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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Apr 04. 2019

<금융의 모험> 인문학의 렌즈로 본 금융과 삶의 지혜

금융 하면 딱딱한 내용을 떠올리기에 십상이다. 하버드 경영 대학원 교수인 미히르 데사이가 쓴 ‘금융의 모험’은 이런 예상을 깨뜨린, 모처럼 만나는 수작이다. 그는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의 렌즈로 금융을 들여다본다. 금융과 인문학 사이에 다리를 놓아 금융을 인간화하는 게 이 책의 주제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금융을 쉽게 풀어가며 삶에 적용하는 그의 통찰력은 탁월하다.



먼저 금융에서 자주 언급되는 ‘주인과 대리인’ 관계. 대리인인 기업 경영자가 주인인 주주들의 이익을 제대로 대변하도록 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주제이다. 미히르 데사이는 이 논의를 절묘하게 삶에 적용해 의미 있는 도전을 우리에게 해온다. 그는 ‘외적 당위’(should)와 ‘내적 명령’(must)를 이렇게 대비한다. “‘외적 당위’는 우리 자신을 세상에 내보일 때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우리의 모습이다.”“내적 명령은 다른 사람의 이상에 따르기를 멈추고 우리 자신의 이상을 찾아갈 때 생기는 것이다.” 사회적 기대의 대리인으로 살기를 멈추고 나 자신의 주인으로 살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파산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실패’에 대해 생산적인 해석을 한다. 그는 실패한 뒤에 성급한 행동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도움을 요청해서 앞날을 내다보는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실패를 자책할 일로 여기지 말고, 다시 태어날 기회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그렇기에 파산은 죽음의 신호가 아니라 회생의 기회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패에 대해 낙인을 찍는 조직은 실제로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금융이 불러일으킨 탐욕 등 문제에 대해선 그는 금융을 변호한다. “나쁜 것은 금융이 아니다. 나쁜 것은 금융이 끌어들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이기적 자아와 야망에 기름을 붓는 금융의 힘이 유별나게 강력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합병을 결혼으로 비유한다. AOL과 타임 워너의 합병이 실패한 데 대해 중요한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실사가 중요한데 타임 워너가 한 번도 제대로 실사를 하지 않았다. 타임 워너는 나중에야 AOL의 회계 장부가 상당히 큰 폭으로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음으로 자기 조직의 빈틈을 메우는 것은 합병의 전략이 못 되며, 시간에 쫓기며 서두르는 것은 나쁜 의사 결정을 초래한다고 말한다. 특히 합병 때 얘기되는 시너지는 과장되기 마련이며, 통합비용은 언제나 과소평가된다는 중요한 언급을 한다. 궁극적으로 합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와 현장업무, 실행임을 강조한다.



금융계에서 얘기되는 ‘능력주의’에 대한 그의 의견은 상당히 비판적이다. 유가증권 운용에서 초과수익인 알파가 나왔을 때 통상 그것을 ‘실력’으로 보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그 실적이 실력과 아무 상관이 없을 수 있으며 운 덕분일 수도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에서 운과 실력을 분간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이다.



‘금융의 모험’은 사실 번역된 제목이다. 원서의 제목은 ‘The Wisdom of Finance’, 즉 ‘금융의 지혜‘이다. 책의 내용으로 볼 때 ’ 금융의 지혜‘가 더 적절해 보인다. 인문학의 틀로 금융을 뒤집어 보며 삶에 적용될 수 있는 지혜를 이 책이 주고 있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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