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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Jun 07. 2021

내 아이의 거짓말을 처음  만난 순간

  아이들과 경주용 자동차 관련 책을 읽었다. 세계의 다양한 자동차 경주 대회의 특징과 각 대회에 출전했던 차에 대한 소개도 흥미로웠다. 자동차에 관심이 별로 없던 내가 이 정도이니 일곱 살, 다섯 살 형제가 책에 쏙 빠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엄마. 이 차는 눈이 많이 올 때 여기 이 버튼을 누르면 차 위로 큰 우산이 펼쳐진대. 그리고 눈을 없애주는 게 차에서 나와서 막 뿌려진대.”

  “우와! 진짜? 로운이는 그거 어떻게 알았어?”

  “유치원 선생님이 얘기해줬어.”

  “그랬구나. 유치원에서 자동차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있었던 거야?”

  “응.”

  유치원 새내기 로운이가 왜 그리 유치원에 다니는 게 좋다고 하는지 알만했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녀석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자동차의 특수 기능에 대해 추가 설명을 곁들여주었다. 수많은 위험과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발명된 기술들은 실로 놀라웠다. 그 많은 이야기를 잊지 않고 이토록 생생하게 전해주다니! 로운이가 선생님 말씀에 엄청난 집중을 보인 것이 분명했다.

  다섯 살의 청산유수 같은 설명을 한참 듣다가 수상한 낌새를 느꼈다. 

  “엄마, 이 차는 이 버튼을 누르면 위로 헬리콥터에 달린 거 같은 날개가 나와. 그게 막 돌아가서 차가 위로 날아갈 수 있대.”

  터무니없는 기능이었지만 일단 신기해하며 호응해주었다. 그리고는 능청스레 물었다.

  “로운아, 혹시 선생님이 유치원에서 어떤 자료를 보고 자동차 기능들을 설명하신 거야?”

  “책.”

  “그랬구나. 이 책이랑 똑같은 게 유치원에 있어?”

  “응.”

  “그렇구나. 이 책에는 로운이가 얘기해준 놀라운 기능들은 안 나오는데, 선생님은 어쩜 그렇게 잘 아실까?”

  “그건 나도 몰라.”

  “아, 정말 궁금하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게 됐는지 선생님한테 한 번 여쭤봐야겠다.”

  “안 돼…….”

  지금껏 자동차 전문가인 양 술술 이야기를 풀어갔던 자신감이 사라졌다. 어딘지 난감해하는 표정이었고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했다.  

  “엄마가 정말로 궁금해서 그래. 나도 선생님처럼 자동차에 대해 많이 알고 싶거든. 그래서 한 번 여쭤보려고.”

  “안 돼!”

  “왜 안 돼?”

  “사실은 선생님이 말한 게 아니고, 내가 지어낸 거야.”     

   내 아이가 사실이 아닌 것을 말하다니! 처음이었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감쪽같이 속을 뻔했다. 그간 내가 지켜왔던 생각 하나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첫째 라온이는 지금껏 거짓말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그것이 내가 아이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사소한 약속이라도 반드시 지켜온 덕분이라 여겼었다. 물론, 부모의 행동이 영향을 준 면도 있겠지만 지금 보니 아이의 성격도 작용했던 것 같다.

  라온이와 로운이의 성격은 매우 달랐다. 올곧게 뻗은 직선과 자유로이 물결치는 곡선 같았다. 외출할 때 신을 양말을 예로 들자면, 라온이는 양말의 원래 짝대로 신었지만, 로운이는 색깔이 다른 두 켤레를 들고 와서는 서로의 짝을 바꿔 짝짝이로 신었다. 왼쪽과 오른쪽 색이 다른 것이 예쁘고 좋다면서 극구 그 방식을 고수했다. 라온이에게 동생처럼 짝짝이 양말을 신겠냐고 물으면 녀석은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바깥 놀이를 할 때도 라온이는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었고, 내가 조금이라도 안 보이면 먼저 나를 찾았다. 반면, 로운이는 내가 보지 못하도록 몰래 어딘가에 숨는 걸 즐겼다. 두 녀석 다 같은 배속에 살다가 나왔는데 너무나 다른 것이 볼 때마다 신기했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김로운 어린이는 자동차의 특수 기능을 마음껏 지어내고, 유치원 선생님이 해 준 이야기라고까지 했다. 어찌 보면 녀석에게는 짜릿한 모험이었으리라.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거짓말’이었다.

