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효과를 내온 국제 무역보복/마찰의 역사
상대국 수출품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 주로 관세 부과나 인상의 형태로 이뤄진다. 정치외교적 동기로 앞뒤 안가리고 상대국 상품에 대해 무역보복 조치를 취하는 것은 ‘하급 중의 하급’이다. 관세 등 경제적 수단을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데 무턱대고 상대방의 약점을 노리고 힘을 앞세우는 것은 비상식적인 치졸한 조치이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에 중국이 일본이 자국 선장을 석방하지 않는다고 희소금속인 희토류의 대일 수출을 중단한 것이나 이번에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징용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수출규제를 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국제적 분업구조 속에서 서로 필요한 상품을 주고 받는 게 교역 질서인데 자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제품을 ‘무기’로 쓰는 것은 자유무역을 훼손하는 퇴행적 처사이다.
역사적으로 적지 않은 무역보복 사례들이 있지만 상황을 악화시키고 자국에 부메랑이 된 사례들이 적지 않다. 대공황 때 관세를 크게 올린 스무트홀리법은 수출입을 모두 급감시켜 대공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독약이 됐다. 그동안 미국이 많은 교역 상대국에게 관세 부과 등 조치를 취했지만 이로 인해 미국의 무역적자가 줄어들고 미국 산업의 경쟁력이 나아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더구나 정치 외교 등 경제 외의 이슈로 이뤄지는 ‘악성 무역보복’ 조치는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국가 간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궁극적으로 보복을 취한 나라에 손실이 생기게 돼있다. 2010년에 중국이 자국 선장 석방을 이유로 일본에 대한 희토류 수출을 중단해 선장 석방이라는 결과를 얻었지만 이후 상황은 어떤가. 일본은 이 일을 계기로 아프리카 등 지역에 대한 투자를 강화해 중국에 대한 희토류 의존도를 낮췄다. WTO도 중국의 조치가 불공정하다고 판정했다. 중국은 명분도 실리도 다 잃었다. 일본은 이 때의 교훈을 잊은 것일까.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이었지만 국제 무역보복 또는 무역마찰의 역사를 정리해본다.
1930년 스무트홀리법(Smoot-Hawley Act)
1차 세계대전 후 미국 기업들은 국제적 경쟁의 격화와 과잉 생산에 따른 가격인하에 직면했다. 1929년 주가가 폭락하자 미국 기업들은 미 정부에 보호무역조치를 요구한다. 이에 따라 같은해 미국 상원금융위원회 위원장인 리드 스무트(Reed Smoot)는 관세 인상을 추진했고, 관세 인상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스무트홀리법이 미 의회를 통과했다. 허버트 후버대통령은 1930년에 이 법에 서명했다. 당초 이 법은 농산물만을 대상으로 했는데 후버 대통령이 2만개가 넘는 수입품으로 대상을 확대했다. 이들 수입품목에도 평균 관세율 20%가 적용됐다. 이에 맞서 캐나다, 이탈리아, 스위스 등 20개가 넘는 국가도 미국 수출품에 대한 관세를 올려 맞대응을 했다. 그 결과 1929년~1932년 기간에 미국의 수입이 약 66% 줄었지만, 미국 수출도 1929년의 52억 달러에서 1933년에는 17억 달러로 67%나 감소해 대공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됐다. 스무트홀리법 시행 실패 등의 영향으로 후버 대통령은 연임해 실패했으며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대통령 자리에 오른다. 루즈벨트는 1934년에 스무트홀리법을 대체하는 상호무역합의법(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을 만들어 대통령이 관세를 인하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1963년 치킨 전쟁
1960년대 초에 미국은 공장양계 방식을 도입해 닭을 대량생산 상품화했다. 당시 프랑스와 독일은 저가의 미국산 닭고기가 시장에 넘치자 이에 대응해 미국산 닭고기에 대해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은 이에 맞서 유럽에서 수입되는 대량으로 수입되던 브랜디, 경트럭, 감자녹말 등 품목에 대해 25%의 보복 관세를 물렸다.
1981년 미·일 무역마찰
일본 자동차가 미국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가자, 미국은 일본에 거센 압력을 가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미국과 일본은 일본 자동차의 자율수출규제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1980년대 내내 미국과 일본은 일본산 반도체, 이륜차, 전자제품 등 품목을 놓고 다툼을 벌였다.
