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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Jul 02. 2019

일본 수출규제, 치졸한 보복..경제 극일 계기돼야


일본이 기습적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 규제를 발표했다. 오사카 G20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와 TV, 스마트폰 제조에 필수적인 핵심 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를 4일부터 실시하고, 첨단 기술 등의 한국 이전도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지난해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신일본제철이 일제 강점 당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 원씩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한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이다. 일본이 앞으로 수출 절차만을 까다롭게 할지 아니면 수출 금지라는 극단적 조치를 취할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해당 소재를 사용하는 국내 기업들의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 조치는 입법, 사법, 행정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민주주의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한국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불만을 무역 보복으로 치졸하게 대응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역 보복은 통상 상대국에 대한 무역적자 축소, 패권 경쟁, 영토 분쟁 등의 이유로 취해지는 예는 있으나 과거사 정리를 위한 한 나라의 사법부 판결을 놓고 경제적 보복 조처를 하는 것은 지극히 비민주적이고 몰역사적인 행위이다.



특히 일본은 그동안 자유 무역을 지지하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천명해왔으나 이번 조치는 이에 정면으로 배치되고 있다. 닛케이는 이와 관련, “일본이 국제 무역을 남용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면서 “일본이 특정 국가에 대해 수출 규제를 가하는 것은 자유 무역을 지지해온 일본의 입장에 역행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 공동 성명은 ‘자유롭고, 공정하며, 비차별적이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며 안정적인 무역과 투자 환경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국내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대응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만성적인 대일 무역역조와 기계와 부품, 소재 등의 대일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줄여나가기 위해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이는 발상과 정책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일본과 교역을 시작한 이래 우리나라는 한 번도 무역 흑자를 내본 적이 없다. 만성적으로 역조를 감수해왔다. 지난 1965년부터 지난 5월까지 우리나라의 대일 수출은 7,250억 달러인 반면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은 1조 3,380억 달러에 달해 누적 무역적자가 6,13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과 중국 등 다른 나라에서 벌어 일본에 주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그동안 대규모 무역 흑자를 향유해온 일본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수출 규제 조치에 들어가겠다고 한 것은 경제 논리로도 전혀 설득력이 없는 아전인수적 조치이다. 우리가 그동안 막대한 대일 역조 문제에 대해 문제를 느낀다는 말만 하고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 노력을 소홀히 해온 점을 반성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막대한 규모의 대일 역조 문제와 기계 장비, 소재 부품, 화학제품 등에 있어서의 일본 의존도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 극일’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 본격화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무역역조를 해소할 수 있는 유망기술에 단기 집중 투자하는 등의 전략을 통해 일본으로부터의 ‘경제적 독립도’를 높이는 데 전력을 기울이는 게 매우 긴요하다. 반도체 장비나 소재의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장비나 소재 업체에 대한 연구개발비 지원이나 세금 감면 등 지원 방안도 모색돼야 한다.



국내외 보도를 종합해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의 내용과 영향 등에 대해 주제별로 정리해본다.



<수출 규제 조치의 내용>



1) 반도체와 스마트폰 생산에 쓰이는 화학물질의 한국 수출에 대한 규제 강화


7월 4일 발효된다. 현재는 수출 간소화 절차에 따라 한꺼번에 수출허가를 받은 다음 자유롭게 수출을 해왔으나, 앞으로는 건별로 대한국 수출을 할 때마다 일본 기업들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90일이 걸리는 과정이어서 수출 자체가 지연되는 게 불가피하고,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사실상 수출 금지 조치가 시행되게 된다. 일본이 상황에 따라 규제의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 대상 품목


투명 폴리이미드: TV와 스마트폰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의 액정 소자를 고정하는 일종의 투명 필름. 현재 일본이 전 세계 수요의 90% 이상을 공급한다. 국내에서는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생산한다. 삼성전자 갤럭시 폴드의 올레드 디스플레이에도 스미토모의 폴리이미드가 100% 사용됐다. 우리나라의 대일 의존도는 93.7%(2019년 1~5월)



