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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보 Feb 14. 2019

간단, 정직, 재미를 추구하는 '90년생' 르포

어떤 때는 한 줄의 문장이나 한 권의 책이 생각을 바꿔준다. ‘90년생이 온다’는 책이 그런 경우이다. 주변에서 이 책에 관한 얘기가 자주 나와 사보았다. 신세대라 불리는 90년생에 대한 현장 르포를 읽는 듯했다. 그들이 무엇을 선호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간접 체험을 하게 됐다.



이 책을 읽고 크게 생각이 바뀌게 된 한 가지. 그동안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들은 그들이 안정된 직업을 추구한다는 얘기를 듣고 ‘나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한다. 기성세대인 ‘7080’은 고속 성장의 시대에서 살았다. 기회는 여기저기에 열려 있었고, 그러기에 모험 정신으로 도전하면 열매를 맺을 수 있었다. ‘7080’이 원래 모험적이라서가 아니라 그 시대는 모험을 해도 위험하지 않은 시기였다. 


하지만 90년생들이 직면한 세상은 어떤가. 직업을 구하기도 어렵고, 취업한다 해도 과거처럼 일자리가 안정적이지 않다. 언제 구조조정이 진행될지 모르고, 기계는 사람의 일자리를 점점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더구나 평균 수명이 100세에 가까워지는 ‘반갑지 않은’ 100세 시대를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환경에서 90년생이 취할 수 있는 최적의 선택은 안정성이 높은 직업이다. 연공서열과 정년이 보장되는 공기업이나 공무원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은 패기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한 공무원 취업 준비생의 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월급이 많고 적음은 그다지 중요한 것 같지는 않아요. 그 월급을 언제까지 받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아닌가요?” 저자도 “변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시대’”라며 “요즘의 젊은이들은 저성장 시대에 맞는 생존 전략, 행복 전략을 본능적으로 찾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90년생들이 온다’는 90년생들의 특징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길고 복잡한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간단한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단어를 축약해서 쓰는 게 대표적 예이다. ‘아싸’(아웃사이더), ‘ㅇㄱㄹㅇ’(이거레알),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 ‘ㅇㅈ’(인정), ‘ㅁㅊㄷ ㅁㅊㅇ’(미쳤다 미쳤어) 등처럼 언어를 ‘경제적으로’ 줄여 쓰고 있다. 모바일이 일반화되면서 실시간으로 빠른 소통을 하기 위해 일어난 변화로 보이지만 기성세대엔 외국어나 다름없다. 이런 세태를 반영해 원고지 10매 안팎의 짧은 소설인 초단편 소설도 등장했다고 한다. 



90년생들의 두 번째 특징은 진지한 것보다는 재미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이들은 정직을 요구한다. 90년생들에게 학연, 지연, 혈연은 ‘적페’다. 공정함을 중시한다.



90년생들은 일은 좋아하고 즐기지만,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회사에 충성하려 하지 않는다. 기성세대는 이런 점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 또한 어찌 보면 합리적 선택인지 모른다. 충성해도 일자리가 불안한 세상이니 말이다. 이들은 또 실행보다 계획이 중시되고, 알맹이보다 형식을 중시하는 조직 문화를 싫어한다. 실용적이다.



어느 시대든 세대 간의 격차는 존재한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가 빠른 요즘은 그 격차의 폭도 훨씬 큰 것 같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불편하다.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젊은 세대에게 기성세대는 ‘꼰대’로 비친다. 기성세대의 ‘잔소리’로 젊은 세대가 바뀐 적은 없다. 그들만의 문화로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간단함을 선호하는 그들의 문화는 '단순함'을 추구한 스티브 잡스의 창조성과 맥이 닿아 있다. 기성세대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이 될 수도 있다. '재미'를 추구하는 그들의 특징은 K-POP 등 한류문화의 경쟁력을 더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안정을 우선순위로 추구하는 90년생들의 변화를 원한다면,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나약함을 지적할 것이 아니라 환경을 바꿔줘야 한다. 모험을 하면 열매가 클 수 있음을 보여줘야 하며, 설사 실패해도 재기해 다시 성공하는 게 가능한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주지도 않으면서 진취적인 도전정신만 강조하면 ‘우리 때는 이랬는데’만을 얘기하는 ‘진성 꼰대’로 그들 눈에 비칠 것이다.



다만, ‘90년생’으로 상징되는 젊은 세대도 기성세대를 ‘꼰대’로만 여기기보다 그들의 경험과 지혜에도 귀 기울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회는 젊은 세대의 신선함과 기성세대의 지혜, 이 두 바퀴로 굴러가는 게 아닐까. 또 간단한 것뿐만 아니라 길고 복잡한 것에도, 재미있는 것뿐만 아니라 지루한 일에도 의미가 있음을 알고 이 둘을 조화시키는 폭넓은 사고를 해보면 더 높은 시선으로 세상과 삶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역시 답은 소통의 노력이다. 이 책에서 제시된 ‘역멘토링’, 흥미로웠다. 멘토링이 임원이나 간부, 선배가 후배 사원을 지도하는 것인데 반해 ‘역멘토링’은 신입사원이 임원에게 진솔한 조언을 해주는 역발상이다. 기성세대는 눈높이를 낮추고, 젊은 세대는 마음을 열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시선의 거리감을 좁혀야 한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세대 간 공생’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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