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여행 계획에 유난히 들떴던 적이 있었다. 어느 뮤지션의 일상을 공개하는 TV 프로그램에서 떡볶이를 먹는 장면을 보고 난 후였다. 아주 진한 붉은색을 띠는 국물이 가장자리까지 넘칠 듯 차 있고 두툼한 가래떡이 먹음직스러웠다. 떡볶이에 진심인 편이라 금세 침이 고였다. 나는 그 즉시 위치를 알아냈다. 내가 사는 곳에서 418km 떨어진 곳, 부산. 몸이 부르르 떨릴 만한 거리지만 당장 스케줄을 살폈다. 아무리 떡볶이를 좋아한다지만 혼자서 다녀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순간 머리를 스치는 한 사람이 있었다. 즉흥적인 부분에서 마음이 잘 맞는 동생. 이번에도 어김없이 동생과 함께 짧은 일정을 꾸려 부산으로 떠날 계획을 세웠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휴게소를 두 번이나 들리고,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를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시간이었다. 어딘가로 떠난다는 건 언제나 설레게 하니까. 계획을 세우고, 짐을 꾸리는 일만으로도 모든 걱정을 무산시키는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우리는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주인공들처럼 자유로운 여행을 하는 중이고 거창한 계획 없이 떠난다는 것에 나지막한 희열이 느껴졌다.
가게 앞에 도착했을 땐 이미 줄이 길었다. 우리는 열댓 명의 사람들 뒤에서 순서를 기다렸다. TV에 나왔던 장소여서 그런지 조금 긴장되는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에서 봤던 붉은색 국물이 걸쭉한 정도까지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를 반겼다. 실컷 먹고도 남을 만큼 주문을 하고 안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호호, 입으로 불어가며 떡볶이를 먹는 우리. 바삐 움직이는 손과 입. 정신없이 먹느라 소홀했던 대화. 더 이상 이곳은 화면 속 장면이 아닌 내 기억 속의 장면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오뎅이 담겨있던 그릇에 파 건더기만 떠다닐 때쯤 우리는 한바탕 웃고 말았다. “떡볶이가 뭐라고 400km를!”
그 이후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종종 그때 생각이 난다. 집에만 있는 오전이나 오후, 뜨뜻미지근한 날. 친구들과 함께하는 여행 중 비가 와 게을러지는 날. 어쩐지 일상이 애련하고 막막하다고 느낄 때면 생기 넘치고 즐거웠던 그날이 떠오른다. 분식 먹자고 400km를 달려가는 부질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가도 다녀오길 잘했다고, 기회가 되면 또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그곳에서 먹어야겠냐고 말하거나 몇몇 사람들은 이동하느라 쓸데없이 시간과 돈을 낭비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마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다르고 그 가치도 다르게 기억된다. 시간을 때우느라 괴로운 이도 있고 부족하기만 한 시간이 애석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흔히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의미 있게 보내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디까지가 의미 있는 것이고 어디부터 부질없는 것이 되는 걸까. 무엇을 했든 간에 즐겁게 보낸 시간을 낭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후회가 남지 않는 시간을 보내려면 의미 있는 것과 부질없는 것의 기준에서 머뭇대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늦은 밤 동생의 전화를 받고 집 앞으로 나갔다. “형 여기 떡볶이 좋아하잖아. 생각나서.” 여자 친구와 거제도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생각나서 사 왔다는 말에 왠지 코끝이 찡했다. 사소한 것이지만 사소하다고 말하는 것이 편치 못할 정도로 마음이 예뻤다. 사소해야만 풍길 수 있는 애틋함, 손에 들린 하얀 봉투에서 어렴풋이 드러나는 그의 애정, 많이 먹으라고 큰 걸로 사 왔다는 말과 따듯하진 않지만 온기는 남아있다는 말이 좋았다. 그때를 회상하며 떡볶이를 베어 문다. 매콤하면서 달콤한 나의 소울푸드. 누군가의 마음과 가치 있는 추억이 깃들어 있다. 즐겁고 의미 있었던 것을 앞에 두고 ‘너 좋아하잖아.’ ‘너 좋아할 거 같아서.’ 이런 표현을 자주 써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밤이 깊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