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신화 Nov 20. 2021

혼자일 때 만날 수 있는 색다른 친구

  로운이가 다쳤다. 킥보드를 타고 내리막길을 가다가 넘어진 아찔한 사고였다. 고개를 옆으로 한 채 바닥에 엎드려 일어나지도 못했다. 남편이 달려가 일으켜 앉히자 녀석은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아주 이상한 울음소리를 냈다. 내가 도착해서 품에 안았지만 눈도 못 뜨고 고통스러워하며 울기만 했다. 어디가 아픈지 물어도 소용없었다. 안아 올려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자 악을 썼다. 목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 팔뚝에 기댄 머리가 자꾸만 뒤로 넘어갔다. 손으로 잼잼을 해보라고 해도, 발을 까딱해보라고 해도 그저 울기만 했다. 나는 “괜찮아. 괜찮아. 엄마야. 엄마, 여기 있어. 괜찮아. 우리 로운이 괜찮아.”하며 녀석을 달래려 애썼다. 하지만 속으로는 너무나 두려웠다.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도 심장이 조이고 몸서리를 칠 정도다.
   119 구급 요원이 왔을 때 비로소 로운이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요원이 요구한 대로 손을 접었다 펴기도 했고, 일어나서 걸어 보이기까지 했다. 단 두 걸음만 떼고 주저앉았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내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곧 다시 두려움이 엄습했다. 녀석은 킥보드를 타다가 넘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의사에 따르면 뇌진탕의 증상이었다. 굳이 그 기억을 찾으려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로운이는 회복을 위해서 절대적인 안정을 취해야 했다. 그래서인지 하루의 대부분을 잠을 자며 보냈다. 그렇게 3일이 지났고, 4일째 되는 날부터 서서히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식사량도 조금씩 늘렸다. 5일째부터는 침실 밖으로 나와 지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고, 배가 고프다는 소리를 자주 하며 밥과 간식을 수시로 먹어댔다.
   밥 한 그릇을 뚝딱 먹어 치운 로운이가 5분도 안 돼서 과자를 먹고 싶어 했다. 나는 설거지를 멈추고 녀석이 좋아하는 과자를 큰 그릇에 부어준 뒤 다시 주방으로 가려 했다. 로운이가 같이 먹자면서 내 손을 잡았다. 내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 뒤 마주 보고 앉자 녀석은 씩 웃더니 과자 하나를 집어서 내게 내밀었다. 작은 과자 하나에 엄마를 생각하는 아이의 커다란 마음이 담겼다. 나는 감탄사를 내뱉은 뒤 아기처럼 입으로 받아먹고 오물거린 뒤, 과자 하나 집어서 내밀었다. 로운이도 내가 했던대로 입으로 받아먹고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렇게 우리 로운이랑 있으니까 참 좋다.”
   애정 표현을 더 해주려는데 그 순간, 세탁기가 슈베르트의 ‘숭어’를 요란하게 들려주며 나를 불렀다. 나는 빨래를 꺼내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래들을 바구니에 담고 있을 때, 로운이가 세탁실 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
   “응. 우리 로운이,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아빠는 회사에 가고, 형아는 학교에 가고, 나는 유치원에 가서 엄마 혼자 집에 있었을 때…… 슬펐어?”
   여섯 살의 작고 맑은 눈망울에 걱정이 어려 있었다. 내 마음이 벅찬 행복으로 사르르 녹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사랑스러운 귀염둥이에게 다가가 안아주고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그리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어땠을 거 같아?”
   “음…… 슬펐을 거 같아.”
   “흐흐. 그래. 조금 외로워서 슬픈 기분이 들었긴 해.”
   솔직히 슬프진 않았다. 가족들이 집으로 오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라 슬플 겨를 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향한 꼬마 천사의 염려를 존중해주고자 맞장구를 쳐준 것이었다. 그런데, 물끄러미 나를 보는 로운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이 여섯 살배기는 ‘혼자 있는 시간’을 ‘외롭고 슬픈 것’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내가 쐐기를 박고 말았다. 수습해야만 했다. 
   사는 동안 길든, 짧든 홀로 있는 시간은 있을 수밖에 없건만……. 그때마다 어두운 감정에 빠지는 건 곤란하다. 나는 명랑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건 아주 조금이야. 음……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어. 엄마가 혼자 있는 동안 함께 할 친구가 있으니까. 그게 누구게?”
   “글이랑 책들?”
   “그래. 집안일들을 다 하고 나면 컴퓨터로 열심히 글쓰기를 하거든. 그건 글이라는 친구와 놀았던 거야. 또 어떤 때는 책이라는 친구랑도 놀고 그랬지. 그래서 슬프지는 않았어. 우리 로운이도 그런 친구들이 얼마나 좋은지 알고 있지?”
   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내가 라온이의 학교 숙제를 봐주었을 때, 로운이가 놀 사람이 없다며 한숨을 쉬고 몹시 심심해했었다. 나는 엄마나 형이 아니어도 함께 놀 수 있는 멋진 친구가 많이 있다면서 책 읽기를 권했었다. 책 속 다양한 주인공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로운이는 책을 펼쳤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흡족해했다. 그날 이후 혼자 책 읽는 것을 즐기기 시작했다. 때로는 라온이가 같이 놀자고 하는데도 책이라는 친구를 선택할 정도였다. 그렇게 로운이는 혼자여도 외로워하는 대신 색다른 친구를 만나고 색다른 즐거움을 갖게 되었다. 아직까지는 책이라는 친구를 주로 만나고 있지만 언젠가는 보다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하지 않겠는가! 
   단, 조심할 것이 있다. 혼자만의 시간에 얻는 즐거움에 지나치게 빠지는 건 곤란하다. 좋은 사람과 있어야 가능한 행복도 챙기고 누릴 줄 알아야 한다. ‘함께의 기쁨’과 ‘혼자의 기쁨’ 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데 어느쪽으로도 치우지지 않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 그렇다면 ‘함께’ 쪽으로 조금 기우는 것도 괜찮겠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 로운에게 그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엄마는 아무리 집에 혼자 있어도 글이랑 책이랑 놀아서 외롭거나 슬프지는 않는 게 맞아. 하지만, 엄마가 가장 행복하고 좋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 바로 이렇게 우리 로운이랑 같이 있을 때야. 엄마는 지금 너무너무 행복해.”
   “나도.”
   함께여서 행복한 엄마와 아들의 얼굴에 따사롭게 빛나는 웃음꽃이 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널 지켜주는 사람들이 지구에 꽉 찼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