포토 리지스트: 웨이퍼에 빛을 쪼여 회로의 모양을 사진처럼 앉히는 노광 공정이 있는데 이때 빛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웨이퍼에 바르는 액체. 일본이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댄다. 우리 역시 지난해 전체 수입분의 91.9%를 일본에서 들여왔다.(2019년 1~5월)



불화수소 에칭 가스: 웨이퍼를 세척하거나 회로를 새기는 데 이용. 지난 1~5월 중 수입량의 43.9%가 일본산이었으며, 중국산(46.3%), 대만산(9.7%)도 쓰고 있다.



2) 국가안보와 관련된 기술 이전 시 안전보장 상 우호국에 대해 수출허가 신청 면제 등 규제를 최소화하는 외환관리법 상 우대제도인 ‘백색 국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방안을 놓고 여론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열겠다는 계획. 공청회는 통과의례인 것으로 보여 군사적으로 이용 가능한 첨단 기술과 전자 제품의 대한 수출 시 일본 정부의 승인이 의무화될 전망이다. 현재 일본은 현재 한국과 미국, 영국 등 27개국에 이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영향>



일본의 이번 조치에는 한국의 가장 핵심 산업인 반도체의 핵심 소재를 겨냥해 압박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한국 수출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반도체를 흔들겠다는 것이다. 현재 이들 소재를 수입하는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은 두세 달치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수출 규제가 길어질 경우 생산 차질이 불가피해질 것이고, 가뜩이나 부진한 수출에도 악영향이 우려된다. 품목별로 보면 불화수소 에칭 가스는 일본 의존도가 43.9% 정도여서 중국이나 대만으로부터 수입을 늘리는 대안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투명 폴리이미드와 포토 리지스트는 일본 의존도가 90%가 넘어 단기간에 대체 공급선을 찾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 추진 등 대체 공급선을 찾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지난 2010년 센카구 열도 문제로 중국과 일본 간의 긴장이 고조됐을 때 중국은 일본에 대해 희토류 수출을 중단했다. 당시 일본은 아프리카에 정부 및 민간 투자를 확대해 대체 공급원을 확보했다.



앞으로 주시해야 할 대목은 일본이 정말 수출 규제 조치를 본격적으로 시행할 수 있겠냐 하는 점. 우리나라는 세계의 반도체 공급 기지여서 일본 기업들의 중요한 수출 시장이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의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길 경우 한국 수출이 전체 매출의 10~20% 선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일본 기업들도 피해가 불가피하다. 또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에서 반도체를 공급받아온 일본 기업은 물론 애플, HP 등 글로벌 기업들도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글로벌 공급체인이 흔들리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현재 반도체 시장이 공급 과잉 상태인데 일본의 수출 규제조치는 오히려 한국 반도체 업체들이 재고를 소진할 수 있는 기회를 줘 반도체 가격의 상승을 가져오는 긍정적인 반전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증권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우리 정부의 대응>



-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세계 무역기구(WTO) 제소를 비롯해 국제법과 국내법에 따라 필요한 대응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의 조치가 부당하다는 국제 여론을 조성해나가고, 법적 대응을 해나가겠다는 것은 적절한 입장으로 보인다. 문제는 우리도 상응하는 보복조치에 나설 것인가 하는 점. 경화 외교부 장관은 6월 25일 국회 답변을 통해 일본 측이 경제 보복에 나설 경우 "우리 정부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정부 조치의 부당성을 알려 국제적 공감대를 조성하면서 침착하게 대응 수위를 조절해가는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한 때이다. 중요한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 부당하기 짝이 없는 일본의 이번 수출 규제를 ‘경제적 극일’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성적인 대규모 대일 무역적자와 장비와 부품 등의 일본 의존을 해소해 일본으로부터 명실상부한 ‘경제적 독립’을 실현하는 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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