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식물을 키우는 숙제를 한 적이 있다.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일회용 컵에 물을 담아 놓고 키웠던 걸로 보아 개운죽이라는 식물인 것 같다. 이 외에도 선인장을 키우는 친구도 있었다. 세심하게 관리를 해야 하는 식물이 아닌 만큼 어린아이들이 체험하기에 가장 좋은 식물이었다. 교실 창가 앞에 즐비하게 늘어선 식물 들은 어린 아기들이 금세 자라나는 것처럼 눈 깜짝할 새에 잎이 뻗어 나와 더 크고 예쁜 컵으로 바꿔야만 했다. 개운죽에게 이름도 붙여줬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조금 아쉽지만, 엄마가 화분을 애지중지 키워내는 이유를 그때 이해할 수 있었다.
학교 앞 문구점에는 나를 유혹하는 장난감들과 불량식품들이 많았다. 멋있는 로봇이 그려져 있는 가방, 3단 변신이 가능하거나 축구 게임을 할 수 있는 필통도 있었다. 하굣길에 항상 먹었던 맥주 모양의 사탕을 외면하고 봉선화 씨앗을 구매했다. 사탕 거품 부분의 달큼한 맛을 포기할 수 있었던 건, 내가 키우던 개운죽을 장난기 많은 친구들의 실수로 쨍그랑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동댕이쳐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그 시절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는 봉선화 꽃잎을 다져 묽게 만든 뒤 손톱 위에 올려 물들이는 것이 유행이라 너도나도 붉은 손톱을 가지고 있었다. 다세대 주택이 밀집해 있던 동네에서 살았는데, 줄지어 있던 주택들의 대문 앞 화단에는 이름 모를 꽃들과 앵두 열매도 있었다. 누나와 몰래 앵두를 따와서 먹기도 했고, 손쉽게 봉선화 꽃을 꺾어와서 손톱을 물들이곤 했다. 그 꽃을 나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씨앗을 우리 집 마당에 심게 되었다.
고작 12살의 꼬마에게 봉선화 꽃을 피우겠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집을 나설 땐 화단에 아침 인사를 하고, 산만한 교실 속에서도 개미들이 씨앗을 먹어버리진 않을까 걱정만 했다.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팽이를 돌리는 것보다 씨앗을 어디 심었는지 짚어낼 수 없었던 화단을 바라보는 것이 낙이었다. 긴 옷을 서랍 깊숙이 넣고 소매가 짧아진 옷을 입게 되었을 때 봉선화 꽃잎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루에 시작부터 끝까지 쏟아낸 관심과 사랑은 분홍빛 결실로 보답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잠자리에 누우면 어렵게 키워낸 봉선화를 누군가가 본인에 욕구를 채우고자 꺾어내지 않을까 걱정하기 바빴고,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길은 초조한 마음으로 바뀌어 모든 것이 힘들어졌다. 마찬가지로 내가 따 먹었던 앵두 열매도 누군가의 집을 나서는 설렘이었을 것이고, 손쉽게 꺾었던 봉선화 꽃은 사랑을 먹고 자란 결실이었을 것이다. 겪어 보지 않아서 괜찮다고 치부했던 것을 조금 성숙해지고 나서야 내 욕심은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를 들을 때면 봉선화 꽃이 생각난다. 때때로 작은 일에 부딪치더라도 매 순간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할 수 없겠지만 그 사람의 가치를 쉽게 꺾어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거지 싶다. 집 앞을 산책하며 길거리에 피어있는 꽃을 보면 예쁜 꽃병이 생각날 때도 있지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의 방황이 산책길로 바뀌길 바라며 꽃에 대한 예우를 갖춰보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