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규제는 반도체에 쓰이는 핵심 소재를 겨냥해 한국의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와 주요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냥했다. 급소를 정밀 타격하려는 의도를 일본 정부가 드러낸 것이다. 미국이 중국의 주요 통신장비 기업인 화웨이를 규제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화웨이가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경제에서의 삼성전자의 비중보다는 크지 않다. 하지만 미래의 통신 및 군사의 주요 인프라가 될 5G 통신장비 부문에서 화웨이는 글로벌 시장을 종횡무진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중국의 대표 기업이다.
미국이 화웨이를 규제하는 방식도 공급체인을 무기화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AMD, IBM, 마블, 인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기업에게 압력을 가해 반도체와 다른 부품, 그리고 소프트웨어를 공급하지 못하도록 했다. 방식은 한국에 대한 핵심 화학물질 3개의 수출을 규제하는 일본과 똑같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역을 무기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와 내년 화웨이의 순익은 전망치를 300억 달러 정도 밑돌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공급 체인을 무기화한 미국의 정책은 중국에 분명한 메시지를 줬다고 스티픈 로우치 예일대 교수는 그의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칼럼에서 지적했다.
첨단 기술의 취약한 공급체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국 정부에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중국이 미국이 규제하고 있는 반도체와 소프트웨어를 자체 생산하는 데 10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관측돼왔다. 하지만 로우치 교수가 만난 중국 전문가는 이 기간이 크게 단축돼 2년 정도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의 화웨이에 대한 공격이 시진핑의 ‘자립 계획’을 일깨웠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두 달 전 1934년에 대장정시 시작됐던 장시성에 가 “새로운 대장정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긴 안목에서 주요 부품을 국내에서 자급자족하는 중국의 대장정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http://www.chinadaily.com.cn/china/19thcpcnationalcongress/2017-11/04/content_34115212.htm
2010년에 중국이 일본에 희토류 수출 규제를 가했을 때 일본의 대응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나라에 수출 규제를 하고 있는 일본이 수출규제를 당했을 때를 들여다 봐야하는 건 참 아이러니하다. 2010년 9월 7일 센카쿠 열도에서 중국 선장이 일본 해경에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중국은 희토류의 대일 수출을 지연시키기 시작했다.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는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당시 일본 정부의 대응과 결과를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727/96718620/1
일본 정부는 중국의 조치가 중국인 선장 체포에 대한 보복이라며 WTO협정 위반이라고 항의했고, 중국 정부는 환경 보호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위반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일본 정부는 중국을 WTO 제소했고 2014년 8월 중국 정부의 조치가 WTO협정 위반이라는 WTO의 판결이 나왔다. 중국 정부는 2015년 1월 희토류 수출 규제를 전면 철폐했다.
희토류를 확보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대응은 박 교수의 글을 그대로 소개한다.
“ 일본은 단기적으로는 희토류 공급 확보에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 상사 소지쓰는 2010년 11월 일본 정부 기구인 JOGMEC와 공동으로 2억5000만 달러를 호주 희토류 생산업체 라이너스에 출자했다. JOGMEC의 출자금은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희토류 종합대책’ 예산 1000억 엔의 일부였다. 희토류 분쟁이 있었던 것이 9월, 경제산업성의 대책 발표가 10월, 라이너스에 대한 출자가 11월에 이뤄졌다.
2012년 4월, 일본 대기업 히타치가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는 산업용 모터를 개발했다. 2015년 경제산업성의 보고서에 의하면 희토류 사용량 절감을 위한 기술 개발은 중소기업을 포함한 다수의 기업에서 상업적 진척이 있었다. 기술 개발이 이렇듯 신속히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이미 2007년부터 관련 분야에 대한 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문부과학성이 2007년에 착수한 ‘원소전략 프로젝트’다. 20여 개 대학과 기업이 참가한 이 프로젝트에서 대체 재료에 대한 연구에 상당한 성과가 있었고, 2010년 이후 희토류 대체 재료 개발에 그 연구 성과가 응용됐다.
희토류 분쟁은 결국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중국에 대한 희토류 의존도가 2009년 86%에서 2015년에는 55%까지 떨어졌다. 반면, 중국의 희토류 업계는 2014년 적자를 냈다. 희토류 가격이 폭락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화웨이 규제를 계기로 중국 정부는 절치부심하며 반도체와 부품, 소프트웨어 등의 국내 자급자족을 빠른 시일안에 현실화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빠르면 2년 안에 이게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에 대응해 공급선 다변화와 사용 절감 방안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중국 의존도를 크게 낮췄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절차를 밟아가고 있다. 이게 현실화되면 일본의 수출규제는 지금의 3개 소재에서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는 품목 수가 1,112개 이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화웨이 규제, 중국의 대일 희토류 수출 제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은 정도의 거의 전면적인 수출 규제이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를 이렇게 확대시킨 일본 정부의 행위는 용렬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일본의 이번 조치는 우리 정부와 기업에게 지나치게 높은 대일의존도가 독약이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줬다. 일본이 희토류에서 공급선 다변화를 해냈듯이, 중국이 미국의 제재를 헤쳐나가기 위해 빠르게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듯이 우리도 하면 된다. 못할 게 없다. 최근 세계지적재산권기구 WIPO가 발표한 글로벌 혁신지수 순위를 보면 우리나라는 11위, 일본은 15위이다. 우리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 힘으로 이번 기회에 대일 의존에서 탈피하자. 그게 공급체인을 무기화하고 무역을 정치화하는 시대에서 생존하고 성장해가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