러간다는 느낌은 편안하게 다가왔다.
전통의 무역항 말라카에 가서야 낯섦이 주는 위안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주황색 빛깔로 충만한 작은 도시. 식민지 지배자였던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그리고 영국. 이들이 남긴 상처는 여행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세 개 나라가 스쳐 간 흔적은 빛깔로 유물처럼 남아있었다. 강폭이 좁은 말라카 강변으로 카페 거리들이 형성돼있는데 여유 있는 소곤거림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말라카의 빛깔과 밤의 한가함에 매료됐다. 꼭 다시 가서 이곳에서만 몇날 며칠을 보내고 싶은 곳이다.
작년의 추억이 말레이시아로 다시 가는 촉매가 됐다. 보르네오섬 북쪽에 있는 말레이시아 삼바 주의 코타키나발루. 보르네오섬은 북쪽은 말레이시아, 남쪽은 인도네시아이다. 코타키나발루는 사바주의 주도인데 제법 높은 키나발루산의 이름을 따 도시 이름이 지어졌다. 작은 관광도시이다. 여기 또한 도시의 빛깔은 말라카와 비슷한 주황색이었다.
이번 코타키나발루 여행은 추억의 아날로그로 시간을 역류해가는 시간이었다. 밤에 보트를 타고 맹그로브 숲으로 가 본 반딧불이 체험은 가슴에 멋진 사진으로 인화돼 있다. 어두컴컴한 숲에서 점멸하는 반딧불이의 빛. 사람이 유인하면 가까이 날아오기도 하고. 작다고 표현하기엔 너무도 작은 몸뚱이에서 나오는 아련한 불빛. 여기에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빛까지 더해져 맹그로브 숲의 야경은 한 편의 명작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문명은 우리에게서 무얼 감춘 것일까. 그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원류 앞에 노출된 시간은 지금도 눈 앞에 선하다. 코타키나발루의 밤하늘은 아름다웠다. 공기가 맑은 지역이어서 그런지 밤하늘에 펼쳐지는 별빛 잔치. 언제 출발해 지구에 닿았는지도 모를 수많은 줄기의 별빛. 깜박이는 별빛은 어린 시절로부터 오는 눈인사 같았다. 여기에 무지갯빛 달무리까지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별빛과 달무리, 반딧불이 체험을 한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은 우리에게 충분한 기쁨을 선사했다.
코타키나발루는 적도 지역이어서 일몰 때 지는 해가 유독 크게 보였다. 해가 수평선과 거리를 좁히면서 한국에선 흔히 보기 어려운 오메가도 쉽게 카메라 렌즈에 잡혔다. 머무는 사흘 동안 해넘이를 카메라에 계속 담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코타키나발루 하면 코발트 빛 해변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가보니 제주도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숙소에 머물거나 숙소 주변에 나가 바라보는 바다가 더 좋았다. 더 많이 보기 위해 분주하게 다니는 건 여행을 스스로 망치는 일이다. 한 곳에서 그저 바다만 바라보는 여유로움, 그게 여행이 주는 맛과 멋 아니겠는가. 바다, 섬, 하늘, 구름, 해, 별...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가슴 속 먼지가 비워지고 속살은 말랑말랑 해지는 시간이었다. 여행은 역시 분주함이 눈을 가린 안대를 풀어 제치는 시간이다.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개안의 시간이다.
여행을 다녀오면 한동안은 새롭고, 가볍다. 이 선한 기운이 옅어질 때쯤이면 다시 ‘여행 본능’이 발동할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