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인가 보편적 가치인가.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가 시작되면서 제일 듣기 불편한 얘기가 있다. 국력 차이를 들먹이는 말이다. 논리는 단순하다. 힘이 약한 나라가 더 당할 수 있으니 고개를 수그리는 게 지혜롭다는 것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호기 있게 대들다가 코피가 터지느니 실리를 위해 고개를 숙이자는 현실론이다.
다시 생각해본다. 이 말이 맞는가. 힘의 차이가 국제관계를 규율하는 기준이라면 베트남은 어떻게 미국을 상대로 큰 전쟁을 치렀겠는가. 1997년 외환위기가 아시아를 휩쓸 때 말레이시아는 어떻게 미국과 IMF에 맞서면서 홀로서기에 들어갈 수 있었겠는가. 중요한 건 힘의 차이가 아니고 어느 나라가 더 인류 보편적 가치에 가까이 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가치가 궁극적으로 이기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고 배워오지 않았던가.
대법원의 강제징용에 대한 배상 판결. 한 나라 사법부의 판단이다. 서로 생각이 다르니 한일 양국 간에 외교적 논쟁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외교의 장에서 풀어가면 될 일이다. 일본이 꺼낸 칼은 자충수이고 악수이다. 한국 경제의 숨통을 조이겠다고 무역을 무기로 삼았다. 수출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반도체의 급소인 포토레지스트(감광액)과 에칭가스(불화수소)를 ‘정밀타격’을 시도하고 있다. 무역보복에도 급이 있고 ‘강호의 도’라는 게 있다. 패권 경쟁이라든가 무역적자 축소를 위해 무역보복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그나마 경제 논리가 있다. 사법적 판단을 이유로 수출규제를 하겠다고 나선 일본의 카드는 ‘하수 중의 하수’이다. 한국과 일본, 누가 더 보편적 가치 위에 서 있는가. 아니 누가 그 가치에 역행하고 있는가.
국력 차에 관한 얘기가 적지 않게 나오니 국력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대략 경제력, 군사력, 기술 수준, 국제적 영향력, 문화 등을 포괄하는 개념일 것이다. 한일 양국 간의 국력 차를 언급하는 사람들은 경제력, 기술 수준, 국제적 영향력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명목 GDP로 본 경제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이 우리보다 3.2배 크다. 이번에 절감했듯이 첨단기술에서 일본은 우리보다 한 수위다. 외교 무대에서의 목소리보다 상대적으로 우리보다는 클 것이다.
중요한 점은 두 나라의 경제력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1970년만 해도 일본 경제의 덩치는 우리보다 25.9배나 컸지만, 이제는 세 배 수준으로 크게 좁혀졌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국민총소득 GNI 기준으로 일본은 3위, 한국은 11위이다. 우리가 일본보다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니 이 차이는 계속 좁혀질 것이다. 경상수지 흑자 규모도 한때는 수십 배의 차이가 났지만, 지금은 두 배 정도의 간격이다. 간과해서 안 될 사실은 일본 경상흑자의 5분의 1이 한국과의 무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현재 1인당 국민소득 GNI는 30%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것도 매해 그 나라의 물가를 써서 평가했을 때가 그렇다. 구매력 평가 PPP를 쓰면 얘기가 달라진다. 같은 상품의 가격이 나라마다 다르게 매겨지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똑같은 가격을 쓰는 평가방식이다. 물가가 싼 나라가 더 높은 구매력을 보인다. 이 기준을 쓰면 오는 2023년에 우리나라의 1인당 GNI가 5만 1,417달러로 일본의 5만 1,283달러를 웃돌아 일본을 추월하기 시작한다. 한국이 일본을 따라잡는 중요한 시발점이 되는 시점이다.
이런 통계를 거론하는 이유는 우리도 만만치 않은, 11위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라는 점을 보여 상기시키고 싶어서이다. 국력 차가 존재하지만, 그 차이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는 얘길 하고 싶어서이다. 일본도 경상흑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에 의존하는 있음을 보여주고 있어서이다. 한 가지를 추가하면, 현재 일본은 관광객 늘리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한국인 관광객이 네 명 중 한 명꼴이다. 일본으로 여행을 많이 가는 나라 중 2위이다.
이렇게 두 나라는 서로 긴밀하게 얽혀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핵심 소재들은 우리가 기술력이 달려 일본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온 것들이다.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들먹이지 않더라고 무역이란 게 그런 것 아닌가. 자신이 강점이 있는 상품에 특화해 이를 주고받는 게 전후 세계 경제를 지지하는 큰 축의 역할을 해온 자유무역의 본질 아닌가. 이렇게 교역을 해오다 보니 유난히 무역 의존도가 높다고 해서 그 상태를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로 쓰는 것은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위험한 처사이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에 실린 기사에서 한 전문가는 이렇게 개탄했다. “이런 식의 무역 관행이 자주 발생하면 전 세계 무역시스템이 붕괴할 것이다”
다시 국력 차 얘기다. 이래도 이번 수출규제 문제를 해결해가는 데 국력 차가 주요 변수가 돼야 하는가.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의 패배주의적 발상으로 본질적 문제가 풀리겠는가.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지금, 이 상황에서 ‘기본’은 보편적이고 상식적 가치이다. 자유무역의 가치를 복원시키고,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외교의 장을 소생시키는 것이다. 서로 상처가 큰 막다른 길로 가기보다 비 온 뒤 땅이 더 굳어지는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