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 BTS가 3주 전 Late Show에 출연한 영상을 봤다. 진행자인 스티븐 콜베어는 BTS를 이렇게 소개했다. “비틀스 이후 처음으로 일 년 이내에 앨범 세 개가 1위를 차지했다” 콜베어는 BTS를 ‘국제적 음악 현상’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정말 대단한 성과이다. 무대가 아닌 방송에서 보는 BTS는 유쾌함 그 자체였다. 음악이 나오면 7명 모두 춤을 추고, 콜베어의 질문에 재치 있는 답변을 했다. 에너지가 넘치고 행복을 전파하는 즐거운 젊은이들!
1년 사이에 앨범 세 개가 1위에 오른 기록.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린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유튜브 매니저인 케빈 알로카가 쓴 ‘유튜브 컬춰’에는 당시의 상황이 잘 그려져 있다. 2012년 당시 케빈 알로카는 ‘강남 스타일’을 보고 지금까지 본 비디오 중 가장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입소문이 퍼져나가고 조회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가스 케이티 페리는 트위터에 “도와주세요, ‘강남 스타일’에 완전 중독됐어요”라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2012년 12월, ‘강남 스타일’은 조회 수 10억 뷰를 돌파한 최초의 비디오가 됐다. 싸이는 마침내 미국 유명 음반회사와 계약을 맺게 된다. 싸이는 당초 이 비디오를 한국 시장을 겨냥해 만든 것이었다. 그는 월 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그저 날씨가 너무 덥고 경기도 안 좋아서 뭔가 재미있고 신나는 노래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라고 돌아봤다. 하지만 싸이의 세계적인 인기는 ‘강남스타일’에서 그친 면이 있다. BTS가 놀라운 것은 인기를 이어가면서 ‘아이돌’, ‘Fake Love’, ‘Boy with Luv’ 등 많은 히트곡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데 있다.
필자는 50대 후반의 중년이다. 문득 BTS가 궁금해졌다. 아니 곡과 노래가 좋았다. 한동안 유튜브에서 BTS의 노래에 푹 빠져들었다. LA, 런던 등 월드투어 영상도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놀라웠다. 여러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한국말 가사의 노래를 들으며 열광하는 뜨거운 열정과 축제의 현장이었다. 노래 가사도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왜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BTS를 사랑하고 이들에 환호하는지 그 감정의 결을 느껴보고 싶었다.
사실 BTS의 성공 요인에 대한 분석은 수도 없이 많다. 그래도 중년의 시선에서 BTS가 세계 젊은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요인을 진단해본다. ‘기본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asic)’는 말이 있다. 내가 볼 때 노래는 무엇보다 곡이 좋아야 하고 가수는 노래를 잘해야 한다. 그게 가수의 기본 실력 아니겠는가. BTS의 노래는 이런 면에서 아주 훌륭하다. 독특한 음색에 노래 실력이 뛰어나고 7명이 만들어 내는 화음이 최상급이다. 해외 음악 전문가들이 투입된 덕분에 곡도 한국적이면서도 해외 팬들에 먹혀들 수 있는 외국 현지 음악의 결이 잘 녹아들어 있는 듯했다. 7명이 호흡을 맞추는 ‘군무’도 BTS의 매력 포인트이다. 빠른 템포의 몸동작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펼쳐지는 춤의 향연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가사 또한 지금 해외 젊은이들이 쓰는 영어를 적절히 섞어 한국어 가사가 갖는 ‘소통의 장애’를 넘어서려 한 노력이 엿보인다. 몇 곡 가사를 보니 젊은이들의 눈높이로 내려와 그들의 아픔과 사랑을 담아내고 있다. 예컨대 ‘idol’에서 그들은 말한다. “손가락질해,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네 나를 욕하는 너의 그 이유가 뭐든 간에” 나는 나이니 너는 너나 잘하라는 항변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감과 정체성이 공감을 확산시킨 포인트인 듯하다.
이렇게 분석 아닌 분석을 해놓고 봐도 무언가 부족하다. 그래서 실제 팬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유튜브에서 BTS의 팬 그룹으로 유명한 ‘아미’의 소리를 들어보았다. 스무 명 남짓이 왜 자신들이 BTS에 열광하는지를 말했다. 영국, 미국, 라트비아,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 BTS의 폭발적 인기의 핵심적인 답은 그들의 심장에 있었다. 한결같이 나오는 얘기는 이거다. “BTS를 가족처럼 느낀다”“그들의 노래는 진실되다. 현실 세계의 사람처럼 느껴진다”“그들은 마음이 따뜻하다” BTS 팬들이 갖는 이런 친근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미 한 명의 이 인터뷰가 그 실마리를 풀게 해 주었다. “그들은 팬들과 같은 위치에서 친구 같은 느낌을 준다. 다른 아이돌과 다르다. 겸손하다. 다른 아이돌들은 유명해지면 이기적으로 변한다. ‘내가 최고라는 식으로’” 팬들의 눈높이로 내려와 겸손하게 소통하는 BTS의 모습이 세계 젊은이들의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BTS 노래가 정말 힘이 된다”“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모든 사람에게 영감을 준다”“사람들은 행복하게 해 준다”“삶을 스트레스받지 않게 해 준다”“삶의 구조자(Life saver)이다”“BTS를 알게 된 후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그들은 격려한다”
BTS는 SNS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요한 점은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단순히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BTS가 팬들에 다가서는 겸손한 모습으로 인해 팬들은 7명의 구성원 한 명 한 명을 친구로, 가족처럼 느끼고 있다. 특히 이들의 노래 가사가, 또 이들이 하는 말이 팬들의 등을 두드려주고 살아갈 힘을 주고 있다. 아미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BTS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Love Yourself’이다. 삶의 무게에 눌린 세계의 젊은이들은 “자신을 사랑하라”는 BTS의 호소에 다시 힘을 얻고 것이다. 단순히 BTS의 노래와 공연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은 BTS를 가슴에 담고 있는 것처럼 내 눈엔 비쳤다.
나 스스로도 BTS에 몰입하면서 최근 나온 ‘90년 생이 온다’라는 책이 떠올랐다. 이 책은 90년생들이 단순함과 재미를 추구하고 공정함을 요구하는 특징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단순한 메시지를 전하고 재미를 주는 BTS, 딱 이 모습이 아닐까.
BTS의 노래, 곡, 춤 등 음악적 에너지는 세계 정상급이다. BTS가 역사적인 성공을 이룬 가운데에서도 계속 팬들에게 다가서는 낮은 자세를 유지하고,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며 그들을 다독여주고 격려하는 따뜻한 메시지로 계속 소통해나갔으면 한다. ‘아미’는 그저 가수를 좋아하는 팬들이 아니라 BTS로부터 힘과 영감을 얻는 ‘문화 현상의 주역’이다. BTS가 그런 점을 잊지 않는다면 가수로서, 아니 세계 젊은이들과 함께 동행하는 친구로서 롱런할 것으로 보고, 그런 기대를 키워본다. BTS에 흠뻑 빠져본 시간, 행복했다. 앞으로도 그들의 성장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