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사람마다 목적이 다르다. 제한된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경치를 둘러보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게 일반적인 여행일지 모른다. 나의 경우는 생각이 다르다. 여기저기 바쁘게 이동하며 다니는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아름다운 곳을 많이 보는 게 목표가 아니다. 경관이 괜찮은 곳을 잡아 숙소에 머물며 느림을 즐기고, 현지 거리에 나가 그곳의 일상을 살피는 일이 재미있다. 물론 꼭 가봐야 할 곳은 무리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다녀온다. 여행지에서 보폭을 줄이는 것은 내 목적이 走馬看山 격으로 많은 관광지를 점찍고 오는 데 아니라 낯섦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가슴을 비우고 새 것으로 채우는 데 있기 때문이다.
홍콩과 마카오. 페리로 한 시간이면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하지만 두 도시는 역사적 배경은 물론 분위기도 판이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홍콩은 영국의 관할 아래 있다가 1997년 7월 1일 중국에 반환됐다. 중국의 특별행정구이다. 마카오는 포르투갈 지배 아래 있다가 1999년 12월 20일에 역시 중국에 반환됐다. 원래 중국 땅이 다른 나라 수중에 가있다가 중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페리로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여서 어느 도시를 먼저 가든 다른 도시를 둘러보는 게 어렵지 않다. 두 도시 중 한 군데를 가야 한다면 나 같으면 마카오를 선택한다. 두 도시를 동시에 방문하려면 마카오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홍콩은 하루 정도 다녀오는 게 좋다. 이는 내 여행 목적에 부합되는 일정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내가 마카오에 더 방점을 두는 이유는 시내에 나가면 포르투갈이 남긴 유럽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데다가 ‘느림의 여유’가 있어서이다. 시내에 있는 관광지들은 그렇게 현대적이지 않다. 역사의 내음을 맡을 수 있는 흔적들이 여기저기에 있다. 덜 개발된 듯한 모습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마카오가 물가도 싸다.
특히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각 호텔이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해 어디든 다닐 수 있다. 별도의 교통비가 들지 않는다. 홍콩으로 갈 때도 셔틀을 타고 페리 터미널로 갈 수 있다. 마카오에서 관광지를 추천한다면 시내 유적지들을 둘러본 다음 마카오 타워를 들려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바닷가에 있어 타워 위에 올라가 보는 경관이 좋다. 마카오에 머물 때 인상적이었던 점 중 하나는 사람들이 순수하고 친절했다는 점이다. 길을 물어보면 같이 따라 나와 같이 가면서 일러줄 정도였다.
홍콩은 말 그대로 현대화된 도시다. 고층건물이 즐비한 마천루가 상징이다. 복잡하다. 사람들도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대도시에 사는 도시인들이다. 그래도 홍콩에 가면 대표적 관광지인 ‘피크’에 올라가 고층빌딩의 야경을 감상하는 건 기본 코스이다.
피크에서 내려온 후 배를 타고 본 야경도 괜찮았다.
홍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정은 바닷가에 있는 인터콘티넨털 호텔에 들려 ‘애프터 눈 티’를 먹어본 경험이다. 간식인데 양을 보면 주식 수준이었다. 경험 삼아 먹어봤는데 바다를 보며 차 한 잔과 함께 음식을 여유롭게 먹었던 경험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실내 연주도 좋았다.
홍콩에서는 외곽에 있는 호텔에 머물렀다. 현지인들처럼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며 현지 식당에도 들려보는 등 홍콩의 일상을 엿보는 일은 흥미로왔다.
홍콩에 간 김에 중국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어 심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심천의 도심과 중국인들의 일상을 보고 싶었는데 정해진 관광코스는 ‘심천 민속촌(소인국)’이어서 아쉬웠다. 중국에 사는 소수 민족의 주택과 삶을 미니어처로 구현했는데 볼만은 했다. 밤이 되자 규모가 큰 중국 민속 공연이 펼쳐졌다.
다시 본론으로. 홍콩과 마카오, 두 도시 중 마카오 여행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여행과 출장 등으로 세 번 가봤기 때문에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더 갈 일은 없을 듯하다. 그건 홍콩도 마찬가지이지만. 지금까지 가본 동남아 지역 중에서 ‘쉼이 있는 느림의 여행지’로 추천하고 싶은 곳은 말레이시아 말라카, 마카오, 베트남 랑코이다. 여행 목적이 다르신 분들은 참고만 하시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