  수정처럼 맑은 얼굴, 눈동자, 목소리로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 다섯 살을 어찌할까? 이 사건을 어떻게 넘기느냐가 녀석의 앞날에 중요하게 작용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거야.”라는 말은 왠지 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거짓말’로 치부해버릴 수가 없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놀라운 상상의 날갯짓이 있었고, 흥미로운 이야기로 엄마를 즐겁게 해 주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 지어낸 이야기였음을 고백한 후 멋쩍게 웃는 로운이. 그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다정한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랬었구나. 그런데 왜 선생님에게 들은 얘기라고 했던 거야?”

   “…….”

   “혹시, 선생님에게 들은 거라고 하면 엄마가 더 믿고, 대단하다고 생각할 거 같았어?”

   “응.”

   “그랬구나. 로운아, 재미있는 얘기 들려줘서 너무 고마워. 엄마는 정말로 그런 기능들이 있는 줄 알고 깜짝 놀랐고, 엄청 대단하다고 생각했어. 알고 보니 그 이야기들을 모두 로운이가 지어냈다니! 세상에나! 완전 작가 같네. 대단한 작가다. 우리 로운이 혹시 그거 아니?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보다, 김로운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훨씬 좋아. 앞으로도 김로운 작가가 만든 이야기를 들려줄 거면 김로운 작가의 이야기라고 꼭 얘기해줘. 그럼 더 기대하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거야. 알겠나요?”

   “응.”


  그 후로도 로운이는 새로운 정보들을 앙증맞은 목소리로 나에게 공유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출처(?)를 밝히고 시작했다는 것이다.

  “엄마, 유치원 선생님이 얘기해줬는데…….”

  “엄마, 이건 김로운 작가가 지은 얘기인데…….”

  김로운 작가표 이야기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눈을 최대한 뜨고 반짝였다. 굳이 다른 사람을 언급하며 포장하지 않아도, 로운이의 창작 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롭다는 점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덕분에 녀석은 실제로 들은 것인지 지어낸 것인지를 자연스레 밝혔다. 가끔은 출처를 속이기도 했다. 어린이의 상상과 과장으로 만들어졌을 법한 이야기가 뻔한데 말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이곧대로 믿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 로운이는 5초도 안 지나서 “아니지롱, 헤헤.”하면 익살맞게 웃었다. 스스로 거짓말을 자정하며 맑고 투명한 상태로 재빨리 돌아간 것이 참으로 기특했다. 때문에 나는 매번 투명함을 더욱 견고하게 할 수 있는 말을 해주었다. 
   “이러니까 엄마가 우리 로운이를 믿을 수 있는 거지. 이렇게 거짓말을 했다가 금방 ‘아니지롱, 헤헤.’하면서 사실을 말해주니까.”


  어떤 아이는 거짓말에서 비롯된 창피함, 충격, 후회 같은 쓰라림을 겪은 뒤에야 교훈을 얻는다. 그 영향으로 거짓말을 멀리하고자 노력한다. 그런 부정적인 경험 대신 긍정적인 경험으로도 깨달음을 얻게 할 수도 있다. 내가 로운이에게 했던 방법이 그중 하나다. 솔직함이 더 멋지고, 힘이 있음을 기분 좋게 알려주는 것 말이다. 그를 통해 아이는 거짓보다는 진실을 말하고 그에 따른 유쾌한 경험을 더욱 추구하고자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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