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궁금했다. 우리 부부 첫 보금자리는 잘 있을까? 10년이 훌쩍 넘었으니 많이 변했겠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기는 할까? 엄마, 아빠가 지금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았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놀란 토끼 눈을 했다. 그리하여 온 가족이 나들이를 떠났다.
지하철을 타고 꼬박 1시간이나 걸렸다. 역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눈에 들어온 마을 버스정류장을 넋 놓고 바라봤다.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니! 왠지 고맙기까지 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착각에 빠지려던 찰나 정류장 바로 뒤편 낯선 건물이 보란 듯이 세월의 흐름을 일깨워주었다. 턱을 하늘 높이 추켜올려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고 높은 건물이었다. 1층에 자리 잡은 식당과 커피숍은 인테리어만큼이나 세련된 손님들로 북적였다.
신혼시절 남편과 나는 때로는 마을버스를 타는 대신 손을 잡고 집까지 걸어가곤 했다. 그 길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추억의 흔적들을 만날 생각에 심장이 콩닥거렸다. 마을 버스정류에서보다 더한 감동이 밀려오리라. 하지만 걸음을 옮길수록 엷은 탄식을 내뱉고 혀를 끌끌 찼다. 길 곳곳에 자리한 간판들 때문이었다. 세월의 먼지가 묻지 않은 깨끗한 간판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상점들은 지금 어디에 있고, 그 주인은 무얼 하고 있을까?
어느덧 신혼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에 도착했다.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했다. 세탁소와 철물점이…… 내 기억 속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웠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난 것만 같았다. 제발 나의 신혼집도 그대로 있길. 걸음을 재촉했다. 심장이 요동쳤다. 조금 뒤 나도 모르게 흥분하며 외쳤다.
“바로 저기야! 엄마랑 아빠가 결혼해서 처음으로 함께 산 집이 바로 저기 4층이었어.”
건물 외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코끝이 시큰해졌다. 추억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남편의 의도치 않은 엉뚱함에 참 많이도 웃었었다. 물론, 우리가 늘 깨만 볶았던 것은 아니다. 서로를 향해 날 선 말을 해대며 다툰 날도 여럿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이지 별일 아니었는데 왜 그리 핏대를 세웠는지……. 냉전 중에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만났을 때 서로 모른 척했던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순간마저도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으로 남아있다.
신혼집 주변 골목들을 산책 후 내친김에 근처 재래시장에도 들렀다. 역시나 내 기억과는 차이가 컸다. 전에는 투박함의 멋이 있었는데 이제는 단정한 세련미를 갖춘 장소가 되었다. 내가 단골이 아니어서였을까? 시장의 변화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여덟 살, 여섯 살 형제는 고개를 빠르게 이리저리 돌리며 구경하기 바빴다. 대형 마트만 다녔던 녀석들에게 재래시장이라는 곳은 투박하건, 세련되건 마냥 매력적일 뿐이었다. 구경 막바지에 우리는 한 떡집에서 떡을 한가득 사서는 시장을 나오자마자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아이들은 그때 그 떡 맛에 매료됐다. 집에 온 다음 날, 또 먹고 싶다며 다시 가자고 졸라댔다. 하지만 솔직히 특별할 것 없는,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떡이었다. 하여 지금 사는 동네에서 사기로 했다.
동네 떡집을 찾아 나선 건 처음이었다. 우선, 전에 차를 타고 지나가는 길에 봤던 떡집 간판이 생각났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간판에는 없는 것들만 팔고 있었다. 옥수수, 만두, 심지어 주방용품까지.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다른 떡집을 찾아냈다. 하지만 행사용 떡만 주문 받아 파는 곳이었다. 즉, 아이들이 원하는 떡은 없었다. 인상 좋은 주인이 미안해하며 다른 떡집이 있는 방향을 알려주었다. 조금만 가면 있다면서.
아무래도 그 주인은 평소에 걷기 운동을 즐기는 사람인 게 분명했다. 조금만이라더니…… 떡집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따가운 여름 햇볕 아래서 아이들은 목이 마르다며 징징댔다. 물이라도 사고 싶었건만 그 흔한 편의점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떡, 그리고 물을 사기 위해.
저 멀리 반가운 글자가 큼직하게 적힌 간판이 보였다. ‘떡’. 이번에는 다양한 종류의 떡이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사려던 떡은 다 팔린 상태였다. 그쯤 되니 아무래도 떡들이 작정하고 우리를 피해 꼭꼭 숨어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아이들이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주인이 힘을 내라며 시원한 물 한 잔씩을 주었다. 조금만 가면 떡집이 하나 있고 우리가 원하는 걸 살 수 있을 거라고도 했다. 갈증을 해결한 아이들은 떡과의 숨바꼭질을 이어가기로 했다.
역시나 결코, 짧지 않은 거리를 걸은 끝에 네 번째 떡집에 이르렀다. 매대에 각양각색의 떡들이 고운 자태를 뽐내며 누워 있었다. 우리가 원하던 떡도 함께였다. 우리는 극적인 승리를 거둔 선수처럼 양팔을 들어올려 환호했다. 그리고는 먹고 싶은 걸 죄다 봉지에 담았다. 꿀떡, 백설기, 바람떡, 무지개떡, 경단…….
