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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May 20. 2019

"삶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

'나는 걷는다'(베르나르 올리비에 저)

요즘은 거의 매일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걷는다. 집 주변에 경춘선 숲길이 있어서 자주 찾는다. 철길을 따라 걷는 것은 삶의 큰 청량제이다. 무엇보다 추억의 아날로그 세계로 가까이 다가선다. 어릴 적 동무들과 철길에서 놀던 일, 못을 납작하게 만들기 위해 철로 위에 못을 올려놓고 열차가 지나가면 못을 주우려 후다닥 올라갔던 일, 철길 위에 올라가 균형을 잡으며 누가 더 멀리 걷는가를 겨뤄봤던 일…. 빛바랜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걷는 데 흠뻑 빠져있다. 혼자 걸을 땐 온전히 자신과 직면할 수 있어서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며 새로운 활력을 찾을 수 있어서이다. 새소리, 바람이 나뭇잎을 툭 건드는 소리, 발자국 소리에 청각이 열리고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에 시선이 풍요로워진다. 아내랑 같이 걷는 경우도 자주 있다. 한두 시간을 오순도순 얘기하며 걷는 일은 즐겁다. 어려운 일, 즐거운 일을 나누다 보면 인생길을 동행하는 ‘동지의식’이 더욱 단단해진다. 앞으로도 기회만 생기면 계속 걸을 생각이다. 생각의 근육과 몸의 근육을 동시에 튼튼하게 해주는 걷기는 참 행복한 일이다.    

 

걷기에 재미가 붙으면서 전에 읽다가 중간에 놓았던 책, ‘나는 걷는다’ 1권을 읽었다. 은퇴한 기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중국의 시안까지 1만 2000㎞에 이르는 ‘실크로드의 길’을 걸은 후 저술한 책이다. 1권은 터키에서 이란 국경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2권은 이란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까지를, 3권은 중국의 시안에 도착하기까지를 담고 있다. 틈나는 대로 2권과 3권도 읽을 생각이다.     



올리비에는 무모해 보이는 이런 여행에 왜 나섰을까. 그가 걷는 구간에는 군사적 충돌 지역도 포함돼 있어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다. 혼자 걷는 그 길에서 도둑을 만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스스로도 위험을 느낀다. “내가 돌아온다는 보장은 어디 있는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이번 모험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걷는다. 잠시 지나가던 차를 타고 이동한 경우에는 다시 차를 타고 승차지점으로 돌아와 걷기 시작한다. 고집스럽게 걷기를 집착하는 그가 잘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그는 이란 국경에 가까이 갔으나 병을 얻어 프랑스로 후송된다.     

올리비에는 실크로드를 왜 걷고자 했을까. 걷는 것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렇다.



“걷는 것에는 꿈이 담겨 있다.”

“도보여행의 모든 결과는 정직하다. 몸 전체를 던지는 일이다…. 혼자 걷는 이상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다”

“걷는다는 것은 자유며 교류다”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걷는 데 몰입한 그의 신념은 이 두 문장으로 잘 표현된다.

“삶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

“진정한 느림을 포기를 포함한다.”     



그는 도보여행 도중 군인들에게 시달리기도 하고, 도둑을 만나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훨씬 많은 순박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 사람들이 올리비에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 은인들이다. 낯선 여행객에게 선뜻 잠자리를 제공해 준 사람들, 음식을 흔쾌하게 나눠준 사람들….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지역에서 사는 친절한 사람들의 선의가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올리비에는 말한다. 



“지금까지 터키에서만큼 타인에게 자신의 집을 개방하면서 그토록 따뜻하고 넓은 마음을 보여준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 이곳에서 나는 언제나 손님을 맞는 사람의 자부심이 나머지 주민들과 공유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걷기에 재미가 붙던 차에 ‘그래도 걷는다’를 읽으니 더욱 걷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기회 닿는 대로 열심히 걸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걸으면서 믿음에 대해 묵상하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아내와 우정을 다지고…. 앞으로 걷는 것일 줄 더 큰 유익이 기대된다. 올리비에의 말대로 삶은 뒤가 아니라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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