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를 처음 타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서울에 있는 외삼촌 댁을 방문하기 위해 어머님과 함께 기차 여행을 했다. 한강 철교를 지나면서 창밖에 비친 서울 모습에 신기해하던 동심의 시절이 눈에 선하다. 나에게 철길을 그렇게 시작됐다. 모든 기억은 처음에 집중되나 보다. 그 이후에도 숱하게 기차를 탔을 텐데 가슴에 새겨진 게 별로 없는 걸 보면.
오랜 기간 나의 삶에서 빠져 있던 철길이 다시 나타났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경춘선 숲길. 서울과 남양주의 경계에 있는 담터 마을에서부터 노원구 월계동의 경춘철교까지 이어져있다. 개발의 유혹을 뿌리치고 원형을 살려 휴식 공간으로 가꾼 정성이 돋보이는 공간이다.
가까운 곳에 경춘선의 마지막 서울 간이역이었던 화랑대역이 있다. 경춘선은 생긴 사연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강원도청을 철도가 이미 설치돼있던 철원으로 옮기려 했다. 이에 반발한 춘천의 부자들이 사재를 털어 서울에서 춘천을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했다. 강원도청을 지키기 위한 한 판 승부수였고 그게 먹혔다. 화랑대역은 처음 생긴 1939년에는 이름이 '태릉역'이었다. 가까이에 있는 태릉의 이름을 역 이름으로 붙인 것이다. 이름이 화랑대역으로 바뀐 것은 1958년. 육사가 이곳으로 옮겨온 게 계기가 됐다.
경춘선 숲길은 철로와 부식된 침목만이 있는 빈터가 아니다. 시간의 털갈이가 시작되면 각기 다른 계절의 빛깔로 채색된다. 봄이면 개나리 빛이 완연하고, 가을엔 단풍이 가득한 풍경이 가슴을 충만하게 해 준다. 겨울엔 눈 덮인 철로의 설경은 역설적으로 따뜻하다.
숲길 주변으로는 매일처럼 일상의 삶이 오간다. 주택가를 지나가는 철로 위론 출퇴근하는 사람들, 오손도손 말 건네며 산책하는 가족, 몸 간수를 하느라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오간다. 벤치엔 동네 주민들이 나와 이런저런 일상을 나눈다. 건조한 아파트 숲에서 볼 수 없는 '어릴 적 동네' 모습이다. 철길을 그대로 두고 숲으로 재생한 것이 마을을 되살린 것이다.
1939년 생긴 이래 이 철길 위론 얼마나 많은 삶이 스쳐갔을까. 지금 더 이상 열차가 달리지 않는 철길. 걸으면 걸을수록 생각의 시침은 과거를 향해간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래가 엷어지고 과거가 두터워지다 어느 날 우리 삶이 온전히 과거로 가득 차게 될 때 그때 우리도 '과거'가 되는 것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