1982년 바나나 전쟁
유럽은 과거 식민지 지역인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의 바나나 수입을 억제하기 위해 남미산 바나나에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자 미국이 발끈했다. 남미의 바나나 기업들에 대규모 투자를 한 미국 기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은 세계무역기구 WTO에 유럽을 제소했다. 또 미국 정부는 프랑스제 핸드백, 덴마크산 햄, 영국제 리넨 등 품목에 관세를 부과했다. 유럽은 2009년 바나나 관세를 단계적으로 내리기로 미국과 합의했고, 바나나 전쟁은 2012년에 종료됐다.
1985년 파스타 분쟁
레이건 행정부는 유럽에 대한 감귤류(Citrus) 수출이 부진하자, 유럽에서 수입되는 파스타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유럽은 미국산 레몬과 호두에 대해 고율 관세를 물렸다.
1987년 미·일 무역마찰
레이건 행정부는 일본에서 수입되는 컴퓨터와 TV 등 3억 달러 품목에 대해 관세를 크게 올렸다. 일본이 미국산 제품을 더 수입하고 저가 반도체 수출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역적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2002년 철강 기습공격
부시 미 행정부는 미국 철강산업을 부활시킨다는 명목으로 외국산 철강 제품에 대해 평소의 0~1%보다 높은 8~30%의 관세를 부과했다. 당시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를 맺고 있던 캐나다와 멕시코는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다. 유럽은 미국의 철강 관세 인상 조치에 대한 맞대응으로 미국산 자동차와 오렌지 등에 대해 관세 부과 등 보복조치를 했다. 미국은 이 조치로 WTO 제소됐고, WTO는 미국이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부시 행정부는 18개월만에 관세 부과 조치를 철회했다.
2009년 미·중 타이어 마찰
중국이 자국산 타이어를 미국에서 공정시장가격 아래로 판매하고 있다고 미국 기업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산 타이어에 대해 2009년~2012년 기간 동안 35%의 관세를 부과했다.
2010년 중, 일본에 희토류 수출 중단
2010년 9월 7일 동중국해 센카쿠열도(중국명 다오위다오) 인근해역에서 중국 어선이 일본 해상보안청의 순시선을 들이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사고로 중국인 15명이 일본에 체포됐다. 이 중 선장을 제외한 14명은 6일 만에 석방됐다. 중국은 선장이 석방되지 않자 정상회담 계획을 전면 보류하고 장관및 성(省)장급 교류를 중단하는 한편, 허베이성에서 군사시설을 촬영한 혐의로 일본인 4명을 체포하고 자국민의 일본 여행을 축소하는 등 일본을 압박했다. 특히 9월 23일 중국이 희소금속인 희토류의 대일 수출 중단을 발표했다. 다음 날인 24일 일본은 중국 선장을 석방한다. 일본이 최대 희토류 수입국이었던 점을 중국이 노린 것이다. 일본은 이 사건을 희토류 수입선을 다변화하는 계기로 삼았다. 한국일보(2017년 11월 2일자)는 “미국 역시 자국 내 희토류 수출금지 조치를 풀어 중국의 통제력을 떨어뜨렸다. 결국 희토류 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고, 이러한 파장은 중국 희토류 업계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미국ㆍ유럽연합ㆍ일본은 희토류 수출을 통제한 중국을 WTO에 제소했고, WTO는 중국의 조치를 불공정 무역이라고 판정했다.
2018년 미·중 무역마찰
트럼프가 미 행정부가 대 중국 무역적자 축소를 명분으로 2018년 7월에 중국산 수입품 500억 달러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은 서로 맞대응을 하며 관세 전쟁을 벌여왔다. 미국이 먼저 시작한 중국과의 ‘무역전쟁’은 시간이 흐르면서 단순히 적자 축소를 위한 조치에 국한되지 않으며, 중국의 추격을 견제하려는 패권경쟁의 양상을 띄고 있다.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제재조치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예이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추가 관세보복을 유보한 채 추가 무역협상을 벌이기로 한 상태이다.
자료: 한국은행<참고자료>
https://www.dailyfx.com/research/trade-wars-history
Infographic: A Short History of U.S. Trade Wars
https://www.visualcapitalist.com/history-u-s-trade-wars/
7 Contentious Trade Wars in U.S. History - HISTORY
https://www.history.com/news/7-trade-wars-boston-tea-party-smoot-hawley
Top 5 infamous trade wars in history
https://www.livemint.com/Politics/78YKGldxbKUlNTFqYEB1OP/Top-5-infamous-trade-wars-in-history.html
미ㆍ중에 번번이 참패, 한국 보복관세 19년 흑역사 - 중앙일보
https://news.joins.com/article/22387328
무역전쟁의 역사…"결과는 재앙뿐이었다" - 머니투데이 뉴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8030909004532176
中 희토류 수출 중단하자... 공급처 다변화 계기로 삼은 日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110204938534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