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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감

by 남상훈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다. 남들 앞에서 발표할 때도, 연인과 말싸움할 때도,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한다. 그래서인지 글도 잘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메시지로 자연스럽게 전달하던 내 생각을 형식에 맞춰 쓰려고 하니 깜박이는 커서가 ‘쉽지 않을걸?’이라고 약 올리는 것 같았다. 그나마 글을 배우고 나서야 하고 싶은 말을 겨우 전달하는 정도가 고작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을지도. 이왕 글을 쓰기로 했고 수업도 들은 사람으로서 방향성은 있어야지 싶었다. 내 글을 누가 읽으면 좋을지, 어떤 메시지를 담으면 좋을지, 뚜렷할수록 완성도가 높아지니까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공감을 전하고 싶다.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일기와 에세이의 차이점이다. 메시지를 담고 공감을 얻는 것.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니 빠질 수 없는 항목이다. 사람 사는 게 비슷하니까 느낌이나 생각도 매한가지지만 그걸 글로 써내는 건 쉽지 않다. 쓰겠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지 않을 텐데 그 느낌만 잘 써내도 많은 공감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더불어 세상엔 예쁜 글이 너무 많다. 당장 서점에 베스트셀 코너만 가도 예쁜 것이 가득 차 있다. 당연, 실력이 뒷받침돼야 하겠지만 돈이 된다고 예쁜 글을 쓰는 것보다 내면에 깊이 가라앉은 것을 인양해오고 싶다. 사람은 좋은 기억보다 안 좋은 에피소드를 더 잘 기억한다고 한다. 단지 그것을 마주할 용기도, 필요도 없기에 외면하고 있을 뿐이지 공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실 예쁘게 쓰지도 않으면서 실력도 못 미치고 어설프게 위로 비슷한 걸 하는 것보다는 생존 확률이 높을 것 같기도 하다. 얼마 전에 읽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일부가 생각난다.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다. 진지하게 작업해 나가면 언젠가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게 된다.’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일년감'이라는 채소가 있다. 일 년을 사는 감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예전엔 관상용으로만 재배했는데 그 효능이 밝혀지고 난 후 밭에서 식용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요즘엔 비닐하우스에서도 재배해서 사계절 동안 먹을 수도 있다. 마치 일등 신랑, 신붓감 같은 이름의 채소가 생소할 수도 있지만 곳곳에서 손쉽게 볼 수 있고, 하물며 누구나 좋아한다. 이 낯선 채소의 영어 이름은 ‘토마토.’ 토마토를 일년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나? 다른 이름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거다. 만약 누가 토마토 얘기를 꺼낸다면 우리나라 이름이 뭔지 아냐면서 박학다식한 척할 수도 있겠다. 내 기준에서는 과일이지만 미국에서 정부와 업자의 논쟁이 있었는데 이에 대법원은 채소로 판결을 냈다. 과일과 채소 두 가지 특성을 꽉 잡고 있는 토마토는 비타민과 무기질 공급원으로 아주 우수한 식품이다. '토마토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 얼굴이 파랗게 된다.'라는 유럽 속담이 있을 정도로 건강식품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제격이다.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유명한 안데스 산맥 기슭의 '빌카밤바' 사람들이 이것을 많이 먹은 덕에 장수를 누렸다고 전해지는 바도 있다. 또한 토마토 주스는 유기산이 적어 자극성이 적고 소화가 잘 돼서 환자가 마시기에도 좋다.


비록 지금은 내 생각 하나 자세히 쓰지 못하지만, 공감을 얻는다는 것. 불특정 다수의 내면을 인양하겠다는 것. 이 큰 목표를 가지고 토마토 같은 글을 쓰기로 한다. 채소가게보다 과일 파는 곳에서 더 잘 볼 수 있는 불완전한 것. 하지만 두 가지 역할을 꽉 잡고 있듯 예쁜 글은 아니어도 자극적이지 않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하게 전달하는. 이로써 공감의 역할을 확실하게 해내는 글을. 늦은 저녁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발견한 ‘일년감’이 내 글의 방향성을 잡아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진지하게 작업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 내 작품도 사계절 중 하나쯤 돼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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