내가 집에 가서 신나게 먹자고 했더니 두 꼬마가 울상을 지었다. 다리가 아파 더는 못 걷겠고, 배도 너무 고프다면서. 하는 수 없이 녀석들을 길가 계단에 앉히고 떡을 꺼냈다. 쌍둥이냐는 소리를 자주 들을 정도로 매우 닮은 두 사내아이가 나란히 앉아 아기새처럼 입을 벌렸다. 꿀떡을 하나씩 받아먹고 오물거리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내 허기는 싹 사라졌다.
“얘들아, 지금 기분이 어때?”
“좋아!”
“좋아!”
여기까지 온 과정은 내게이 극기훈련이나 다름없었다. 무더위 속에서 가방을 세 개나 메고(첫째의 책가방, 둘째의 유치원 가방, 내 가방), 양손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중간중간 칭얼대는 걸 달래가며 걷고 또 걸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고행(?)이었다. 단언컨대, 나는 그날의 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떠올리고 미소 지을 것이다. 과정이 몹시 쓰고, 결론이 달콤하면 더욱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법이니까.
과연 아이들은 어떨까? 세월이 흐를수록 녀석들의 머릿속에서 이날의 기억은 점점 흐릿해질 것이다. 유년기의 일은 그렇게 되기 마련이다. 시간 속에서 대부분 지워져 버리거나 단편적인 장면, 마치 한 컷의 사진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종종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나로서는 더 자세히, 더 많이 기억하지 못하니 아쉬울 따름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유년기의 아득한 기억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장면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또한 때때로 ‘행복꽃’으로 피어나서 어른이 된 나를 미소짓게 해준다. 그러니, 내 아이들이 지금의 순간들을 더 많이, 오래도록 간직해서 ‘추억 부자’가 되면 좋겠다. 떡 맛에 빠져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는 두 꼬마의 기억을 단단히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어졌다. “얘들아, 나중에 너희들이 커서 어른이 됐을 때, 만약에 길에서 어떤 엄마가 아이에게 떡을 먹이는 모습을 본다면 지금을 떠올리게 될 거야. ‘나도 어렸을 때 저랬었는데……’ 하면서 지금의 기분을 느끼고 미소 지을 거야. 그런 걸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린다’고 하지.”
여덟 살 첫째가 쩝쩝거리면서 물었다.
“추억이 뭔데?”
“예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 그걸 추억이라고 해. 엄마도 종종 엄마가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을 추억하면서 혼자 씩 웃을 때가 있어. 그러니까 우리 라온이랑 로운이는 어린 시절에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많이 만들자.”
별생각 없이 스쳐 보낼만한 작은 순간이어도 의미를 부여해주면 ‘소중한 추억’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길에서 떡을 먹고 있는 지금 순간도 얼마든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종종 떠올라 미소 짓게 해줄 일’이라고.
내 말에 첫째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 둘째는 뾰로통하게 말했다.
“난 크기 싫어.”
“뭐? 크기 싫다고? 아…… 어른이 되기 싫다고?”
“응. 난 계속 어릴 거야.”
“우리 로운이는 계속 어린이이고 싶구나! 흐흐. 혹시 왜?”
“난 지금이 좋아. 어리니까 행복하잖아.”
“아아…… 어른이 되면 안 행복할 거 같아? 어른이 되면 어른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어. 지금은 어리니까 어린이 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충분히 느끼고, 어른이 되면 또 어른이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충분히 느끼면 돼.”
“그래도 난 안 클 거야.”
단호하게 답하고는 허공을 바라보는 그 얼굴이 어딘가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이유를 알만 했다. 녀석은 영원히 엄마와 살 거고, 결혼도 엄마랑 할 거라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러면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현실을 알려주었다. 이다음에 커서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사람과 결혼할 거고, 그 사람과 살게 될 거라고. 하지만 내 말을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무리 타일러도 막무가내였다. 녀석에게 있어서 어른이 된다는 건 엄마와 이별해야 하는 심각한 일인 것이다.
입속에 그리도 좋아하는 꿀떡이 있는데도 씹지도 않고 심각한 표정만 짓고 있는 여섯 살을 어이할꼬? 미안하지만 내게는 그 모습마저도 너무나 깜찍했다. 이토록 소중한 귀염둥이를 꼬옥 안아주고, 볼에 뽀뽀를 해주고, 사랑의 표현들을 넘치도록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그 순간 녀석에게 필요한 건 공감이었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다문 채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숙연한 태도를 보였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뒤, 이 작은 ‘엄마 껌닥지’는 스스로 마음을 추스른 뒤 명랑함을 되찾았다. 잊고 있던 떡을 부지런히 씹어 꿀꺽 삼키고는 입을 하마처럼 벌려 다른 떡을 기다렸다.
그날 이후 두 꼬마는 어디든 떡집을 발견하면 재잘거린다. 전에 ‘떡’이라고 된 간판만 찾아다녔다고, 그런데 떡이 없었다고, 조금만 더 걸어가면 있을 거라 했는데 안 그랬다고, 너무 덥고 목말랐다고, 그런데 떡집 사장님이 물을 주셔서 시원했다고, 계단에 앉아서 먹었던 떡이 정말 맛있었다고……. 서로 앞다투어 그날의 기억을 한바탕 꺼낸 후 마무리는 늘 같다. “그날 정말 재미있었어. 흐흐.” 다행히 ‘떡집 찾아 삼만리’ 사건(?)이 녀석들에게 즐겁고 행복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문득 궁금하다. 이 동심들은 먼 훗날 어른이 되어 나들이를 떠날까나? ‘어렸을 때 떡집을 찾아 헤맸던 그 동네는 지금 잘 있을까?’하는 궁금증을 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