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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신화 May 21. 2021

내가 생색 쟁이 엄마가 된 이유

  라온이와 로운이가 동시에 아픈 것은 처음이었다. 늦가을 감기가 두 사내아이의 코뿔소 같던 기운을 삼켜버렸다. 집안이 고요했다. 이따금 “엄마.”하고 부르는 작은 토끼 같은 소리가 침실로부터 기어 나올 뿐이었다.

  감기가 얼마나 지독했던지 녀석들은 잠만 자려했고, 잠에서 깨면 어김없이 나를 불렀다. 나는 그 곁으로 가서 물이 든 빨대 컵을 입 가까이 대주었다. 나란히 앉아 빨대를 빠는 여섯 살, 네 살 배기의 모습은 마치 젖먹이 아기 같았다.
   식사 때도 아기가 되었다. 기운 없이 앉아서 식판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할 뿐 숟가락을 드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결국, 내가 먹여주었다. 두세 숟가락이라도 뜨면 다행이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곧잘 받아먹었다. 숟가락이 다가오면 자동으로 입을 벌렸다. 다른 반찬은 없었고 된장국에 말아준 밥일 뿐이었지만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엄마가 먹여주는 밥이라 밥맛이 돋은 모양이었다. 녀석들은 평소에도 이따금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대신해주길 원하곤 했다. 양말을 신겨달라거나, 밥을 먹여 달라거나, 변기 물을 내려 달라거나……. 귀찮고 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려는 하나의 방법 같았다. 만약 내가 그 청을 들어주면 선물이라도 받은 듯 해맑게 웃으며 좋아했다. 아이들의 마음은 그런가 보다. 아무리 사랑한다는 말, 힘껏 안아주기, 따뜻한 미소로 바라봐주기를 많이 해주어도 성에 안 차는 모양이다.
  

  다음 날 아침. 로운이는 조금 이따가 먹겠다고 해서 라온이의 음식만 침실로 가져갔다. 전날처럼 된장국에 말아준 밥이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위장을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음식이라 아이들이 아프면 단골 메뉴였다. 따끈하게 데운 국물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올랐다. 여섯 살의 연한 입술과 혀가 행여 데일세라 나는 숟가락으로 천천히 휘저은 뒤 후후 불며 열기를 가라앉혔다.

  엄마를 바라보며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라온이는 마치 인형 같았다. 숨 쉴 때 어깨를 조금 들썩이는 것 외에는 움직임이 없었다. 낯설기도, 안쓰럽기도 했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밤에 잠들 때지 공원에 나온 강아지처럼 한 시도 가만있지 않고 신나게 놀았던 녀석인데……. 어서 감기를 떨치고 일어나 원래 하던 대로 에너지를 뿜어대기를 바랐다. 그 모습이 녀석에는 가장 잘 어울렸다.

  “라온아, 엄마가 이렇게 후후 불면서 속으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몰라.”

  녀석의 잔잔한 호수 같던 눈이 일렁였다. 잠만 자고 싶고, 숟가락조차 들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아픈 와중에도 호기심만큼은 쉴 생각을 안 했다.

  “우리 라온이 어서 건강해져라! 우리 라온이 어서 건강해져라! 이렇게 하면서 불고 있지. 그러니까 라온이도 음식 씹으면서 마음속으로 '라온이는 건강하다! 라온이는 건강하다!'라고 해야 하는 거야. 알겠지?”

  내게 엷은 미소를 지어 보인 작은 얼굴에 흡족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음식을 식히면서 주문을 외우는 내 마음이 제대로 전해졌다. 자식을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라온이는 그날 아침밥을 어제보다 더 맛있게 먹어 치웠고, 조금 더 달라고까지 했다. 역시 아이에게 그 어떤 것보다 맛있고 몸에 좋은 반찬은 부모의 사랑이다. 아침 식사를 마친 녀석의 몸이 빠르게 좋아졌다. 체온이 정상이 되었고, 재잘거림도 조금씩 늘어갔다. 천천히 거실로 걸어 나와 장난감을 만지작거리기까지 했다.
   동생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용히 놀던 녀석이 목이 마르다며 주방으로 왔다. 나는 채소죽에 넣을 당근을 다지고 있었다.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나를 쳐다보는 녀석에게 말했다.

  “라온아, 엄마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요리하고 있는지 알아?”

  “........”

  “이 음식 먹고 우리 라온이, 로운이 기분 좋아지고, 건강해져라, 건강해져라 하는 거지. 엄마는 요리를 할 때 늘 그런 마음이란다.”
   수줍은 듯 살며시 입꼬리를 올린 라온이의 얼굴에 행복이 만연했다.

  이처럼 나는 아이들에게 내 행동이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종종 알려주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해주는 행동에 사랑이 담기지 않은 것이 있으랴.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굳이 알려주곤 한다. 어찌 보면 ‘생색’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생색내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이것만은 예외다.

  아이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미 알고 있지만 자꾸만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 있다. 부모의 사랑이다. 나의 생색은 ‘사랑해!’라는 말보다 더 진하게 엄마의 사랑을 알려 준다. 늘 녀석을 위하는 일을 고민하고, 행하는 누군가가 있음을 수시로 느끼게 해 준다. 덕분에 아이는 자신이 얼마나 깊은 사랑을 받고, 소중한 존재인지 알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거듭된 이 경험은 마음을 단단하고 건강하게 한다. 이는 훗날 그 어떤 상황에 맞닥뜨려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된다.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생색쟁이 엄마가 될 것이다. 단, 유의할 점이 있다. 너무 과한 생색은 곤란하다. 요리의 마지막 단계에 뿌리는 깨소금처럼 아주 적은 양이면서 고소한 향기를 솔솔 풍기는 정도면 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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