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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Jun 06. 2019

사막에서 길을 찾네...김소엽 시집

'사막에서 별을 노래하다'(김운용 저)에는 많은 시가 인용돼있다. 과문한 나는 이 책을 통해 김소엽이란 시인을 처음 알게 됐다. 김소엽 시인 시집을 읽어야지 하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최근에야 '사막에서 길을 찾네'란 시집을 구입했다. 시의 결이 마음에 깊게 심어지는 걸 느끼며 김소엽 시인이 삶의 고난 속에서 두레박으로 건져올린 귀한 시의 열매들을 맛보았다. 감동의 시간이었다. 



어느 시집이든 시집의 제목에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이 축약돼있다. '사막에서 길을 찾네'. 사막은 실재 존재하는 구체적 모래밭이기도 하지만 시인이 걸어온 고난의 삶을 상징한다. 먼저 떠난 남편과 언니, 그리고 암투병 등. 김소엽은 시인은 그 사막의 길에서 하나님을 보고, 삶을 보는 시야가 열리고, 정금같은 깨달음을 건져 올린다.



사막에서 9


사막에 와서

나는 모든 애증을 풀어 회개한다

뒤돌아보면 회개할 일뿐이었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이 그

때에는 한 치도 들지 않았다 나는 사막에 와서 나의 잘못을

모래알처럼 낱낱이 짚어보았다 바위가 모래가 될 만큼 산화

될 시간이 필요했던 게야 시간은 나의 거울이다 조그만 잘

못까지도 낱낱이 비추는 내 살 속 거울이다 거울은 내 실핏

줄 속까지도 다 비추며 말했다 반짝이며 말했다



나는 저 우주의 거대한 생성과 소멸의 몇 억 광년 광대무

변 세월 속에서 풍화된 사랑과 우주 만물의 법칙과 진리의

엄청난 이치를 보면서 너와 나의 남루와 허물과 한때 불타

던 사랑과 증오와 원망까지도 은하에 풀어 헤우고 마알간

새악시 마음으로 어루만지는 불연지 같은 사랑이나 미움까

지도 한낱 한 움쿰의 바람만큼도 안 되는 그 연유로 무얼 그

리 오랜 가슴앓이란 말이냐. 사막에 와서 보아라 저 우주의

신비한 볓빛과 수수천억 광년 시간을 셀 수도 없는 그 영원

사이에 너와 내가 별 한 번 반짝할 사이 태어났다가 사라지

는 것을.



'사막에서 15'에서 김 시인은 말한다



몇억 광년 걸려서 나에게 빛으로 보여지는

저 별들은 어쩌면 지금은 저곳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나는 지금 허상을 보면서

눈에 보이는 것을 함부로 믿고 있는지 모른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걸 함부로 믿고 있지만

기실 지금 보이는 저 별이

지금은 죽고 없을지도 모르는데



'서울역을 떠나며'에서 시인은 주는 깨달음은

큰 공명을 주었다.



길은 그냥 저절로 나는 것이 아니다

수없는 실패와 눈물의 반복으로

길이 닦이는 것이라는 걸

나는 기차 안에서 배웠다



좋은 시들이 많아 일일이 여기에 다 옮길 수는 없다.

시 현 편을 더 소개한다.



산에 오르며 어머님 생각에



내 유년의 뒷산에는

언제나 푸른 숲 우거져

내 아련한 꿈조차 뒤덮고 있었네



칡넝쿨 휘휘 감긴

밤나무 등걸에 그네를 매달고

세상일은 그대 반경 안에 있는 줄 알았네



뒷산에 오르며

나는 내 생애에 놓인 산을

끝없이 오르고 또 오르는 일이

인생이란 것을 알지 못했네



계곡물에 깍이고 깍여서 둥글넓적하게 된

그 바위에서 놀면서도

내 삶이 그렇게 깍여야 됨을

나는 알지 못했네



내 여린 살이 풍랑에 깍이고

바위처럼 단단해질 무렵

나는 느닷없이 불러만 보아도

목이 메이는 어머니

한 여인의 생애를 생각했네



어머니 빛 고운 얼굴에

칡넝쿨이 감기고

조선의 여자가 겪어야 할 일들이

발을 굴러 아무리 그네를 밀어보아도

넝쿨 줄기에 감겨 더는 나가지 않아

한 많은 생애를 그네에 매달았던

어머니 어머니 나의 어머니......



이 시집의 서문은 김소엽 시인의 스승인 이어령 선생님께서 쓰셨다. 

이 선생님은 말씀하신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고통의 용광로를 통과하지 않고는

사람은 성숙할 수 없다.



시집 뒷부분에 실린 해설은 이근배 시인이 썼다. 읽으며 밑줄을

그은 구절을 소개한다.



생텍쥐페리는 "사막은 왜 아름다운가, 어디엔가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인은 남모르는 고뇌에 괴로워하면서 그 탄식과 비명이

아름다운 음악으로 바뀌게 하는 입술을 가진 불행한 인간이

다"라는 키에르케고르의 말은 어느 시인에게나 적용되는 말

이지만 김소엽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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